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에 올라간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윤상현 의원, “형사처벌 가능하도록 해야"
‘공천살생부’ 통화 녹음 넘긴 여성은 구속
직장 상사 ‘갑질 폭언’, 녹음만으로도 불법
부정적 여론 3배가량↑...통과 가능성 낮아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4월 26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을 증인으로 출석시키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요구에 반대하며 이채익 위원장에게 정회를 요청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4월 26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을 증인으로 출석시키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요구에 반대하며 이채익 위원장에게 정회를 요청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김무성이 죽여버리게. 이 XX. (비박계) 다 죽여.”, “내가 당에서 가장 먼저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솎아내서 공천에서 떨어뜨려 버려.”

20대 총선을 두 달여 앞둔 지난 2016년 2월. 새누리당의 ‘공천 살생부’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당시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친박(근혜)계 핵심 윤상현 의원은 ‘제3자’와의 통화에서 김무성 대표를 향해 거친 막말을 쏟아냈다.

김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 의원들의 공천 탈락을 언급한 윤 의원의 통화 녹음파일은 살생부 파동 9일 만에 <채널A>를 통해 뒤늦게 공개됐다. 녹취록 보도 직후 파문이 커지자 윤 의원은 급히 사과했지만, 공천에서 배제됐다.

그러나 윤 의원은 무소속으로 20대 총선(인천 남구을)에 출마해 당선됐고, 미래통합당(새누리당 후신)에 복당했다. 21대 총선 때도 컷오프 됐지만 다시 무소속(인천 동구미추홀구을)으로 당선, 4선 고지에 올랐다.

녹취록 파문 등으로 탈당과 복당을 반복했던 윤 의원이 지난해 8월 타인과의 통화나 대화 녹음을 금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위반 시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이 개정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 녹취한 50대 여성은 ‘구속’

당시 녹음파일은 윤 의원 사무실에 있던 50대 여성 A씨가 몰래 녹음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무실에서 윤 의원 통화를 녹음하고 이를 지인에게 전달한 이 여성은 결국 국민참여재판 끝에 법정 구속됐다.

지난 2017년 6월, 재판부(인천지법 형사15부)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윤 의원의 지인인 A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당시 윤 의원은 술에 취해 캠프 사무실에서 A씨와 대화를 나누다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A씨는 휴대전화로 윤 의원의 목소리를 녹음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 의원이 전화통화 한 상대방의 목소리는 녹음되지 않았다.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1항에 따르면, ‘전기통신의 감청을 하거나 공개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는 처벌받는다. 녹음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해도 역시 처벌 대상이다.

이 조항을 어겼을 경우 형량 또한 가볍지 않다.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고 있다. 벌금형 조항은 따로 두지 않고 있다.

A씨는 법정에서 윤 의원의 목소리만 자신의 휴대전화에 녹음됐기 때문에 통신비밀보호법상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배심원 9명 중 8명이 A씨에게 유죄평결을 내렸다. 이 가운데 7명은 징역 1∼2년의 실형 의견을 밝혔고, 나머지 배심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의 양형 의견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말하고 그 상대방은 듣기만 하는 경우에도 대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반드시 2명 이상이 말을 주고받는 것만이 대화는 아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휴대전화 녹음기능을 이용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고 누설했다”며 “당사자인 윤 의원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당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잘못을 반성하고 있지 않고 윤 의원으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며 “이전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검찰은 제보자 처벌을 위해 녹취 파일을 공개한 <채널A>에 보도 경위를 알려달라고 협조를 요청했지만, 언론사 측은 취재원 보호 등을 이유로 거절했다.

지난 2020년 8월 25일. 윤상현 당시 무소속 의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20년 8월 25일. 윤상현 당시 무소속 의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발의 배경·쟁점은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끼리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상 징역형으로 처벌된다. 그렇게 취득한 녹음은 소송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도 없다.

