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환경‧구조 요인 등 외부 여건과 밀접 관계
즉각적 만족을 위해 행동하는 ‘변연계 자본주의’
서로가 서로를 중독 시키는 ‘호모 아딕투스’ 시대 
“잉여‧기호가치만 우선하면 진짜 삶 내어주게 돼”
“중독 논리 덫에 걸렸다는 것 직시하고 벗어나야”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4대 중독에는 알코올, 인터넷, 도박, 마약 등이 포함된다. 이 중독 현상들은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인지됐다. 그만큼 관련 연구와 문제해결을 위한 예방 및 노력도 이어져 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새롭게 대두된 중독현상들이 있다. 투자, 기술, 음식 중독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투자, 기술, 음식 등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에게 권유된다는 점에서 그 중독의 위험성이 은폐돼 있다. 지인이 주식 종목을 추천하고 새로운 IT 기기에 대한 경험을 나누며 맛집을 공유하는 행동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반복적인 자극과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중독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계에서는 현대 자본주의가 사실상 대중의 크고 작은 중독을 매개로 유지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新중독 보고서’ 기획은 물질 중독 등 이미 알려진 현상 외에 새로운 시대 변화와 함께 발생한 중독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 기획됐다. 구체적으로는 투자행위에 잠재된 도박의 위험과 IT기기 사용 습관에서 엿볼 수 있는 기술 중독 사회에 대한 실태, 아울러 이른바 ‘푸드 포르노’가 일상이 된 사회의 부작용 등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려 했다. 나아가 감각만 자극하는 중독 문화에서 건강한 몰입으로 이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자 했다.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중독은 선천적이며 개인의 문제일 수 있다. 인간의 보상회로는 자극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이는 개체의 생존 자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다수의 전문가들도 중독의 주요 요인으로 선천적 기질을 지목한다. 선천적 기질을 언급할 때는 주로 미국의 정신의학자 클로닝거가 분류한 4가지 성향이 인용된다. 

클로닝거는 심리생물학적 인성모델에 기초해 4가지 기질과 3가지 성격을 고안했다. 이중 기질에는 자극추구, 위험회피, 보상의존성, 인내력 등의 성향이 포함된다. 이를 기반으로 TCI라는 이름의 기질 및 성격 검사가 만들어졌다. 

특히 자극추구와 위험회피 성향은 사람이 무엇인가에 중독될 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박이나 투자의 경우 자극추구 성향이 높을수록 중독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실제 한국상담심리학회가 서울 소재 도박중독치료센터에 내방한 남성 병적 도박자 151명의 TCI 프로파일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일반 성인에 비해 자극추구 점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최근에는 위험회피 성향이 스마트폰 중독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서울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소영 교수 등 3인의 공동연구팀은 평균 연령 13.2세의 아동·청소년 184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중독 구조 요인 이해를 위한 임상 연구’를 진행했는데 네 가지 기질 중 위험회피 성향이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유소영 교수는 “아동·청소년의 기질에 따라 스마트폰 중독 위험 수준에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라며 “위험회피 성향을 가진 아이는 낯선 외부요인에 대해 불안과 스트레스를 더욱 크게 경험하는 특징이 있는데, 스트레스로 인한 부정적 감정의 해소 전략으로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의해 적발된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현장 [사진출처=전북경찰청]
경찰에 의해 적발된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현장 [사진출처=전북경찰청]

중독을 유발하는 환경들

다만 중독이라는 문제에 있어 선천적 기질 만큼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인이 속한 사회·환경·구조적 요인이다. 문화적 배경부터 주변 사람들의 인식, 대상에 대한 접촉 경로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중독은 외부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 

