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주식 중독 상담 사례 급증
도박 중독과 과정 및 증상 유사점 많아
단타, 코인 등 자극 노출 많을수록 위험
중독 위험에 대한 인지 낮아 치유 어려워
중독자의 ‘상실감’에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

4대 중독에는 알코올, 인터넷, 도박, 마약 등이 포함된다. 이 중독 현상들은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인지됐다. 그만큼 관련 연구와 문제해결을 위한 예방 및 노력도 이어져 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새롭게 대두된 중독현상들이 있다. 투자, 기술, 음식 중독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투자, 기술, 음식 등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에게 권유된다는 점에서 그 중독의 위험성이 은폐돼 있다. 지인이 주식 종목을 추천하고 새로운 IT 기기에 대한 경험을 나누며 맛집을 공유하는 행동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반복적인 자극과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중독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계에서는 현대 자본주의가 사실상 대중의 크고 작은 중독을 매개로 유지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新중독 보고서’ 기획은 물질 중독 등 이미 알려진 현상 외에 새로운 시대 변화와 함께 발생한 중독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 기획됐다. 구체적으로는 투자행위에 잠재된 도박의 위험과 IT기기 사용 습관에서 엿볼 수 있는 기술 중독 사회에 대한 실태, 아울러 이른바 ‘푸드 포르노’가 일상이 된 사회의 부작용 등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려 했다. 나아가 감각만 자극하는 중독 문화에서 건강한 몰입으로 이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자 했다. 

[사진제공=게이티이미뱅크]

# 40대 A씨는 주식과 코인에 투자를 하다가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후 크게 손해를 입었다. 이후 제2금융권과 사채를 쓰기에 이르렀지만 감당이 안 되자 지인들에게까지 거짓말로 돈을 빌렸다. 그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상황에 좌절했고 스스로 세상을 등지려는 시도까지 했다. 하지만 다행히 가족들의 강한 권유로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 대기업에 근무해왔던 B씨는 가족 몰래 투자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액수였지만 점점 규모가 커졌다. 나중에는 수억원대의 대출을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투자는 끝내 실패했고 그는 십수억원 가치의 집을 매각한 후 친척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투자는 권장된다. 한국사회는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에 관대하다. 부(富)는 어떤 활동의 부수(附隨)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됐다. 누구에게나 재테크는 필수가 됐으며 주식과 코인이 그 선봉에 있다. 

지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됐다. 제조업을 비롯한 물류업계, 외식업계 등 다수의 산업 부문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투자 부문은 달랐다. IT 대장주들을 중심으로 주가가 치솟았다. 상장하는 기업들의 가치는 2배, 3배를 기록했으며 코스피 지수는 3000을 돌파했다. 유가증권시장이 열린 이후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강세장이 이어지면서 투자 심리가 확대됐다. 투자자들이 몰리자 코인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돈이 돈을 버는 흐름이 견고해졌고 ‘큰 한방’을 위해 대출 등 차입금을 활용하는 영끌족들이 생겨났다.

승리에 취해 있을 때는 중독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든 중독은 자극의 반복으로부터 시작된다. 강세장일수록, 단타일수록 도박적 행위중독으로 빠져들 위험이 높아진다. 

주식 중독 상담, 5년 새 476% 급증

실제 국내 주식 중독 상담 사례는 코로나19 이후 크게 늘었다. <투데이신문>이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주식 중독 문제로 내방한 투자자는 지난 2017년 282명, 2018년 421명, 2019년 591명에서 2020년 1046명, 2021년 1627명으로 5년 새 476%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합법 사행산업인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의 상담사례는 오히려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불법 온라인 도박의 상담 증가율인 180%와 비교해도 주식 중독 상담의 증가율은 상당히 높았다. 특히 2022년에는 상반기에만 1136명의 상담자가 방문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말에는 2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상담 전문가들에 따르면 투자 중독과 도박 중독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도박의 경우 돈을 딴 경험이 중독의 기폭제가 된다. 가령 도박으로 20~30만원을 땄을 때 거기서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더 많은 돈을 걸었으면 더 큰 돈을 벌었을 거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투자도 처음에는 적은 돈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의 지인이 추천하는 주식, 스스로 공부하며 선택한 종목에 소액을 투자한다. 하지만 투자에 성공하고 돈을 번 경험이 축적되면 금액도 점점 늘어나는 수순을 밟는다. 

