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어린 라은이 ‘21번 장완 염색체 결실’ 앓아
부부도, 아이도 포기하지 않아 초등학교 입학해
무럭무럭 커가는 라은이…복지 사각지대 놓여
라은이 가정에 상처 남긴 복잡한 ‘정부 지원 기준’

라은이가 의료진에 둘러싸여 치료를 받고 있다 ⓒ투데이신문
라은이가 의료진에 둘러싸여 치료를 받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결혼 5년 차. 한 천사가 찾아왔다. 소중한 딸. 더없이 행복한 소식에 부모는 기뻤다. 사랑의 결실은 부모의 애정을 한가득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뱃속의 아이가 20주가 될 무렵, 정밀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전두엽 일부 앞쪽이 붙어있다고 한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아이를 낳으실 겁니까”라는 매우 조심스러운 질문에, 부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당연히 낳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40주를 채웠다. 그런데, 아이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 급하게 제왕절개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산모와 아이 모두 안전하게 출산을 마쳤다. 전두엽이 붙어있을 경우 안면 기형인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눈동자가 하얀 각막 혼탁을 제외하고 아이는 괜찮아 보였다.

그렇게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7일이 지났다. 또 심장이 뛰지 않는다. 병원에서 아이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전화가 왔다. 폐에는 계속 물이 찬다. 병원에선 수술을 받아도 살 확률이 적고, 받지 않아도 적다고 한다. 결정을 해야 했다. 아이를 살리고 싶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부부는 수술을 결정했다. 아이를 위해서.

심장 자체가 기형이었다. 대동맥 혈관도 끊어져 있다 보니, 혈액이 온몸으로 돌지 못했다. 혈소판 수치가 낮다 보니, 지혈도 쉽지 않았다. 아이는 열흘간 깨어나지 않았다.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도 이를 알아차렸는지, 다음날 가까스로 깨어났다. 기적이다.

아쉽게도, 부모와 아이가 건너야 할 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심장 수술을 시작으로 식도 탈장, 배꼽 탈장, 난소 탈장, 각막 이식 수술 등 여섯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아직 너무나도 작은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2개월을 지냈다. 아이는 홀로 많은 산을 건너고 있었다. 부부는 그런 아이를 그저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꼭 살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웃고있는 라은이의 모습 ⓒ투데이신문
웃고있는 라은이의 모습 ⓒ투데이신문

21번 염색체 장완 결실

라은이의 병명은 ‘21번 염색체 장완 결실’. 염색체 이상이다. 21번 염색체는 사람 유전체의 약 1.5%를 차지하는 최소 염색체다. 해당 염색체는 신생아의 지적발달장애를 일으키는 다운중후군의 원인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염색체에는 다운증후군 외 조기 발증형 알츠하이머병,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루게릭병), 백혈병, 각종 암 등과 관련된 중요한 유전자가 많다. 

21번 염색체 장완 결실이라는 병명을 가진 아이들은 국내에 거의 없다. 무사히 태어날 확률도 낮을 뿐만 아니라 태어나도 20개월을 넘길 수 없는 병이다.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무서웠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전부 쏟아붓기엔 20개월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병원에서는 아이에게 그 어떤 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물리적인 것이든, 화학적인 것이든, 무엇이 됐든 고사해두고 그저 아이가 행복하게만 해주라고 했다. 아이의 행복. 이를 위해 부부는 모든 것을 희생했다. 부부로서의 삶을 넘어 각자의 삶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의 삶이 중요했고, 인생의 전부였다. 그렇게 부부는 온전히 아이를 위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부부가 라은이를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라은이도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서서히 시간이 흘러 만 1세를 넘은 라은이는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라은이의 나이는 8살. 어엿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라은이는 장애학교에 등록됐다. 직접 학교에 출석할 수 없는 라은이는 순회교육의 일종으로 주 3회, 하루 1시간씩 수업을 듣고 있다. 숱한 고난을 보란 듯이 이겨낸 라은이가 자랑스러운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된 것이다.

치료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라은이 ⓒ투데이신문
치료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라은이 ⓒ투데이신문

뚝 끊긴 지원

어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무럭무럭 커가는 라은이지만, 장애 특성상 재활 치료나 이동보조기기(장애아동용 유모차)의 도움이 요구된다. 특히 장애아동용 유모차의 경우 커가는 아이에 맞춰진 맞춤형 기기가 필요하다. 비장애인의 유모차가 약 100만원대로 구성된다고 가정한다면, 장애인의 보조기기는 약 300만원에서 400만원, 비쌀 경우 500만원을 호가한다. 

