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독 문제 전문가 5인과의 대화
자기 자신에 대한 ‘상황 직시’ 입 모아 강조
“중독 사실 알았을 때 외부에 빨리 알려야”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주체적 삶의 태도 중요
“스스로 사유하고 새로운 관계 형성 고민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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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중독에는 알코올, 인터넷, 도박, 마약 등이 포함된다. 이 중독 현상들은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인지됐다. 그만큼 관련 연구와 문제해결을 위한 예방 및 노력도 이어져 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새롭게 대두된 중독현상들이 있다. 투자, 기술, 음식 중독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투자, 기술, 음식 등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에게 권유된다는 점에서 그 중독의 위험성이 은폐돼 있다. 지인이 주식 종목을 추천하고 새로운 IT 기기에 대한 경험을 나누며 맛집을 공유하는 행동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반복적인 자극과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중독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계에서는 현대 자본주의가 사실상 대중의 크고 작은 중독을 매개로 유지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新중독 보고서’ 기획은 물질 중독 등 이미 알려진 현상 외에 새로운 시대 변화와 함께 발생한 중독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 기획됐다. 구체적으로는 투자행위에 잠재된 도박의 위험과 IT기기 사용 습관에서 엿볼 수 있는 기술 중독 사회에 대한 실태, 아울러 이른바 ‘푸드 포르노’가 일상이 된 사회의 부작용 등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려 했다. 나아가 감각만 자극하는 중독 문화에서 건강한 몰입으로 이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자 했다.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중독은 나와 내 관계를 무너뜨리기에 무섭다. 사례자들이 얘기하듯 중독은 1차적으로는 내가 대상에 함몰되는 경험이다. 처음에는 각자의 필요에 의해 무엇인가를 반복하지만 나중에는 반복 자체가 목적이 된다. 

자극이 주는 쾌감보다 불쾌가 높아지고 고통에 이르게 될 때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나왔을 때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많다.

이번 기획을 통해 살펴본 투자‧기술‧음식 등 일상적 중독의 경우,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상황 속에 있어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채기가 어렵다. 하지만 작은 자극이라도 의존하게 되면 강박으로 이어지고 돌이켜볼 때 쯤 무너진 일상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스스로의 상황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결국 자극을 주는 대상에서 빠져나와 내 생각과 주체성, 그리고 일상을 하나씩 되찾는 것이 치유이자 회복이다. 

<투데이신문>은 평범한 생활 가운데 은폐된 중독 문제와 사회구조적 배경을 되짚기 위해 ‘新중독 보고서’를 기획했다. 마지막 5편에서는 관련 사례자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일상적 중독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고 돌아봐야하는지를 들어봤다.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분석연구소 김형준 심리상담사 ⓒ투데이신문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분석연구소 김형준 심리상담사 ⓒ투데이신문
손실로부터의 자유 되찾은 김형준 심리상담사
“실패에 대한 비난 보다는 공감이 우선됐으면”

 

Q. 코인 투자를 시작했던 계기는 무엇인가.

지인의 권유도 있었고 지난해 초에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바보라는 얘기가 많았다. 또 향후 정부가 가상화폐에 소득세를 부과할 계획이 있다는 발표도 있었다. 이후 기관이나 기업들도 투자하는 모습을 보고 어느정도 제도권에 들어가는 것 같아 투자를 시작했다. 

Q. 투자를 안 하는 사람이 뒤처지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그걸 동조라고 한다. 동조는 자신이 대상에 대한 정답을 모를 때, 그리고 권위 있는 집단이나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할 때 나타난다. 가상화폐 투자는 누가 가치 판단을 내려주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일론머스크 같은 억만장자가 투자를 권유하면서 사회적 동조현상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2030 세대가 코인 투자에 많이 뛰어들었던 것도 그런 경향이 있지 않나 싶다. 