하지만, 대화 당사자 간 비밀녹음은 금지 조항이 없다. 즉, 제3자가 타인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만 불법에 해당하고 대화 당사자가 녹음하는 건 별다른 규제가 없다는 얘기다. 직접 대화나 전화 통화를 하면서 상대방 동의를 받지 않고 녹음하더라도 처벌되지 않는 이유다.

지난 1993년 통신비밀보호법을 제정한 이유가 국가기관 등에 의한 전기통신의 감청·우편물의 검열 등에서 국민의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윤 의원은 “이런 이유 때문에 협박 등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를 근거로 “당사자 간 대화도 동의를 구한 후 녹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 의원은 통화(대화) 당사자 한쪽이 상대방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통화(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건 다른 한쪽의 ‘사생활의 자유’ 또는 ‘통신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법을 고쳐야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끼리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는 현행 법 조항에 ‘대화 참여자는 대화 상대 모두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할 수 없다’는 내용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현행법은 제3자에 대한 규율이다. 대화 당사자 중 일부가 상대방 동의 없이 그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행위는 규율하고 있지 않아 법률 취지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윤 의원은 특히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에 따른 행복 추구권의 일부’인 ‘음성권’의 침해 소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음성권은 이미 불법행위로 규정돼 ‘당사자 동의 없이 녹음한자’는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돼있다. 이에 대한 법원 판례도 여럿 나와 있는 상태다. 즉,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규제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적 영향은

일단 개정안이 시행되면, 일반 시민들의 소송 사건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가령 직장에서 부하직원이 상사의 ‘갑질 폭언’을 상사 동의 없이 녹음한 경우, 녹음 자체가 이미 불법이 되는 것이다.

관련 재판이 진행될 경우 위법수집증거가 돼 소송이나 재판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녹음 당사자가 오히려 징역형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증거 확보 방법이 박탈돼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사례는 늘어날 전망이다.

과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 딸의 ‘막말 사건’이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인 이명희 씨의 ‘폭언’ 같은 갑질 피해 사건은 가사도우미나 운전기사 등 사회적 약자들의 폭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취재원과의 통화 녹음이 불가피한 언론사 기자들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처벌 1순위’ 대상이다. 기사 작성 시, 녹음파일 없이 ‘인용문’을 사용할 경우 상대방이 말을 바꿔 소송을 제기해오면 대책이 없다.

취재원과의 대화(통화)를 (동의 없이) 녹음하거나 그 내용을 공개한 당사자 모두 처벌받게 된다. 녹음한 기자는 물론, 녹음파일을 전달받아 보도한 기자 역시 처벌 받을 수 있다.

경찰은 지난 대선 기간 중 거센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 여사 녹취록 파문’ 사건 당사자인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를 지난달 23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경찰은 이 기자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녹음한 3시간 분량의 녹취 가운데, 이 기자가 화장실을 가면서 자리를 비웠던 3분 동안 (코바나컨텐츠 사무실) 직원들 간의 대화가 녹음된 부분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3분의 녹음 파일엔 “우리가 온라인에 게시물을 올렸는데 다른 누군가 작업을 했는지 순식간에 글 200개가 올라와 우리글이 뒤로 밀려버렸다”는 등 당시 윤 후보의 홍보 전략과 관련한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

경찰은 해당 3분간의 녹음에 대해 이 기자가 대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서 타인의 대화를 녹음했으므로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봤다.