고가의 장애아동용 유모차는 라은이 부부에겐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은 그림의 떡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과 한국예탁결제원 KSD(이하 예탁원) 나눔재단이 실시하는 ‘장애인 보조기구 지원사업’이 올해는 시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라은이는 내원하는 병원 사회사업실, 기독교 후원 재단 및 교회 성도들의 지원으로 장애아동용 유모차를 해결 할수 있었다. 

‘올해 장애인 보조기구 지원사업이 시행되지 않은 원인’을 묻는 질문에 장애인개발원 관계자는 “대상자에게 지원 되는 품목에 대한 회의 및 의사결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 부득이하게 실시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2012년부터 10년간 한국예탁결제원 KSD 나눔재단과 함께 장애인 보조기구 지원사업을 진행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 사업이 시행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이 있다. 개발원 측에 해당 사업을 문의하시는 분들에게는 민간 단체의 지원 안내를 연계하고 있으며, 해당 사업의 지속 여부에 대해선 여전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끝으로 “1억2000만원이라는 한정적인 예산 탓에 큰 규모의 지원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해당 사업의 규모가 커질 필요가 있으며, 또 꾸준히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복지로에 존재하는 발달재활서비스 상세 설명 내용 [사진출처=복지로]
복지로에 존재하는 발달재활서비스 상세 설명 내용 [사진출처=복지로]

한계 드러낸 정책

라은이는 현재  아동수당을 받는다. 라은이의 아동 수당은 현재 22만원, 인천시에서는 약 3만원의 금액이 책정됐다. 이밖에도 장애활동수당, 차량 통행료 할인, 보조기 렌탈 바우처, 활동보조 돌봄 서비스 등을 지원받고, 여기에 더해 발달치료 바우처도 받는다. 겉으로 보기엔 정부 지원이 잘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정작 라은이에게 필요한 물리치료, 구강연하치료는 발달치료 바우처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이유는 복지로의 발달재활 서비스내용에 정확히 명시돼 있다. ‘단 의료행위인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등 의료기관에서 행해지는 의료지원 불가’ 이 한문장으로 인해 라은이는 필요한 치료를 지원받지 못한다.

라은이는 현재 관 삽입을 통해 특수 분유를 먹고 있다. 약 100ml의 특수 분유를 2시간 간격으로 하루 7번 섭취한다. 음식물을 인식하고 입안으로 가져가 식도를 거쳐 위까지 보내는 일련의 과정인 연하(嚥下)가 불가능한 탓이다. 따라서 라은이에겐 삼킴 기능의 회복을 위해 시행하는 제반 치료인 구강연하치료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은이에겐 언어, 미술, 심리, 음악, 행동 등의 치료만 지원된다. 이는 라은이와 별개의 치료다. 정작 필요한 지원은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구강연하치료나 물리치료의 경우 의료적 영역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병원 진료를 통해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데, 의료영역의 경우 건강보험제도 내에서 살펴봐야 한다. 의료적인 것과 치료적인 영역은 재활 서비스 범위 밖이라고 봐야 한다. 의료적인 행위는 의료법과 관계돼 복잡한 쟁점이 존재한다. 다만, 의료영역에 대한 지원서비스가 없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자세한 사항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알 수 있다”고 전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현재 연하 장애 치료는 급여가 되는 부분이다. 외래의 경우 의원급, 상급종합병원, 그 이상의 병원에 따라 본인 부담률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비의 30~60% 정도의 본인 부담금을 내게 돼있다. 다만, 연소득 대비 너무 많은 의료비를 지출 한 사람들의 경우 부담금을 다시 환급해주는 본인 부담 상한제라는 서비스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증질환, 희귀병을 앓고 있는 경우 산정 특례 대상이어서 본인 부담금이 거의 없거나 5% 내외”라며 “제도가 현재 이원화돼 있지만 의료적으로 복지 서비스는 마련돼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런 제도를 누릴 수 있는 개개인마다의 사정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면밀하게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라은이 아버지는 “21번 염색체 장완 결실 이라는 희귀병은 나라가 세워 놓은 희귀질환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서 희귀질환으로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 또, 아르바이트를 해 단 돈 150만원이라도 별 경우 의료비를 전부 부담해야한다. 요즘 아르바이트를해도 150만원은 벌지만, 의료수급을 받지 못하니 아르바이트를 할 수 조차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기초수급에서 탈피할 수가 없는 구조”라며  “결국 사설에 의지해 개인 돈 주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실정인데,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난해 10월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기간이 다 끝나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미 충분히 마련돼 있다는 복지서비스. 그간 본인에게 닥친 위험을 보란듯이 이겨내온 라은이지만, 복잡다단한 정부 지원 기준이라는 난관은 이겨내지 못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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