Q. 한국사회가 특히 부자에 대한 욕망이 큰 것 같다. 

과거에는 살아왔던 대로 살면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됐는데 지금은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불안이 높아진 것 같다. 부자가 되는 것을 생존의 문제처럼 여기는 것, 노후에 몇십억은 있어야 한다는 식의 인식은 가치가 조금 왜곡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매스컴에서도 파이어족, 경제적자유, 자유인이라는 말들에 너무 매몰돼 있는 것 같다. 직장에서 정속주행만 해도 어느 정도의 부는 축적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빨리 가려다보니 사고가 난 것 아닌가 싶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치나 목적이 돈만은 아니다. 본질은 잊고 수단만 너무 강조되고 있다.  

Q. 투자중독이 도박중독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중독의 핵심적인 속성은 내성과 금단증상이다. 하던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코인은 24시간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일하면서도 화장실에서도 자다가도 시세창을 들여다보게 된다. 자고 일어나면 폭락하는 경우도 있어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다. 일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묶여 있는 모습이 중독의 속성을 갖고 있다. 

Q. 직장생활이나 가정에서 부정적인 변화들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언제 또 폭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집중력과 주의력 저하가 나타난다. 아이와도 잘 놀아주지 못하고 아내와의 대화도 단절됐다. 업무에 대한 몰입이나 목표추구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상에 대한 상실감이 컸다. 그런데 나의 정체성이란 결국 일상에 있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먹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취미가 무엇인지가 일상이다. 그것을 잃어버리니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Q. 언제, 이제는 정말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원금에서 반토막이 났고 만회를 해보려 했는데 점점 무서워졌다. 작은 위험에도 손절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코인투자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구나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 효능감을 왜곡하면 진짜 전부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또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건 결국 관계인데 신뢰를 잃어버리면 관계마저 잃게 될 것 같았다. 신용불량자가 될지언정 신뢰불량자가 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Q. 어떤 과정을 통해 일상을 되찾게 됐는지.

결국 투자에 실패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수용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대상에 대한 상실을 받아들이는 걸 애도라고 하는데 저는 불안, 공포, 분노, 수치심, 자책감, 우울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좀 우울해져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왜 이것을 했는지 행위나 경험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내 삶의 목적이나 방향과 부합하는지 돌아 볼 시간이 필요하다. 주변의 친구나 가족들과도 감정과 경험을 나누면서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거리를 둬야 한다. 혼자서는 좀 힘든 것 같다. 도박중독치유원이나 상담실, 정신과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Q. 투자 실패에 대한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저는 임상심리학을 전공했다. 상담도 하고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교육하는 일도 하고 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책을 쓰는 일이 스스로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실패에 대한 혐오와 비난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물론 투자 실패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하지만 결국 모두 사회 구성원 아닌가.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공감의 마음으로 봐주면 좋겠다.

Q. 심리상담사로서 투자 중독 위험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손실 사실을 주변에 알려야 한다. 다른 목표를 추구할 때도 그렇지만 혼자서 자기 통제를 하는 것은 어렵다. 결혼을 했다면 배우자에게 돈을 다 넘기고 경제권에서 손을 떼는 것도 좋다. 그리고 나서 주변에도 선언을 하고 힘든 부분이 있다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신과전문의 최삼욱 진심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사진출처=본인제공]
정신과전문의 최삼욱 진심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사진출처=본인제공]
중독 치료 20년 이어온 정신과전문의 최삼욱 원장
“인지하기도 인정하기도 어려운 중독, 빠르게 알려야”

 

Q. 도박 중독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한 계기였다. 전문의가 된 게 20년 전인데 그때 처음 취직했던 병원이 중독을 치료하는 곳이었고 그 때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장을 맞게 됐다. 자연스럽게 좀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2006년쯤 강북삼성병원에서 펠로우를 시작했다. 강북삼성병원은 한국에서 도박 클리닉을 가장 먼저 오픈한 곳이었다. 마침 그때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져 1년 내내 도박 환자만 보게 됐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인연이 됐다.

Q. 주식 투자 상담 사례가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는데, 실제 관련 내방자가 늘어났나.

제 경험으로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지만 도박 중독 환자 중 주식의 비중은 5~10% 정도였는데 최근 20%까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게 주식이 떨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 아니냐고 하는데 강세장 때부터 심했다.

