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과 무게는 저마다 다르다.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한 그림에서 편안함을 느끼는가 하면 무심한 인물화에서 영감을 얻는 이도 있다. 이처럼 제각기 다른 그림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시대상이 반영된다는 점에서는 결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주체인 예술가가 동시대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림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칼럼을 연재 중인 이유리 작가는 신문사 사회부 기자 출신이라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다수의 미술 관련 책을 쓰고 다양한 강의로 청중을 만나는 강사이기도 하다. 명문대 공대를 나와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남편 임승수 작가와 함께 쓴 첫 책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을 비롯해 <화가의 마지막 그림>, <화가의 출세작>,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왜 유명한 거야, 이 그림?> 등 시대와 소통한 예술가와 그림 등을 주제로 꾸준히 집필활동을 해왔다.

전작들에 비해 지난달 29일 발간된 <기울어진 미술관>에서 주목할 점은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도시빈민, 흑인, 동물까지 다양한 사회적 ‘을’들에 대해 다뤘다는 점이다. 위대한 예술가인 마네와 루벤스, 잭슨 폴록 등의 그림과 곁들여 시대상을 분석한 이번 신간은 발간 한 달 만에 2쇄가 확정됐다. 

<투데이신문>은 독산역 인근 카페에서 이유리 작가를 만나 시대를 증언하는 예술가와 그의 그림 속에 담긴 소외된 존재들, 그리고 그들의 해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이번 신간 <기울어진 미술관>의 제목이 눈길을 끄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평평하지 않은 캔버스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성과 흑인, 장애인, 아픈 사람, 성소수자 등 사회적 을들의 캔버스와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갑의 캔버스가 서로 동등하지 않은 사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술사를 쭉 살펴보면 지금껏 너무 건강하고 젊은 백인 남성의 시각으로 창작돼 왔고 미술사 또한 그들의 중심으로 서술돼 왔죠. 이에 그 균형점을 찾아간다는 노력과 과정의 일환으로써 붙인 제목입니다.

Q. 사회부 기자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습니다. 미술 전문 작가로 활동하시는 데 영향이 있었나요.

저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어요. 역사는 바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잖아요. 제가 기자 활동을 했던 것은 당대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하는 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어요. 그림 또한 그 그림이 탄생했을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를 담고 있는데, 이를 찾아서 전하는 것이 기자의 취재, 기사쓰기와 다름없다고 생각했어요. 한 그림의 의미는 당대인에게는 직관적으로 알려집니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 지나면 그 그림에 의미를 줬던 사회적 맥락도 사라져버립니다. 모든 그림에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를 찾아서 전해주는 것도 제 몫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Q. 예술 작품을 다각도로 해석한 책을 꾸준히 내고 계신데 이번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보통 그림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 책들은 좀 독특하긴 하죠. 현재 살아가는 우리 사회와 연결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도 특별히 공감하고 사랑해주시는 거라 생각합니다. 

Q. 여러 매개체 중 특별히 그림을 선택해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설명하신 이유가 있다면요. 

그림을 매개체로 선택했다기보다는 제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이 그저 연결된 거죠. 그림을 좋아했는데, 또 차별과 혐오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그림에서도 그와 같은 차별과 혐오가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으로 볼 수 있겠네요.

Q. 책에서 소수자를 배척하는 분위기를 지적했는데 평소 관심 가졌던 분야였는지요. 

제가 소수자이기도 하니까요. 여성이잖아요. 소수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만 보이는 것을 보여주고 그동안 주류의 시선이 놓쳤던 부분을 찾아 쓰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Q. 본질적으로 권력층들이 소수자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자기가 가진 알량한 권력과 힘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 아닐까요.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누르면서 내 인정욕구를 채우고 싶은 욕망 같은 것이요.

Q. 그림을 통해 과거의 혐오를 조명했는데, 현대와 비교하면 어떻다고 보시는지요. 

시원하게 끊어졌다고 보긴 어렵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도전과제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역사를 현재 공부하며 우리 시대의 정신과 역할, 과제를 성찰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Q. 소수자에 대한 세상의 인식 등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 나가야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용의 눈길을 주자는 생각입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고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Q. 미술은 해석 방향에 따라 그 의미도 달라지는데 등장하는 작품 중 가장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면요. 

