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선거’ 막고자 2015년부터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실시
현행 위탁선거법, 과도한 선거운동 제한에 개정여론 높아
국회에 법 개정안 계류돼 있으나 통과 여부는 ‘불투명’
“체육관선거와 비슷”…‘깜깜이 선거’가 ‘돈 선거’ 부른다

내년 3월 8일, 전국 17개 시·도에서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열린다. 총 200만명이 넘는 조합원이 유권자로 참여하며 각 지역 협동조합 경제의 향방을 결정하는만큼 의미가 큰 선거다. 개별적으로 열리던 조합장선거는 지난 2015년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농업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산림조합에서 위탁받아 한날에 동시에 치르게 됐다.

특히, 1000여 곳이 넘는 농협이 동시에 조합장선거를 치르며 가히 전국선거라 불릴만한 스케일이 됐다. 농민들에게는 농촌지역에서 농협이 갖는 위상을 생각하면 공직선거에 비할 정도로 중요한 선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조합장선거는 ‘깜깜이 선거’라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조합장 후보들이 무슨 정책을 어떻게 펼치려 하는지 자세히 알기도 전에 선거를 맞고 있다. ‘깜깜이 선거’는 ‘금품 선거’, ‘돈 선거’를 조장할 위험이 다분하다. 이를 방지하려면 ‘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이하 위탁선거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열린 2019년 3월 13일 전라북도 전주시 전주농협 개표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열린 2019년 3월 13일 전라북도 전주시 전주농협 개표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며 지역마다 물밑에서 선거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농협, 수협, 산림조합 조합장을 뽑는 선거인만큼 지역경제와 조합원에게 중요한 선거이나 후보자의 선거운동이 과도하게 제한돼 ‘깜깜이 선거’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조합장선거는 지난 2015년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관리를 위탁받아 전국동시선거로 치러지고 있다. 조합장선거가 ‘4당3락’(4억원 쓰면 당선, 3억원 쓰면 낙선)이란 말이 돌 정도로 '금품 선거'가 횡행하자 2014년에 제정된 위탁선거법에 따라 각 조합이 맡아온 선거관리 업무를 중앙선관위에 위탁하게 됐다.

같은해 3월 11일 실시한 제1회 전국조합장선거는 전국 1326개 조합(농협 1115개, 수협 82개, 산림조합 129개)에서 진행됐으며 총 선거인수 229만7075명 중 184만3283명이 투표했다. 투표율 80.2%가 보여주듯 조합원들은 전국동시로 처음 치러진 조합장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당시 공직선거 투표율을 보면 2012년 4월에 열린 총선 투표율은 54.2%, 2014년 6월에 열린 지방선거 투표율도 56.8%에 머물렀다.

첫 전국동시선거는 일정 부문 공명선거로 향하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후폭풍도 거셌다. 지역마다 선거과정과 관련된 각종 소송이 뒤를 이었으며 “변호사들만 신났다”거나 “‘4당3락’이 ‘5당4락’으로 올랐다”는 뒷말도 무성했다.

중앙선관위,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림청 등은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둔 2019년 1월 ‘조합원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고질적인 ‘돈 선거’는 더욱 은밀하고 지능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라며 “구체적으로 호별로 방문해 현금을 쥐어주거나 경로당을 방문해 술과 과일을 제공하는 행위, 조합원을 모아 지지부탁과 함께 식사를 제공하는 행위, 다량의 상품권을 구입해 나눠주는 행위 등이 아직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관계기관은 “불법행위를 신고·제보하면 최고 3억원까지 포상금을 받고 금품을 제공받은 사람도 최대 50배의 과태료가 부과되나 자수하면 과태료가 면제되거나 형을 감면받는다”라며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를 실현하려면 후보자와 유권자인 조합원 그리고 국민 모두의 관심과 협조가 절실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15년 2월 9일 경기도 수원시의 한 논에서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돈 선거’ 근절 볏짚태우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15년 2월 9일 경기도 수원시의 한 논에서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돈 선거’ 근절 볏짚태우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는 2019년 3월 13일 진행됐으며 전국 1344개 조합에서 조합원 178만3954명이 투표에 참여(투표율 80.7%)했다. 조합장 후보로는 총 3474명이 등록해 평균 2.6대1의 경쟁률(제1회는 2.7대1)을 보였다.