Q. 투자를 사회적으로 관대하게 바라보고 있어, 중독을 인지하기 더 어려운 것 같다.

4대 중독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어느 정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주식은 중독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 최근에 책을 내면서 유튜버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심지어 경제 관련 채널이었음에도 그런 용어를 처음 듣는다는 분도 있었다. 물론 주식중독이라는 의학용어는 없다. 하지만 주식이 도박화 되는 경향이 있고 이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Q. 중독에 취약한 사람 또는 환경이 있을까.

중독에는 환경과 개인적 특성 두 가지 요인이 영향을 준다. 환경은 결국 접근성이나 가용성인데 예를 들어 2006년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진 뒤 멀리 있던 도박장이 가까운 동네에 들어오면서 문제가 됐다. 또 제도적으로 허용이 됐느냐, 사람들의 심리와 문화 속에 얼마나 들어가 있느냐도 중요하다. 일본이 파친코를 쉽게 없애지 못하는 이유도 삶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도 도박이나 사행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성을 간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 위험할 수 있다. 개인적 요인으로는 뇌의 취약성, 기질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도파민 시스템, 유전적‧생물학적 특성이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취약성이 환경적인 부분과 상호작용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보고 있다.

Q. 중독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중독은 인지하기도 쉽지 않고 인정하기도 어렵다. 내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그만둬야 한다는 데서 딜레마가 생긴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야 주변에 알리는 사례가 많고 병원에 올 때도 혼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중독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능한 빨리 주위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 가족이나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자기의 상태를 알리는 것이 우선이다.

Q. 투자행위가 중독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제일 중요한 것은 돈을 빌리지 않고 자기 손해에서 끝내는 것이다. 과도한 차입이나 대출은 반드시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건 강세장일 때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편향이다. 누구나 자기 생각이 맞다는 편향에 빠지기 쉽다. 투자를 잘 하려면 자기만의 가설을 세워 증명하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편향을 극복하고 고립되지 않기 위한 다른 사람들과의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일반 투자자의 경우 직장생활이든 학업이든 장사든 자기가 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중독이 되면 모든 것들이 후순위로 밀려난다. 그런 우선순위의 변화도 지속적으로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상대로 적정기술 교육을 진행하는 대나무놀이터사회적협동조합 진일주 이사장 [사진출처=본인제공]
아이들을 상대로 적정기술 교육을 진행하는 대나무놀이터사회적협동조합 진일주 이사장 [사진출처=본인제공]
기술 중심 문명에 제동, 진일주 적정기술 활동가
“손가락 끝, 눈으로만 보지 말고 밖으로 나오길”

 

Q.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

웬델 베리라는 미국의 작가가 있다. 그는 기술을 신봉하는 현대 문명에 많은 의문을 던졌다. 적정기술은 화석에너지의 사용을 줄여 환경에 영향을 덜 주고, 마을 공동체나 개인이 수리‧제작 가능하고, 자연에너지나 인간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버려지는 자원을 아까고 재활용하고, 가족이나 마을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는 기술을 말한다.

Q. <투데이신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4명이 ‘IT기기가 없으면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변했다. 무엇이 이 같은 불안의 원인이라고 보시는가.

인간의 유전자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손과 발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체험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기술에만 의존하면 본능적인 욕구를 해소할 기회가 없어 불안을 느끼게 된다.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무엇을 해야 할 줄은 모르고 기술에만 의존하니 불안이 생긴다.  집과 건물은 점점 더 좋아졌지만 사람은 큰 방에서 혼자 가운데 누워 자라고 하면 불안함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앞으로 점점 더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디지털 기기 활용도가 높아지다 보니 세상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드는 것 같다.

손가락 끝과 눈만으로 세상을 보는 셈이다. 하지만 아이와 어른 모두 본성적으로는 내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경험의 경이로움을 좋아한다. 기술이 이렇게 급격히 발전한 시대는 불과 몇십년 되지 않았다. 실제 체험에서도 의외로 아이들은 대나무 잘라서 컵이나 필통을 만든다고 하면 줄을 선다. 

