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정준영 성덕이 만든 덕후감 영화, 충무로 뒤집다
‘덕질’도 문화 한 영역…부정적 시선 아직도 여전해
영화 작업하며 분노·슬픔·우울 ‘감정의 롤러코스터’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결과가 어떻든 아름다운 일

【투데이신문 서정인 기자】 내 첫사랑이 범죄자가 됐다. 그를 향해 달려갔던 기차, 그를 만났던 서울, 그곳이 법원이 될 줄이야. 2019년 불법 촬영물 제작 및 유포사건의 보도 되던 때, 그의 소식을 연예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마주하게 됐다. 여기서 ‘그’는 정준영. 세글자 이름 대신 ‘그 사람’, ‘그’라는 호칭만 남았다. 헌신적인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있었던 그였지만, 쓸어 모을 수 없을 만큼 넘쳐흘러 버린 그의 잘못이 결국 7년의 덕질이라는 그릇을 깨뜨려 버렸다.

“‘진짜 덕질’을 한 건 처음이었어요”

나만 겪는 시련이라 생각했지만 “너도? 쟤도? 얘도? 나도!”라며 내 얘기 좀 들어보라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은 시작됐다.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인 지 어언 1년이 지났지만 투데이신문은 웃으며 만나야 할지, 위로를 건네야 할지 고민하며 오세연 감독을 만났다. 이 고민이 무색할 만큼 그는 벌써 사랑할 준비가 돼 있다며 포부 꽉 찬 미소를 보여 주었다.

분노, 슬픔, 허탈, 웃음….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그는 이미 롤러코스터를 즐기고 있었고, 더 높은 곳에 닿았을 때 변화하는 자기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불안한 감정 기복이 아닌 감정의 다채로움을 표현할 수 있는 그였다.

덕질의 교과서이자 사랑을 고백하는 로맨티스트 영화 <성덕>의 오세연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업실에 걸려 있는 현수막과 오세연 감독&nbsp;&nbsp;ⓒ투데이신문
작업실에 걸려 있는 현수막과 오세연 감독  ⓒ투데이신문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영화감독이자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자 성덕인데, 어떻게 불러드리는 게 맞을까요. 투데이신문 독자들에게 본인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자기소개가 제일 어렵네요. 저는 <성덕>이라는 영화를 만든 오세연이라고 합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지내고 있으며,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영화 <성덕>은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관객 수 1만 돌파, 대종상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노미네이트 심지어 사회적인 관심까지. 말 그대로 감독님은 성공한 덕후인데요.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가족들은 저의 가장 오래된 첫 번째 팬인데, 저희 집에 유행어 같은 게 있어요. “네가 거기 왜 껴?”(웃음) 가족들이 연예인 병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좀 다듬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죠. 좋아해 주는 친구들도 정말 많아요. 축하도 해 주고. 요즘에는 스케줄이 많아서, 친구들 만날 때도 어렵게 만나요. 그러니까 이제 놀리듯이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죠. 주변에 응원을 많이 받고 있어요. 또 첫 영화다 보니까 특히나 힘을 많이 실어줘요. 친구들과 가족들 덕분에 잘 버티고 있어요.

영화 '성덕' 포스터 [사진제공=오드(AUD)]<br>
영화 '성덕' 포스터 [사진제공=오드(AUD)]

Q. 포털 사이트에 ‘오세연’을 입력하면 ‘오세연 감독, 오세연 성덕’ 그리고 ‘오세연 정준영’이 나열돼요. 그를 떠나려고 영화를 만들었는데, 연관 검색어로 또다시 엮였네요.

지금 말씀해주셔서 알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별생각이 없어요. 제가 ‘그분’의 덕후였던 사실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된 거잖아요. 영화를 만들기 전의 저 자신과 영화를 만든 이후에 저 자신이 더 성장해서, 이름이 함께 뜨는 게 딱히 기분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네요.

Q. ‘오덕’ , ‘덕후’ , ‘덕질’ 등은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 또는 사랑의 다른 형태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들을 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부정적인 생각들이 없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저희 영화 기사 전문에 달린 댓글을 보면 “쓸데없이 연예인 쫒아 다니고, 정신 차려라” 이런 댓글도 있어요.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는 거죠. ‘덕질’도 문화의 한 영역이고, 어떤 기호에 따른 것뿐인데, 예전부터 하대 받는 분위기는 있었죠. 지금까지 많이 폄하 했기에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은 당연히 많은 것 같아요. 그분들에 대한 제 생각은 “그럴 수 있다” 싶기는 해요. 한편으로는 안타깝죠. 덕질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아마 그렇게 욕하면서 본인들도 무언가에 푹 빠져있는데, 그걸 모르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랑하지 않는 삶은 너무 재미 없으니까.