지난 1월 17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녹취 보도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1월 17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녹취 보도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막말비호법 되나

‘김건희 녹취록’ 공개 사건 당시, 여러 매체가 이 녹취를 방송하려고 했을 때 김씨는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을 제기했다. 방송 금지를 요구하는 첫 번째 근거가 동의 받지 않은 불법 녹음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상 금지된 게 아니라는 이유로 그 주장을 배척했고, 녹음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윤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당시에 시행 중이었다면 아마 그 녹음과 방송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사건 직후 윤 의원은 비밀녹음을 금지하는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7개월 후 윤 의원은 실제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김건희 녹취록 공개 사건’을 빌미 삼은 이번 개정안 발의가 대화 녹음 파일 공개로 큰 곤욕을 치렀던 윤 의원의 과거 행적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한 언론사 고위 간부는 “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기자들의 취재를 위축시키는 법안”이라며 “여러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발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인터넷 시민운동 단체 ‘오픈넷’은 “국민들은 권력자들이 이런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을 알 권리와 진실한 사건을 바탕으로 정치인의 자질을 판단하고 선택에 반영할 권리가 있다”며 “개정안은 결국 권력자 막말비호법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여론은 냉랭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달 26일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503명을 대상으로 이번 개정안에 대해 조사한 결과, ‘통화녹음이 내부 고발 등 공익 목적으로 쓰이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쓰일 수 있으므로 법안 발의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64.1%로 나타났다.

‘통화녹음이 협박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을 뿐 아니라, 개인 사생활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법안 발의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23.6%였다. 두 응답 간 차이는 40.5%포인트였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2.3%였다.

조사에선 연령이 낮을수록 반대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18~29세(반대 80.7% vs 찬성 15.9%), 30대(75.4% vs 16.6%), 40대(71.2% vs 16.9%), 50대(61.9% vs 29.6%), 60대(50.7% vs 34.5%), 70세 이상(40.1% vs 28.2%)순이었다.

이념성향별로는 중도층(반대 71.1% vs 찬성 20.0%)과 진보층(70.5% vs 18.7%) 모두 반대가 70% 이상이었고, 보수층(55.3% vs 32.4%)에서도 반대가 절반 이상이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또 22일 기준으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시민 의견은 1만개가 넘었다. 1만770개 등록글 대부분은 반대 의견이었다.

반대의견을 낸 나모씨는 “아주 중요한 증거로 쓰이는 통화녹음자료가 사라지면 피해자들은 증거를 남겨둘 방법이 없다”며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매우 불리한 법안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최모씨 역시 “자기 방어를 위해 녹음조차 못하게 억압하는 사회는 부패한 권력이 통제하기 쉬워 부정부패가 만연될 게 분명하다”며 “국민들의 통신의 자유를 억압하고 기본권을 제한하는 이런 법안은 절대 반대한다”고 했다.

이모씨도 “발의자(윤 의원)가 옛날에 욕설파동으로 곤욕을 치른 적 있어 사심으로 법안을 발의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며 “법이 개정되면 공직자들이나 국회의원들의 범죄행각이 묻힐 가능성이 있어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보탰다.

21일, 국회 인터넷사이트 의안정보시스템에 입법 예고된 통신비밀보호법 등록 의견 화면 캡쳐.
21일, 국회 인터넷사이트 의안정보시스템에 입법 예고된 통신비밀보호법 등록 의견 화면 캡쳐.

◆통과 가능성은

현재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러나 윤 의원은 지난 6일 “불법 녹음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며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까지 개최하는 등 개정안 강행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윤 의원은 ‘공익적 목적이나 갑질, 언어폭력 등을 고발하기 위한 녹음의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 조만간 수정안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개정안의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국회의원은 윤 의원을 포함해 모두 11명이다. 구자근·권명호·김선교·박대수·박덕흠·양금희·엄태영·윤영석·이명수·이헌승 의원 등으로,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그럼에도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국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열 명 이상의 현역의원이 동의하고 있지만, 정치권 전반은 ‘시기상조’라는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지난 2017년에도 김광림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통화녹음 시 상대방에게 알림이 가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상대방 ‘동의’를 구하는 내용이 없었음에도 폐기된 것이다.

학계 역시 마찬가지 의견이다. 방향성이나 헌법 원칙 등의 법리적 판단을 떠나 국민의 알 권리 및 ‘내부 고발’의 자율성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현행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쉽사리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며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사회적 파장이 작지 않기 때문에 국민적 차원에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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