▲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2주 전 칼럼에서 필자는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럽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작성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두 거대 양당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설명한 바가 있다. 그 후 2주가 지났고, 그 사이에는 한가위 연휴 기간이 겹쳐있었다.

한가위 연휴가 되면 이른바 “추석 민심”을 알아본다며 정치권, 언론, 여론 기관이 호들갑을 떤다.(물론 최근에 소위 “추석 민심”이 여론의 척도가 되는 시대인지 의심스럽다) 한가위 연휴가 끝나고 언론은 한가위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정치인들과 앞다투어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 인터뷰에 참여했던 두 거대 양당의 정치인들은 추석 민심이 자신들에게 향해 있음을 강변했다. 그리고 정치에서 한 발 벗어나 있는 전직 정치인들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 ‘정치로 풀 수 있는 일은 정치로 풀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현재 거대 양당은 각각 부담스러운 “법적” 의혹을 안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논문 표절 시비와 이에 따른 부정 취업 혐의에 휘말려있다. 또한 이준석 전(?) 대표는 성매매와 그 성매매의 무마 의혹에 휩싸였다. 이로 인해 이 대표는 대표직에서 쫓겨나다시피 했고, 이에 이 대표 역시 국민의힘이 출범한 비대위에 대해 권한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서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경선을 거쳐 당선된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각종 비리와 연루돼 있다고 공격받고 있다. 지금 언급된 사항들의 상당수는 경찰과 검찰, 그리고 공직자비리수사처의 수사를 받아야 하는 사항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인과 언론은 앞에서 언급한 ‘정치로 풀 일은 정치로 풀어야 한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법을 위반한 의혹이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라면 정치로 풀 수 있는가? 떨어지는 주가를 보면서 한 숨 짓고, 몸과 영혼을 다 던져서 어렵게 학위 논문을 받은 사람의 상실감은 상실감을 느낀 사람들의 몫인가?

물론 당사자 입장에서 억울한 사항들이 있다. 김건희 여사의 논문표절 의혹은 박사학위를 수여한 국민대 측에서 문제가 없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필자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조사 결과였음을 밝혀둔다), 이재명 당대표의 의혹은 이미 문제가 없음이 밝혀진 사항도 있고,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며, 이전 수사에서 범죄 사실이 없다고 했던 사안을 재조사를 거쳐 기소한 이상한 경우도 있다. 이준석 전 대표 역시 잇따른 행정심판에서 승소했다.

정치권 인사들이 일으킨 의혹을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에는 정치인들의 특권 의식이 담겨있다. 게다가 대통령 부인은 공식 직함이 아니고, 여당의 대표는 국회의원이 아니다. 정치권에 있지만 법적으로 정치적 혜택을 받을 입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야당 대표는 국회의원이지만 당선 과정에서 면책 특권을 받기 위해 출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렸다. 결국 이들의 상황과 이들을 비호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정치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자신들이 일으킨 의혹의 제대로 된 검증, 그리고 그에 따른 처벌을 피하겠다는 의도와 이것을 도와서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겠다는 비호 세력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리고 이들이 이럴 수 있는 것은 경찰, 검찰, 법원의 구성원들의 신뢰도가 낮기 때문이다. 법에 근거해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그 수사 결과를 검토해야 할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과 여론의 눈치를 고려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논란 속에 시민들의 삶은 고통 받고 있다. 반도체 대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물가는 치솟고, 미국의 패권주의에서 시작된 원달러 환율 상승은 지속되고 있으며, 금리 인상으로 빚을 진 서민들은 고금리라는 위협에 직면했다. 북한은 핵무기 사용을 법으로 규정하겠다고 선포했고, 폭우와 태풍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입었다. 국가와 대한민국 시민이 각종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정치인은 답을 주고 있는가? 언론은 이 상황에 주목하고 정치인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가?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백성을 다스리는 요령을 물었을 때 맹자는 인덕(仁德)을 베풀어 존경 받고 백성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하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말하면서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항산은 백성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업을, 항심을 백성으로서 지켜야 하는 도덕을 말한다. 그런데 맹자는 항산을 항심의 전제 조건으로 설명했다. 좋은 정치인의 기본은 항산을 유지시켜주는 것임을 밝힌 것으로, 지금까지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되고 있다.

맹자의 이야기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선왕에게 “존경받고 백성이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왕이 백성에게 존경을 의무로 부여하는 것이 아닌, 백성의 존경을 받아야 왕의 권위가 선다는 뜻이다. 부모가 왕이면 자신도 왕이 되는 시절에 왕조차도 백성의 존경을 받아야 백성을 다스릴 수 있었다. 하물며 현대 공화정 국가에서 법적 수사를 피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시민의 민생을 챙기지 못하는 정치인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인과 언론이 시민에게 자신이 시민들을 위한 대안임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필자뿐일까?

아울러 시민들이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 있다. 그런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고, 그런 언론을 소비하는 것이 바로 시민들 자신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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