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부도 사태에서 보았듯 뱅크런(은행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은 불신의 공포라는 전염병이 확산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미 무리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이 문제로 불거지면서 저축은행들이 연쇄부도를 맞이하는 사태를 경험했다. 

한 번 경험한 공포는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저축은행 사태의 데자뷔가 레고랜드 사태에서 나타나고 있다. 강원도 김진태 지사가 레고랜드 ABCP(기업어음)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면서다. 이에 일각에서는 강원도 ABCP 사태가 금융위기의 트리거가 될 것이라는 지라시가 돌기 시작했고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선 공포가 빠르게 전염됐다. 

부동산 관련 대출을 확대해 온 일부 증권사마저 쓰러질 위기에 있다는 소문까지 이어지자 정부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부랴부랴 사태 진화에 나섰다. 채권시장 안정펀드 20조원, 정책금융기관의 회사채·기업어음 매입 16조원, 증권사 지원 3조원 등 50조원 이상 규모로 매수자가 없는 채권시장에 대신 채권을 사들여 자금 조달에 숨을 불어 넣는다는 계획이다. 

아직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잡히는 시그널이 나오지 않아 추가 자이언트 스텝이 예상되는 시점으로 한국은행 통화정책기조와도 정반대의 계획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 세계적인 디레버러징(부채감소)이 진행되는 시기에 굳이 레고랜드 사태가 불거진 것이 아쉽다는 말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새로운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연장할 수도 있었는데 돌연 디폴트 선언으로 그 파장이 너무 커졌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단체장이 정치적 목적으로 전임자 흠집을 내다 벌어진 사태”라고 지적하며 “지난 9월 28일 레고랜드 사업의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가 다시 채무를 상환하겠다고 번복하면서 위축된 자금조달시장의 생명인 신뢰를 저버리게 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이번 레고랜드 사태는 김 지사의 입으로부터 촉발됐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김 지사는 지난 21일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ABCP 2050억원을 내년 1월까지 전액 상환한다고 밝혔지만 이미 시장의 불신은 뿌리를 내린 상황. 

지방자치단체의 신용은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는 것으로 간주되는데도 불구하고 손바닥 뒤집듯 디풀트 선언을 하고 나서는데 하물며 일반 기업에 대한 신뢰는 어떻겠는가. 정부와 동일한 신용등급(AAA)를 보유한 한국전력 채권조차 연 6%에 가까운 금리로도 발행목표를 채우지 못했다. 정부의 사태 봉합이 시장 전반의 신뢰 회복까지 이어질지 의문인 대목이다. 

미국의 강한 긴축 의지로 전 세계는 이미 경기침체의 공포가 드리운 상황이다. 앞으로 주식,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가격이 얼마나 더 내려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 언제든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가계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로 차주들의 이자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불어나는 이자로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정부의 과감한 조치로 당장 급한 불을 끌 수는 있겠지만 고육지책 카드는 앞으로의 불확실성을 위해 최대한 남겨놔야 한다. 

이번 레고랜드 사태는 신뢰가 생명인 채권시장에 치명타를 입혔다고 하겠다. 떨어진 신뢰로 신용리스크 프리미엄을 얼마나 더 붙여야 할지 앞으로 돌아오는 회사채 만기가 두려운 까닭이다.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는 말이 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는 뜻으로 말조심을 항상 경계하라는 말이다. 미국 월가에서는 ‘스테그플레이션’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말조차 조심 하자는 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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