이는 뇌의 보상 회로 때문이다. 사람의 특정행동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토록 하고 이를 통해 기쁨과 쾌감, 동기부여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자극이 강할 경우 도파민 시스템이 왜곡된다. 더 강한 자극을 통해서만 과거와 같은 쾌감을 얻게 되면서 투자 금액이나 횟수도 점점 증가한다. 

그러나 투자 금액이 올라가면 이성적 판단이 어려워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박이든 투자든 처음에는 손절이나 수익률 등에 대한 기준을 세우지만 손실이 발생하면 현실감각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락장이 도래하면 손에 쥐었던 수익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투자를 위해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던 사람이 원금을 회복하려 제2금융권에 손을 대기도 한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사채와 지인들의 돈으로 돌려막기에 이른다. 돈을 값지 못하면 관계가 끊어지고 고립되면서 우울증이 동반된다.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투자 중독 프로세스의 전형이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이찬모 선임은 “중독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주식이나 투자도 도박과 거의 비슷하다. 금액이 올라가면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라며 “그러다 손실 단계로 접어들면 본전을 찾고 싶은 심리가 생긴다. 다들 본전만 찾으면 그만 둘 거라고 하지만 중독으로 이어지는 형태가 일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주식하는 인구가 많아지다 보니 전체 상담 사례도 증가했다. 장이 좋을 때 상대적 비율은 적을 수 있겠지만 전체 상담 수는 늘어났다”라며 “무리한 투자를 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하락장에 접어들면서 내담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투자자 86%, 손실에 대한 일상적 불안 경험

중독이라는 문제에 있어 투자가 도박보다 더 위험한 지점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는 행위로 간주 된다는 것이다. 상담센터 등에서도 투자자가 스스로 중독을 인지하고 내담하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대다수의 내담자들은 더 이상 손실을 숨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가족의 손에 이끌려 온다는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투데이신문>이 두잇서베이에 의뢰해 투자 경험이 있는 성인남녀 10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자 경향 및 중독 인식 설문조사’에서도 ‘투자 중독으로 상담 받는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과반인 50.6%(513명)의 응답자가 ‘모른다’고 답변했다. 또 ‘전문가 상담을 받고 싶은 생각이 있나’라는 물음에는 23.9%(243명)가 ‘상담을 받고 싶다’고 대답해, 투자 행위에 문제의식을 가진 잠재적 내담자들의 수준을 짐작케 했다. 

이와 함께 답변자들은 투자 중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투자 손실에 대한 불안 ▲원금 복구 심리 등에서 높은 수준의 불안감을 나타냈으며, 행위 중독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수익 및 손실 확인 주기도 짧은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평소 손실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61.6%(625명)의 응답자가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변했으며 24.9%(252명)는 ‘불안감을 강하게 느낀다’고 대답했다. 전체의 86.5%가 투자 행위에 따른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원금 복구 심리에 대한 물음에서도 83.3%(704명)가 ‘추가 투자를 통해 원금을 복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변했다. 

또 40.4%(409명)는 수익 및 손실률을 매일 확인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투자 행위에 하루 2시간 이상 소요하는 비율도 37.6%나 됐다. 구체적으로는 ‘1시간 이내’ 62.4%(633명), ‘2시간’ 23.2%(235명), ‘3시간’ 10%(101명), ‘4시간’ 2%(20명), ‘5시간 이상’ 2.5%(25명)으로 집계됐다.  

이밖에 ‘투자 경향 및 중독 인식 설문조사’에서는 투자를 시작하게 된 계기, 투자 정보를 얻는 경로, 대출 경험과 액수, 손실 여부와 손실 규모에 대한 설문이 진행됐다. 조사 결과 투자자 10명 중 8명은 손실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출을 받은 적이 있다는 답변도 20%에 가까웠다. 또 유튜브‧온라인 영상 등에서 가장 많은 투자 정보를 얻고 있다고 응답해 부정확한 정보 유통에 대한 우려도 예상됐다.  