이번 책 중에 성매매 여성을 향한 상반된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동시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와 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19세기 파리에 만연하던 성매매 현장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을 보는 관점은 달랐죠. 한쪽이 성매매 여성을 일종의 직업인으로 봤다면, 다른 한쪽은 그들을 계급과 젠더 권력 하에서 필연적으로 착취당하는 존재로 봤거든요.

실제로 드가의 <기다림>에는 발레리나인 딸 곁에 앉은 검은 옷의 중년부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딸을 보호하기 보다는 딸의 몸에 더 높은 값을 부르는 후원자를 찾기 위해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드가는 여성들을 품위있게 묘사하지 않았기에 주변인들로부터 ‘여성혐오자’라는 평가를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드가가 여성을 ‘성적대상화’하지 않고, 노동계급 출신의 발레리나 소녀가 가난 때문에 신사들에게 성을 팔아야했던 당시의 참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프랑스 파리의 사창가 살롱을 그린 툴루즈 로트레크의 <물랭가의 살롱에서>를 살펴보면 성매매 여성들이 손님들을 기다리는 일상 및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렸습니다. 즉 성 판매 여성들을 ‘파리의 도시노동자’로 묘사한 것이죠. 그러나 툴루즈 로트레크가 그들의 일상을 자세히 묘사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돈이 많은 백작가문 도련님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그의 그림이 은연중에 성매매 현장의 폭력성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고 하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요. 결국 성매매 여성들이 보통 감당할 수 없는 가난 때문에 성매매로 들어섰다는 불편한 진실을 감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Q. 예술이라고 하면 막연히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예술 작품과 친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단 자주 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완벽하게 다 공부하고 미술관에 가려고 하면 평생 못 간다는 말처럼, 너무 잘 알고 가려 하면 아는 만큼만 보여서 상상력을 펼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 수영을 배우려면 아무리 유튜브를 보고 글로 봐도 모릅니다. 일단 물에 뛰어 들어야 하죠. 제 남편(임승수 작가, 와인 애호가로서 최근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을 출간)도 와인을 제대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마시면서 배우기 시작했어요.(웃음) 그러다가 관련 책도 내고 강연도 하러 다닙니다.

Q. <기울어진 미술관>을 읽을 때 독자가 특히 염두에 뒀으면 하는 대목이 있나요. 

예술가의 영감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예술가 또한 우리와 같은 땅을 딛고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사는 사회인이죠. 그래서 사회의 공기가 작품 속에 담기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봅니다. 작품을 보며 무엇이 작가에게 이런 주제의 그림을 그리게 했을까, 어떤 사회상황이 투영돼있나 함께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Q. 이번 책 집필 후 작가님의 소감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이 책을 쓰며 제 인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동물권 이야기를 쓰며 페스코 베지테리언(육류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이 됐다는 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어를 중립으로 놓으면, 자연히 차는 기울어진 쪽으로 굴러갑니다. 저는 이 책에서 기어를 중립에 두지 않았고 확실하게 을의 편에 섰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간과되고 조명 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따스한 눈으로 보면 그들의 사정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저는 이 책이 세상의 해상도를 올려 좀 더 높은 해상도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매개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기득권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모순을 발견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공감이 가능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준다면 더 바랄 나위없을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집필 등 장·단기 목표와 계획이 있으신가요. 

단기적으로는 사회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싶은 30대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에세이를 준비 중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두 아이의 엄마다 보니 저의 경험도 자연스레 녹아들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한국과 동양미술에 대해 집필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 옛 그림은 상대적으로 서양미술사보다는 낯설고 어려운 느낌이 있는데,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요.

Q.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그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과 우리 사회상을 엮어 살피는 작업들을 해 왔는데 이번 책으로 그 한 단락이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책도 자신만의 운명이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나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모습들을 봐 왔거든요. 이제 <기울어진 미술관>은 제 손을 떠났으니 앞으로는 독자님들이 잘 키워주셔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