Q. 감독님은 ‘덕질의 교과서’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표본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부정적인 시선을 많이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개봉 후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할 때 그런 부분을 실감한 것 같아요. 관객들이 영화에 대한 질문보다 고민 상담을 많이 하셨거든요. “제가 OO덕질을 하는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식으로요. 근데 사실 저도 드릴 말씀이 없는 게 제 덕질이 망해서...(웃음)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답변을 드려요. 뭔가 감사하기도 하고 이런 반응들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Q. 감독님의 덕질의 역사를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정준영이 덕질을 하게 된 첫 인물인가요.

저는 돈을 쓰거나 그 사람을 보러 가는 등의 자발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어요. 어린 시절을 할머니와 함께 보내서 하루에 드라마를 네다섯 개씩 봤는데, 그 드라마의 주인공 캐릭터를 좋아했던 건지 배우를 좋아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종영이 되면 덕질을 마무리하고, 이런 반복이 자주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본격적으로 팬 카페에서 활동도 하고, 직접 보러 다니고, 앨범을 구매하는 등 ‘진짜 덕질’을 한 건 ‘그분’이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갑자기 끝나버렸죠. 영화 제작 기간에도 남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했는데, 그분들도 자잘한 사건 사고들에 휘말리면서 더 이상 정을 붙일 수가 없더라고요. 영화 제작 후에는 외국 배우를 좋아했는데, 또 사건이 터졌어요.(웃음)

Q. 이제는 탈덕이라는 개념에 불안함이나, 두려움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입덕과 탈덕에 조금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연애 가치관 같기도 해요. 연애를 너무 많이 해봐서, ‘이제 똑같은 사랑이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이제 더 이상 상처받기 싫으니까.

이전만큼 100%를 다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혹시 모를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 사람을 100% 신뢰하지 않는 것이 과거와의 차이가 아닐까.

오세연 감독 [사진제공=오드(AUD)]<br>
오세연 감독 [사진제공=오드(AUD)]

Q. 아이돌, 스타들이라면 모범이 돼야 맞겠지만, 연애도 하고 범죄도 저지르고 팬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 때도 있어요. 그야말로 그들도 평범한 인간이고 부족한 인간일 뿐이죠. 어쩌면 아이돌에 대한 환상을 팬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간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복합적이에요. 자기 자신도 나를 잘 모르고, 제일 친한 내 가족, 친구들도 우연히 몇 년 만에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이처럼 어떤 사람을 속속들이 다 안다는 게 불가능하죠. 하지만 팬들은 스타가 보여주는 만큼만 볼 수 있어요. 스타가 보여주는 좋은 모습, 어떻게 보면 설계된 모습만 보죠. 그러다 보니 팬들이 보지 못하는 스타의 공백을 좋은 방향으로 채우는 것 같아요. 누군가 한 가지의 좋은 일을 했다면 그냥 한 가지 좋은 일을 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좋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요즘 아이돌 시장은 사람 자체를 셀링하는 거나 다름이 없는데, 결국 이런 마케팅이 “좋은 사람, 멋진 사람처럼 보이도록 하는 건 아닐까?”이런 생각이 들어요.

Q. 조금 조심스럽지만, 사실 예술계에는 범죄를 일으키고 자연스럽게 복귀하는 사례가 종종 보여요. 특히 그들의 ‘예술’을 ‘예술’ 그대로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가 발생하는데, 앞으로 많은 작품이 기대되는 감독으로서 이 딜레마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객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그 사람 노래를 아직 듣나요?”에요. 또는 “탈덕한 스타의 노래를 계속 들어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종종 해주세요. 저는 그럴 때마다 안 된다는 입장이에요. 물론 작품 자체가 좋게 느껴질 수도 있고 또 그 작품과 함께한 추억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작품에 사람의 가치관이라는 것이 녹아들 수밖에 없는 것 같고 이를 소비하게 되면 결국 그에게 금전적인 이득을 주게 되는 거잖아요. 이런 점 때문이라도 소비를 지양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세상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아요. 물론 슬프지만, 다시 찾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내 영혼의 노래와 내 영혼의 영화를!

Q. 군더더기 없는 영화 제목도 인상적이에요. 다른 후보군은 없었나요.

다른 제목은 없었어요. 처음부터 <성덕>이었어요.

일단 제가 성덕이었기 때문에 ‘성덕’이라는 두 글자가 정말 자랑스러운 단어였죠. 하지만 사건 이후에 그 단어 자체가 자신을 너무 부끄럽고, 슬프게 하고, 민망하게 하는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단어의 의미는 똑같은데 어떤 사건의 전과 후에 의미가 다르게 느껴질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변화가 재밌었어요.