비근한 예로 주식, 코인 등 투자 중독은 최근 한국사회의 주요한 문제로 대두됐지만 이와 관련한 청소년의 사례는 드물다는 것을 들어볼 수 있다. 투자는 비교적 큰 규모의 기초 자금을 필요로 하고 또래 집단의 주요 관심사도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 계층에서는 문제로 부각되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도박에 있어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한국도박문제치유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의 온라인 불법도박 상담건수는 2017년 503건에서 2021년 1242건으로 최근 5년 새 147%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청소년들이 온라인 불법도박을 접하게 된 계기는 주로 친구나 동네 선배, SNS 광고 등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주변 지인 집단이나 스마트 기기 등을 통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과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의 돈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청소년들의 도박 경험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상담 현장에서도 도박을 시작하는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으며 학급 내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진심정신건강의학과 최삼욱 원장은 “10년 전에는 고등학생들이 도박을 시작한다고 해서 놀랐는데 지금은 중학생 때부터 불법도박을 시작한다”라며 “한 고등학생 친구도 학급의 절반 이상이 (도박을) 했다고 말했다. 학교차원에서는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중독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매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조사에서 맞벌이 부부 자녀의 과의존 위험군 비중이 외벌이 가정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조사의 경우 외벌이 가정의 과의존 위험군 비중은 유아동 24.3%, 청소년 29.8%였지만 맞벌이 가정은 각각 30.9%, 39.2%로 나타났다. 

이밖에 중독에 있어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급진적으로 주장했던 심리학자, 브루스 알렉산더의 사례는 유명하다. 그의 실험과 이론은 주류 심리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안락한 환경을 제공 받은 실험쥐들이 그렇지 않은 개체들에 비해 중독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는 이른바 ‘쥐 공원’ 실험은, 중독을 바라보는 관점과 치유 방법에 대한 유의미한 시사점을 남겼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심리적 허기에 빠진 ‘중독사회’

이 같은 문제의식은 다양한 학자들을 통해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환경 자체가 중독을 유발하는 자극들로 채워져 있다는 시각으로 확대됐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부터 술, 담배 같은 기호식품은 물론 IT기기를 통한 타인과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반복되는 자극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노스플로리다 대학의 데이비드 T. 코트라이트 교수는 현대사회를 ‘중독의 시대’라고 명명하면서 그 이유를 이른바 ‘변연계 자본주의’가 승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변연계는 사람의 뇌 중 한 부위로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감정과 관련이 있다. 만약 기억력, 사고력, 추리, 계획 등을 관장하는 전두엽 부위가 온전히 발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변연계 차원에서 즉각적인 만족을 위해 행동하게 된다. 

즉 변연계 자본주의란 소비자가 눈앞의 만족만을 위해 소비하고 행동하도록 충동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의미한다. 코트라이트 교수는 꿀과 담배처럼 자연 발견으로 획득됐던 쾌락자원들이 문명화 과정을 거치면서 보편적인 기호상품으로 대규모 생산되기에 이르렀고 필요보다는 쾌락 자체를 위한 소비와 중독이 조장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김병규 교수는 중독의 시대를 사는 개인을 ‘호모 아딕투스(Homo addictus)’라고 이름 지으며 동명의 책을 내놓기도 했다. 김 교수가 바라보는 호모 아딕투스 시대는 사람들이 ‘자신의 보상회로를 수시로 자극하고 중독에 빠지는 시대’다. 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큰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 탓에 서로가 서로에게 더 강력한 중독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빅테크 기업은 일회성 판매 보다는 오랜 시간 플랫폼에 머물도록 하는 중독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알고리즘은 사용자에게 개인의 취향을 추천하고 분류해주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사람의 선택이라는 고유 능력을 퇴화시키고 개별적인 취향에 갇힌 채 반복되는 자극을 탐닉하도록 몰아세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려대학교 강수돌 명예교수는 사회‧구조적인 관점을 좀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 중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사회적 승자 또는 강자를 삶의 모델로 삼고, 언젠가는 승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이른바 ‘강자동일시’ 믿음 아래 한국사회가 성장 중독에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그 성장 기류에서 낙오되면 안 된다는 공포가 두려움을 만들어 내고,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회피 행동들이 개별적 중독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두려움을 채우기 위한 회피 대상에는 스마트폰과 게임, 알코올과 약물, 쇼핑과 성형, 일과 관계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중독의 형태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 같은 기분전환 또는 소비와 소유는 인간적 욕구 충족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심리적 허기로 이어진다는 것이 강 교수의 지적이다. 