구체적으로는 응답자의 44.8%가(454명)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투자를 시작했다고 대답했으며 ‘지인의 권유’ 19%(193명), ‘은퇴자금 마련’ 14%(142명). ‘독립자금 마련’ 10.9%(111명), ‘주택자금 마련’ 8.6%(87명)의 순으로 이어졌다. 

투자 정보를 얻는 경로는 ‘유튜브 등 온라인 영상’이 33.4%(339명)로 가장 많았으며 ‘신문, 방송 등 언론보도’ 26.8%(272명), ‘지인’ 18%(183명), ‘투자 전문 기관’ 9.3%(94명), ‘투자 서적’ 8.45(85명), ‘사설 투자방’ 2.5%(25명)으로 파악됐다. 

또 18.8%(191명)는 ‘투자를 위해 대출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으며 대출의 규모는 ‘1억원 이상’이 18.8%, ‘5000만원 이상~1억원 미만’ 33.5%, ‘10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 28.3%, ‘1000만원 미만’ 19.4%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의 83.3%(845명)는 ‘투자를 통해 손실이 발생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손실 수준은 1000만원 미만이 65.3%(55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10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 20.5%(173명), ‘5000만원 이상 1억원 미만’ 9.9%(84명), ‘1억원 이상’ 4.3%(36명) 순이었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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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투자를 중독으로 이끄는가

전문가들은 장기투자로 투자 중독에 빠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 중독은 행위 중독의 일종으로 여겨지며 이는 잦은 반복과 자극을 원인으로 한다. 때문에 단기투자 일수록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 행위에 소요할수록 중독의 위험은 높아질 수 있다. 

최근에는 투자가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적 영향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해외 주식이 활성화 되면서 국내 장이 마감해도 투자자의 시계는 늦은 밤까지 돌아가기 때문이다.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코인은 문제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코인은 수시로 가치가 변동하기 때문에 자극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 중독 위험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외부 환경은 중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예를 들어 도박이라면 도박장을 찾아가 직접 경험을 해야 중독과의 연결고리가 생긴다. 그런 측면에서 주식과 코인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것은 중독 상담 증가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전술했듯, 투자는 사행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험성을 간과하기 쉽다. 

이밖에도 도박과 투자 중독은 개인의 선천적인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 상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여기에는 TCI(기질 및 성격)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자극 추구 성향’과 ‘위험 회피 성향’이 영향을 준다. 사람의 기질에는 좋고 나쁨이 없지만 ‘자극 추구 성향’이 높고 ‘위험 회피 성향’이 낮으면 위험한 방식의 투자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자연스레 보다 강한 자극에의 노출로 이어진다. 

다만 TCI 검사를 일반인이 직접 진행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자신의 성향은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물어보며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에서는 홈페이지에 ‘도박문제 선별검사’를 제공하고 있다. 검사 항목은 도박으로 이뤄져 있지만 주식이나 투자로 치환해 진단을 해도 무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자가 진단 등을 통해 투자에 따른 중독 문제가 우려될 때는 다른 무엇보다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미 중독 현상이 발현된 상태에서는 뇌의 보상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혼자만의 힘으로는 극복이 어렵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알코올 중독자가 금주를 하고 마약 중독자가 관련 물질을 끊어내듯 일상적인 투자 행위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가 중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다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경각심을 갖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신과 전문의 최삼욱 원장은 “중독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주식이나 도박은 채무가 크고,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환상에 빠져있기 때문에 포기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라며 “가족이나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것이 우선인데 쉽지 않다. 세상을 등지려는 시도를 했거나, 법적인 문제가 생기거나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중독이다, 아니다, 이런 이름 짓기보다는 얼마나 당사자가 힘든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중독에 이른 경우 재정이나 관계, 신뢰 등이 대부분 망가져 있기 때문에 상실감을 느끼는 상황이다”라며 “이를 공감해주는 차원에서 문제를 다뤄야지 겁을 주는 방식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단기적인 목표는 투자 행위를 멈추는 것이지만 치료는 한 두번 병원을 방문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라며 “항상 재발의 위험이 있다. 복구심리에 의해 과거의 패턴으로 다시 들어가려 한다. 그걸 지속적으로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완치라는 개념이 아닌 회복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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