Q. 과의존과 중독 문제에서도 바깥에 대한 체험과 경험이 도움이 될까. 

아이들의 경우 밖에서 활동하게 하면 아주 간단히 해결된다. 어른들로 마찬가지긴 하다. IT기술의 확산은 어쩔 수 없을 텐데 치유법은 자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의존이나 중독문제에는 밖에 나가 체험하고 만지고 만들고 하는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른들에게도 형광들이나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아주 사소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아주 낮은 수준의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을 통해서도 무엇인가를 해보는 것이 의존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Q. 기술 혁신과 성장에 중독된 시대라는 비판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기술 중독 상태는 더 길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카카오 먹통 같은 국가적인 사태에서도 사람들은 불편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아 좋았는데, 이런 재난 가운데 새로운 기회, 새로운 경험, 자유로움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철학,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자연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탈다이어트를 통한 식이장애 극복을 전하는 유튜버 황여사 채널 [사진출처=유튜브 캡쳐]
탈다이어트를 통한 식이장애 극복을 전하는 유튜버 황여사 채널 [사진출처=유튜브 캡쳐]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난 유튜버 ‘황여사’
“다음 세대 딸들에게 대물림 되지 않았으면”
 

Q. 한국사회에서 느꼈던 체중이나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이 어느 정도였나. 

어릴 때부터 통통한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항상 덩치가 좋다, 살 빼면 예쁘겠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어느 날 밤에는 우유가 먹고 싶어 냉장고를 열었는데 크게 혼이 나 서러웠던 기억이 있다. 하도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하니 엄마도 걱정돼서 못 먹게 했던 것 같다. 이후 대학 때 다이어트를 하고 살이 빠지니까 칭찬이 들려왔다. 거기서 희열을 느꼈고 욕심이 생겼다. 말랐다는 소리를 태어나서 처음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되니 건강보다 체중조절이 중요해졌고 살이 찌면 큰일이 날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Q. 거주경험이 있는 미국, 독일과 체중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나.

미국과 독일도 식이장애는 많다. 근데 한국처럼 다른 사람의 체중이나 체형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평소에도 아주 쉽게 살쪘다, 살빠졌다는 얘기를 칭찬이나 안부인사로 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이상하게 본다. 그렇다고 해서 체중에 대한 압박이 없는 건 아니다. 해외에서도 살이 찌면 빼야겠다는 생각들은 한다. 근데 남이 뭐라고 해서 감량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Q. 마른 체형이 미의 기준이 되면서 바디프로필을 찍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바디프로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자신의 소중한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건데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가 상담한 식이장애 사례 중 바디프로필을 시작했다가 문제로 이어졌다는 분들이 많다. SNS를 보면 바디체크 사진과 식단을 올리는 계정이 많다. 남이 보기에는 좋아 보이는데 거기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 사람은 영양학적으로 보충해야 하는 영양소가 있다. 공급을 중단하면 기능도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생리불순도 생기고 탈모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특히 10대, 20대들은 이런 부작용에 대한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살찌는 것보다 부작용이 낫다고도 생각한다. 

Q. 유튜브 영상에서 다이어트를 정신질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가 경험한 다이어트는 건강한 생활습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칼로리를 세분화하고 숫자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된다. 식사시간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순간인데 매번 시간과 칼로리를 체크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삶을 즐기지 못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모두 부담이 됐다. 약속은 대부분 식사자리니까 오후 6시 이후 금식했던 저로서는 정말 나가기가 싫었다. 정해진 시간 이후 밥을 먹자고 하면 가족에게도 짜증을 냈고 결혼 후에는 회사일을 끝내고 온 남편에게도 화를 냈다. 모든 자리에서 안절 부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질환과 같다고 생각했다.  

Q. 스스로도 폭식증을 겪은 적이 있었나. 

한국에 살면서 한창 다이어트 중일 때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술자리가 좀 많은 기업이었다. 회식을 하고 술을 마시면 절제력을 놓게 됐고 새벽에 식욕이 터지는 경우가 있었다. 빵을 너무 좋아했지만 다이어트 하니까 못 먹고 냉동실에 쌓아 뒀는데 술이 취하면 문을 열고 녹지도 않은 빵을 다 먹었다. 취한 상태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눈앞에 빵 봉투들이 있는 게 보였다. 