강 교수는 “사회 전체적으로 경제성장 중독에 빠져 있다. 경제가 위축돼도 축소한다거나 퇴보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말한다”라며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언론도 끊임없이 경제 성장을 전제로 이야기한다. 그런 조건 속에서 중독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노력하면 사회적 강자 내지는 승자가 될 것이라고 믿고 좇는다. 그런데 막상 승자는 승자대로 그 자리가 공허하다. 이 게임은 성공해도 실패요, 실패하면 낭패가 되는 게임이다”라며 “심리적 허기를 채우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인간적인 필요와 관련이 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받거나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내면이 충실해진다. 성과나 수치에 초점을 맞추면 영원한 불만족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불감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와야”

우리가 강박적 중독에 빠지는 대상들이 거의 대부분 잉여가치 및 쾌락자원과 관련이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인간이 그런 자극에 선천적으로 취약한 이유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런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생산과 소비가 없었다면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다양한 중독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가령 조선시대를 예로 든다면 당장 스마트폰 중독과 과당 중독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부가가치는 잉여가치와 쾌락자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오늘날의 주요한 사업들도 특정 서비스를 반복해서, 가능하면 자주 소비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4차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구독경제는 바로 이 같은 지점을 파고들고 있다.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디지털 경제의 핵심이라면 일상적 중독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롭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희망철학연구소 박남희 소장 역시 잉여가치를 한정 없이 생산하고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람들을 더 많은 노동으로 몰아넣어 피로와 무의미를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피로와 무의미 때문에 사람들이 회피와 망각의 대상을 찾게 되고 다양한 행위 및 약물 중독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박 소장은 “필요한 가치가 아니라 기호에 의한 가치를 우선시 하게 되면 절실하지 않은 여분의 것들을 위해 자기의 진짜 삶을 내어주게 된다”라며 “인간에게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데 24시간을 노동 또는 본능에만 충실한 시간으로 보내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시간은 제로에 가깝게 된다. 잉여생산과 잉여소비는 진짜 행복하다는 느낌보다는 행복하게 보이는 데에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사용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박 소장은 또 중독의 핵심은 주체성의 상실이라고도 지적했다. 중독의 근본적인 문제는 대상에 매몰돼 내가 사라진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중독은 몰입하는 사람과 매몰되는 사람의 차이에서 발생하며 문제의 해결 역시 상황을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회피하려 하지 않는 데에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매몰은 내가 사라져 없는 사이에 내가 함몰되는 것이다.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 이유라는, 그런 주체적 사유나 판단 없이 무감각적으로 빠져들어 갈 때, 그리고 그것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줄 때 중독이라고 얘기한다”라며 “중독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그 안에 머무르지 말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사회 구조 안에서 어떤 관계를 새로 형성해서 맺을 수 있을 가를 고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수돌 교수 역시 ‘직시’를 중독사회에서 벗어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으로 지목했다. 그는 직시로부터 성찰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공유가 이뤄지는 가운데 중독 시스템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가 중독 논리의 덫에 걸렸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성장이라는 것이 영원히 멈출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빠져나갈 방법도 찾기 시작하게 될 것”이라며 “그게 조금 더 진전되면 개인적으로 느낀 문제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소통하고 연대하며 바꿔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과와 외형에 중독되면 불감증의 구렁텅이에 빠져든다. 자기가 가진 것을 혹시라도 잃을까봐 하는 두려움이 커지면 과로사로 사망한 노동자나 성적을 비관해 세상을 떠난 학생에게도 성찰과 애도를 하지 못하게 된다”라며 “이런 불감증의 껍데기를 벗고 나오는 것이 문제 해결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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