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우려·금리 인상에 하락하는 집값…“PIR 18, 여전히 비싸다”
‘맑은 날에 우산 준비하라’…역대정부 부동산정책, 사이클 놓쳐 뒷북만
균형발전으로 인구 문제 해결한다면서 수도권 집중 심화할 정책 내놓아
“균형발전이 부동산 대책, 지방에 서울 대항마 만들어야 모두가 산다”

경상남도 진주시 충무공동에 조성된 경남혁신도시는 11개 공공기관이 이전했으며 3만3000여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경상남도 진주시 충무공동에 조성된 경남혁신도시는 11개 공공기관이 이전했으며 3만3000여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유례를 찾기 힘든 가파른 집값 상승은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정부는 온갖 부동산정책을 쏟아냈지만 아파트 가격 상승이 주도한 집값 앞에선 ‘백약이 무효’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만연해 있던 땅 투기가 성난 민심에 불을 당겼다.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신도시 개발 지역의 토지를 사전에 매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어 ‘대장동 게이트’ 사건이 터지며 부동산개발 사업이 어떤 방식으로 막대한 차익을 실현하는지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투데이신문>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전국 만 18세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에서 응답자의 68.9%가 우리나라의 집값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답했다. ‘약간 높은 수준’(21.4%)이라고 답한 응답자를 합하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90.2%)은 현재의 집값이 높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렇다보니 새정부의 핵심 과제는 부동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정부는 주택 250만호+a 공급정책을 내세우며 막대한 주택물량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주택 보급률 100%를 초과한지 오래인 현재를 감안하면 과연 공급만으로 충분할지 의문이 떠오른다. 부동산 문제의 심화는 수도권 집중화와 함께 진행된 사안이다. 수도권에 밀집된 공급이 오히려 집중화를 부채질한다면 부동산 시장 안정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본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부동산 문제와 사회 각 분야는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살펴 근원적인 부동산 정책을 수립하는데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부동산시장에서 올해는 상승장이 끝나고 하락장이 시작된 시기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우려가 고조되고 기준금리 인상이 잇따르면서 부동산가격은 완연한 하락세에 접어든 모습이다.

한국부동산원이 매월 진행하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를 보면 주택종합 매매가격지수는 지난 6월부터 전월대비 하락(-0.01%)해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내렸다. 전국 주택가격은 9월 조사에서 전월대비 0.49% 급락해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였던 2009년 1월(-0.55%) 이후 13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전국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달 전월대비 0.78% 떨어지며 집값 하락을 주도했다. 특히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같은기간 0.98%나 빠지며 서울(-0.75%), 인천(-1.28%), 경기(-1.04%) 모두 큰 폭의 내림세를 기록했다.

부동산원은 “금리 인상과 주택가격 추가 하락 우려로 매수심리가 급감했다. 매물가격의 하향조정이 지속되고 급매물 위주의 거래가 진행되면서 수도권지역의 하락폭이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전세가격도 금리인상에 따른 월세전환 및 갱신계약 영향으로 신규 전세 수요가 감소하고 매물가격 하락이 지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지속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재 (집값이)너무 높기 때문에 상당 기간 하향 안정세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라며 “경착륙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만 관리해야 된다고 본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18일에도 “PIR(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이 지난 정부 초기 10~12 수준이었는데 현재는 18 정도다”라며 “PIR이 갑자기 높아지면서 결혼과 출산 등을 포기한 ‘N포 세대’, ‘벼락거지’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세대에 PIR 18을 남겨서는 안 된다”라며 “이는 자신의 소신이자 철학이며 장관을 하는 이유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고덕신도시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인근학교의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투데이신문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고덕신도시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인근학교의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투데이신문

역대정부 부동산정책 평가는

부동산가격이 너무 높다는 인식은 상당수 국민들이 공감하는 바다. 관건은 정부가 ‘적정 PIR'을 목표로 한다해도 구체적인 정책 실행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대 정부의 부동산정책 추진과 그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지난 2018년 1월 발표한 ‘역대정부 주택연책의 평가와 시사점’ 연구보고서를 보면 “역대정부의 주택정책은 단기적인 시장안정이나 활성화에 방향성을 두고 있다”라며 “단기목표에 충실하게 정책을 급격하게 도입해 (예상치 못한)부작용을 유발했다”고 평가했다. 시장상황에 대한 적절한 진단이 부족한 상태에서 단기적인 지표개선에 목표를 설정해 중장기적 효과는 미미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정부는 IMF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침체를 극복하고자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시장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1998년 양도세 한시 면제, 분양권 전매 한시 허용에 이어 다음해인 1999년에는 분양가 전면 자율화 조치가 단행됐다, 주택금융시장에 다양한 상품들이 도입된 시기이기도 하다.