또한 영화를 만들면서 ‘성덕’이라는 말이 우리가 주로 사용하기로는 계를 탄 팬. 즉, 스타의 손을 잡고, 사인받고, 함께 사진을 찍는 팬을 뜻하는 말인데, ‘나는 그런 것들을 다 해봤음에도 지금 성덕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진짜 ‘성덕’은 뭐지?’라는 의문도 생겼어요. 그런 의미를 계속 찾다 보니 제목을 ‘성덕’으로 하게 된 것 같아요.

Q.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 걸로 알아요. 제작을 진행하면서 심경의 변화는 없었나요.

“분노에 차서 카메라를 들었다”라는 멘트로 영화가 시작되는 것처럼 ‘분노’가 크니까 다른 감정들이 가려져 있었어요. 영화 제작하면서 다른 감정들을 발견한 거죠. 분노, 슬픔, 우울 등등 다양한 감정을 겪으면서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고, 이 영화를 만들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계속해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어요.

Q. 영화 작업을 위해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인물이 있을까요.

7년 동안 같이 덕질했던 ‘은빈’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영화에는 편집이 됐는데, 저작권 비용 때문에 수익이 발생하니까 음악은 틀지 않고 함께 즐겨 듣던 ‘그분’의 노래를 불렀어요. 그 노래를 부르면서 저희도 모르게 명곡이었다며 칭찬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알아채고는 서로 머리를 때리면서 “우리 왜 이러냐” 이런 적이 있어요. 그러곤 단호하게 “저희 진짜 팬 아니에요”라며 마무리 멘트를 했는데, 그 상황이 기억에 남네요.

Q. 그 사건 이후, 성인이 된 이후 스타를 보는 관점이 달라졌나요.

저는 누구를 좋아할 준비가 돼 있고, 관심도 정말 많아요. 하지만 예전과 바뀐 게 있다면 딱 보여주는 만큼만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안 보이는 부분을 긍정적인 면으로 채웠다면 이제는 그냥 보이는 만큼만 보고 나머지를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인간성이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추측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 됐어요. 지금은 어떻게 보면 ‘수용자’인 거죠. 그냥 보기만 하는 사람, 듣기만 하는 사람.

Q. 이 영화로 팬의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예술 장르’가 탄생했다고 보는데요. 이 시발점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는 제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아무래도 팬의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팬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부분, 팬덤에 대한 저의 의견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얼마 전에는 팬덤 문화에 대한 논문을 쓰신다는 분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고요. 계속 팬으로 살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팬으로서 뭔가를 만드는 일은 이미 영화 ‘성덕’과 곧 나오는 저의 책 ‘성덕 일기’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했다고 생각해요.

Q. 다른 누군가의 팬이 돼 나중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 어떨 것 같나요.

저는 이 영화가 “덕질 할 때 조심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영화가 아니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일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정말 아름다운 일이구나”라고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또다시 누군가를 덕질을 하게 되는 그런 시점에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1%의 의심 또는 불신을 가지고 있어도 나머지 99%는 온 힘을 다해서 좋아하자고 다짐할 것 같아요.

Q. 이 영화를 통해 덕질 문화를 처음 경험해 보는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저희 영화가 꼭 덕질하는 사람만 공감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제 주위의 한 번도 덕질을 해보지 않았던 친구들이 영화를 본 후 자기가 좋아했던 것들, 또는 좋아했다가 실망해서 떠난 것들이 많이 생각났다고 말해 줬어요. 소싯적 잠깐 좋아했던 연예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과거의 연인이 될 수도 있겠죠. 이렇게 각자 본인의 어떤 사랑과 실패의 경험담을 많이 떠올리더라고요. 이 영화 자체가 누군가를 좋아해 봤고 또 거기에서 상처받아봤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세연 감독 [사진제공=오드(AUD)]<br>
오세연 감독 [사진제공=오드(AUD)]

Q. ‘덕후 오세연’과 ‘감독 오세연’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저 그냥 ‘오세연’ 하면 안 되나요?(웃음) ‘덕후 오세연’의 경우 성공한 줄 알았다가 실패한 줄 알았지만 결국 성공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결국엔 그 시간 자체가 행복했으니까요. 그리고 ‘감독 오세연’은 부담스럽네요. 이제 시작이지만 어떤 성취나 정량적인 것들을 떠나서 제가 나중에 수백억이 들어가는 대작을 찍더라도 '‘성덕’만큼 관객이랑 가까이서 소통하고 사랑받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감독 오세연’을 평가하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이런 점에서는 이미 성공한 것 같아요.

Q. 다음 작품은 어떤 걸 선보일지 기대되는 데, 준비 중인 게 있을까요.

극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등 모두 가리지 않고 작업을 하고 싶어요. 영화랑 드라마도 쓰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제가 학생이니까 학교도 잘 마무리해야 되고,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그 안에서 잘 헤쳐 나가 꾸준히 작업을 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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