Q. 탈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놓아버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밥을 먹는 연습을 했고 나중에 면을 먹는 연습을 했다. 시간제한도 조금씩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사람들과 그 식사자리에만 집중을 하게 됐다. 살아가는 얘기를 즐겁게 나누고 먹는 시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삶이 자유로워졌다. 예전에는 밥을 늦게 먹으면 무조건 운동을 했는데 안해도 된다는 마음을 가지니 정말 편안해졌다. 예민함도 없어졌고 살이 쪘는데도 얼굴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무월경 증상에서 회복하고 엄마가 됐다는 것이다. 지금은 딸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그게 너무 예뻐서 예전의 제 삶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 유튜브를 통해 제 경험을 전하면서 다음 세대의 딸들에게는 대물림되지 않게 해야겠다는 사명감도 갖게 됐다. 이런 이타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큰 변화가 아닌가 싶다. 

희망철학연구소 박남희 소장 ⓒ투데이신문
희망철학연구소 박남희 소장 ⓒ투데이신문
철학을 통한 중독으로부터의 해방, 박남희 소장
“문제 앞에서 회피하지 않는 건강한 주체성 키워야”
 

Q. 열정과 몰입, 매몰(중독)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의지를 갖고 주체적으로 할 때,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몰입은 그런 의지의 매개는 없이 자기가 빠져드는 것인데 그래도 ‘나’는 남아 있다. 하지만 매몰은 내가 사라져 없어지고 함몰되는 것이다. 내가 주체적으로, 자율적으로 제어하고 있느냐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Q. 주식의 경우 누구에게는 직업이고 투자지만 누구에게는 도박과 중독이 된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경우에 따라 기술자나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중독자가 되기도 한다. 내가 왜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지, 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면 직업과 투자가 된다. 그런데 안하면 뒤쳐질 것 같아서, 자신을 고려하지 않고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처음에는 스스로 제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대상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 그로부터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버거워지면 중독으로 이어진다. 

Q. 중독에 있어 사회‧환경적인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개인의 성향이나 유전적 요인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어떤 기질을 갖게 된 원인을 살펴보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은 사회구조 속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개인의 기질과 성향만으로 진단하기에는 현대 사회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철학자 사르트르가 얘기했듯 사람은 어떤 존재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다. 어떤 시간과 훈련, 습관 속에서 길들여졌는가가 중요하게 작동할 수 있다. 필요에 의해 약물 치료도 해야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Q. 잉여생산과 소비가 중독을 만들어 낸다고도 했다. 

인간에게는 시간적, 위치적인 한계가 있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서 절대적 필요 이상의 것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하루가 24시간이라면 8시간은 생리적으로 필요한 수면에 사용하고 8시간은 경제생활을 위한 노동을 하게 된다. 나머지 8시간은 사람의 의미를 위해 살아야 하는데 본능에만 충실한 시간으로 보내거나 노동에 할애하기도 한다. 결국 잉여생산과 소비를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붓는다. 무한경쟁 가운데 생긴 피로와 무의미를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행위 중독과 약물 중독에 빠져든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야 하는 시간이 제로에 가깝게 되는 그런 삶에서 의미와 기쁨을 찾기는 어려워진다. 소비에 있어서도 필요한 가치가 아니라 기호에 의한 가치를 우선시 하게 되면 절실하지 않은 여분의 것들을 위해 자기의 진짜 삶을 내어주게 된다. 

Q.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문제인식과 시정의지를 지목했는데.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또 사람은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주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경험과 가치를 사유하고 마주하는 법을 상실하면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주체적으로 생각해 해결하기 보다는 회피의 대상을 찾고 알코올이나 약물, 일, 게임 등에 빠지기 쉽다. 스스로 자기와의 사유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며 건강한 주체성을 키워야 한다. 그런 방법들을 통해 중독 안에 머물지 말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사회 구조 안에서 어떤 관계를 새로 형성해서 맺을 수 있을 가를 고심해야 한다.

Q. 건강한 몰입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예술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술가의 몰입은 자기 자신이나 일상생활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몰입을 함으로써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산성을 만들어 내부의 기쁨이라든지, 타인에게 더불어 즐거움을 준다든지, 사회에 유익함을 줄 수 있다. 그런 경우라면 건강한 몰입이라 할 수 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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