시장활성화 정책은 집값 급등을 불렀다. 2002년 전국 주택가격은 16.4% 올랐으며 서울은 약 30%나 급등했다. 이에 김대중정부 후반기는 서민주거 안정대책과 주택시장안정대책이 줄줄이 나왔다.

참여정부는 부동산 투기억제를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주택공급 확대에 무게를 뒀다. 2005년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해 시행했으며 1가구2주택의 비거주주택은 실거래가격으로 양도소득세를 과세하는 부동산가격안정대책이 발표됐다. 지역균형발전정책으로 혁신도시 및 행정중심복합도시 등도 추진했다.

각종 규제책에도 집값은 참여정부 초반 숨을 고르더니 중반 이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며 지방과 격차가 커지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똘똘한 한 채’를 선호하게 만들어 되레 수도권 투기에 불을 지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정부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주택시장 침체가 시작된 시기였다. 이른바 뉴타운사업과 보금자리주택 공급정책이 진행됐으며 취득세, 양도소득세, 종부세 등 부동산관련 세제완화정책이 추진됐다.

이명박정부 기간 동안 전세가격은 30% 가까이 상승하며 서민층의 주거문제가 대두됐다.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등의 신조어가 희자되는 등 여전히 부동산문제는 정부의 숙제로 남았다.

박근혜정부는 기존 정부정책을 대체로 유지하면서 전세급등 문제의 해결책으로 주택매매 활성화를 꺼내들었다. 2014년 LTV(주택담보대출비율)는 50%에서 70%로 상향하고 DTI(총부채 상환 비율) 상한도 50%에서 60%로 완화했다.

‘빚내서 집 사라’는 신호는 무분별한 가계부채 확대를 초래했다.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2년 5.2%에서 2015년 10.9%, 2016년 11.6%로 치솟았다. 주택가격 상승이 시작됐으며 전세가격 안정도 실패했다는 평가다.

해당 연구보고서는 “주택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국토 및 도시 정책 그리고 산업정책 등과의 연계를 통해 정책추진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기 있다”라며 “1인가구의 증가와 고령화 등 최근 사회 및 경제적 변화를 주택정책에 반영해야 하며 정책의 실제적 효과에 대한 세밀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자율적 시장기능 강회를 위한 정책 도입 ▲소프트한 주택정책의 점검과 추진 ▲지역별 차별화된 주택정책의 도입 ▲주거복지가반의 강화 등을 주문했다.

직전정부인 문재인정부 역시 각종 부동산정책을 쏟아냈지만 급등하는 집값을 임기 내에 안정시키지 못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단기적 관점에서 냉온탕을 오가는 동안 부동산투기는 더 기승을 부렸고 ‘영끌족’, ‘빚투족’을 양산했다.

이는 윤석열정부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교훈이다. 한국교통대학교 권일 교수는 “격언 중에 ‘맑은 날에 우산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라며 “대규모 주택공급은 기본적으로 지구 지정부터 주택공급까지 10년은 걸린다. 주택이 부족하다고 대규모 주택을 짓기 시작하면 정작 공급시기에는 사이클이 끝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징조가 나타날 때 준비하면 뒷북을 칠 수 밖에 없다. 모든 정책이 마찬가지겠지만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립대학교 우명제 교수 역시 “주택가격의 사이클은 주택정책과 기간적인 차이가 있다”라며 “장기적인 수요를 감안책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우 교수는 “지속적인 주택공급이 필요하지만 ‘어디에 공급하느냐’가 관건이다. 초광역협력을 통한 메가리전 정책이 중요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부동산정책 수립시 지역균형발전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강원도 속초시 엑스포 잔디광장에서 열린 동서고속화철도 착공 기념식에서 침목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강원도 속초시 엑스포 잔디광장에서 열린 동서고속화철도 착공 기념식에서 침목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인구 문제, 균형발전 통해 해법 모색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세종정부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지역이 스스로 동력을 찾고 발전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중앙지방협력회의, 이른바 제2국무회의로 지자체장들과 함께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어가는 길을 모색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모든 부처는 정책 추진시 인구감소로 인한 성장동력 하락 등 인구 정책의 관점에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 3월 24일에도 “결국 균형발전을 해서 수도권으로 몰려 경쟁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는 풀릴 수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인구문제를 풀 해법 중 하나로 지역균형발전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지난해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40년에는 대전시 전체 규모를 넘는 165만명의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윤석열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개편을 시작으로 각계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해 이른 시일 내에 인구문제에 관련한 범부처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국정목표로 제시하며 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윤석열정부의 핵심 국토(부동산)정책들이 수도권 집중화를 강화시키며 균형발전과 거리가 먼 부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가 천명한 5년간 270만호 주택공급정책을 보면 수도권에만 158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는 아직 A노선도 완공되지 못했는데 A·B·C노선뿐 아니라 D·E·F노선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수도권에 투자가 집중되면 지방에서의 인구 유출 역시 계속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지방시대’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본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GTX 노선 확충이 수도권 집중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를 묻자 응답자의 75.9%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응답은 21.3%에 그쳤다.

해당 여론조사에서 수도권 택지개발·재건축·재개발 사업과 규제완화 등의 부동산 정책 추진이 수도권 집중화에 줄 영향을 묻자 ‘영향을 줄 것’이란 응답이 78%,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응답은 17%가 나왔다. 국민들 중 상당수가 수도권 부동산정책이 수도권 집중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는 결과다.

GTX 노선 확충의 수도권 집중화 영향 인식 여론조사 결과 ⓒ투데이신문
GTX 노선 확충의 수도권 집중화 영향 인식 여론조사 결과 ⓒ투데이신문

덜 살기 좋게, 불편한 서울 가능할까

전북대학교 강준만 명예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부동산 약탈국가>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은 ‘합법적 약탈이다”라고 일갈했다. 내 집 마련을 목표로 노력해 저축한 사람들, 전월세값이 올라 살던 곳에서 나오게 된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폭력으로 빼앗는 약탈보다 나쁜 약탈이라는 의미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의 진앙지가 강남이라면, 강남을 덜 ‘살기 좋은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하나의 해법일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해볼 때도 되지 않았나”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인구감소가 ‘정해진 미래’인 이상 수도권 인구 밀집을 해소하려면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기는 하다.

한 균형발전 관련 전문가는 “1960년대 당시 ‘주민들의 불편에 대해 시장은 뭐하느냐’고 서울시장이 추궁을 당하자 ‘지금도 서울이 살기 좋다고 사람들이 모이는데 더 살기 좋게 만들면 모두 서울에서 살라는거냐’라며 ‘내가 시장으로서 할 일은 서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답변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문가는 “수도권 주민들의 인프라 확충에 대한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아이가 단 것만 먹어 비만이 되는데 아이들이 단 것을 원한다고 계속 먹이는 부모가 있는가. 결과적으로 수도권 투자는 인구를 더 늘려 더욱 혼잡과 불편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 난제를 풀려면 정부가 강력한 해결 의지를 갖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 중앙대학교 마강래 교수는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이란 저서에서 “균형발전이 부동산대책”이라며 “서울의 대항마를 만들어야 모두가 산다”고 주장했다.

이어 마 교수는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대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라며 “주택·토지정책은 국토·도시정책의 하위분이다. 국토·도시의 공간 정책과 연계하지 않는 부동산 정책은 단기적 효과만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뿐 아니다. 부동산은 산업과 연계돼 있으며 교육과도 깊게 연관돼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활성화 정책을 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시적인 가격 급등락만 쫓아서야 부동산 문제는 심각성만 더해갈 것이다. 투기의 대상이 아닌 본래의 기능에 충실한 주택·토지의 모습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할 시점이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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