중앙선관위는 “이번에도 금품선거가 재현됐지만 과거에 비해 조합원들의 보다 적극적인 신고 및 제보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조합장선거는 공직선거에 비해 선거인 수가 적어 금품으로 득표에 영향을 주려는 잘못된 인식과 금품수수에 대한 관대한 관행이 남아 구성원들의 자정노력이 절실한 선거”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앙선관위는 같은해 4월 조합장선거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위탁선거법을 개정해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고 유권자의 알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다.

위탁선거법은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때부터 협소한 선거운동의 범위와 유권자 알권리 제한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위탁선거법상 선거기간은 ‘투표일로부터 14일’에 불과하다. 공직선거는 선관위에 등록한 예비후보자에게 선거운동기간 전 선거사무소 설치, 현수막 게시, 명함 배포 등의 선거운동을 허용하나 조합장선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단, 위탁선거법은 중앙회장 선거에 한해 예비후보자 제도 적용을 허용하고 있다.

조합장후보자의 선거운동조차 ▲선거벽보 첨부 및 선거공보 발송 ▲어깨띠나 표찰, 기타 소품 이용 ▲해당조합이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이나 동영상 등 게시 ▲전자우편 전송 ▲전화통화 혹은 문자메시지 전송 ▲선거인에 명함을 직접 주거나 지지 호소 정도로 제한돼 있다.

이처럼 제한된 선거운동은 현직조합장에게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직조합장은 타 후보자 혹은 입후보예정자들과 비교해 자신을 조합원에게 알릴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선 현직조합장 1068명이 입후보해 775명이 당선됐다. 재선 성공률이 72.6%에 달하며 기존 선거제도가 현직조합장에게 유리하다는 지적이 결과로도 나타났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유권자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조합원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단체 또는 조합원 총수의 5% 이상 서명은 받은 조합원은 선거운동기간 중 ‘후보자 초청 정책토론회’를 공정하게 개최하자”고 건의했다. 유권자에게 발송하는 선거공보에는 후보자의 전과기록도 게재하고 선거벽보 첨부 장소도 확대하는 안도 덧붙였다.

조합장선거 예비후보자 제도 신설도 개선의견에 포함했다. 중앙선관위는 선거기간 개시일전 50일부터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예비후보자 또는 후보자가 조합이 개최하는 공개된 행사를 방문해 정책발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후보자의 균등한 선거운동 기회를 보장하도록 조합원 전화번호를 가상번호로 모든 후보자에게 제공하는 안도 덧붙였다.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치르는 조합 중 90% 이상이 농협과 산림조합인만큼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농식품부는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둔 2019년 3월 “선거 이후 선거과정과 결과를 평가해 제도개선이 이뤄지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과도한 선거운동 제한 등 현행 위탁선거법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인 것이다.

지난 2020년 21대 국회가 열리며 여러 위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돼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지난해 10월 대표발의한 위탁선거법 개정안을 보면 조합장선거의 선거운동 확대안이 상당부문 반영돼 있다. 위 의원은 “그동안 만연한 관행적 금품선거를 지양하고 공명선거를 정착시키겠다는 취지로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시행됐지만 지난 기간 선거운동에 대한 지나친 제약으로 비판을 받아왔다”라며 “이는 현행법이 공직선거와 달리 예비후보자 제도와 단체 또는 언론기관의 후보자 초청 대담·토론회 제도 등을 도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들 위탁선거법 개정안은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까지 4개월도 남지 않은 현재까지도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위성곤의원안은 위탁단체 및 언론기관 등이 주관하는 대담·토론회를 허용하자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다만 이는 위탁단체의 자율성 및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대여론도 있는 모습이다.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열린 지난 2019년 3월 13일 세종시 금남면 남세종농협 본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조합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열린 지난 2019년 3월 13일 세종시 금남면 남세종농협 본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조합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회의원들이 해당 개정안 통과에 소극적이라는 분석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용희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국회에서 위탁선거법 개정안에 관한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라며 “현직조합장에게 유리한 선거제도를 고쳤다가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까봐 의원들이 나서지 않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내년 3월 선거에서 당선된 조합장들은 지역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 오는 2024년 4월 총선을 앞둔 의원들 입장에서는 위탁선거법 개정안이 부담되는 사안일 수 있다. 실제 국회 행안위 홈페이지에서 위성곤의원안에 대한 입법예고 등록의견을 보면 90여건의 반대가 게시돼 있다. 

이 위원장은 “지금 상태로는 말은 선거지만 체육관선거와 비슷하다”라며 “선거운동기간이 있지만 조합원들이 투표할 후보자를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한 정보를 들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합장선거를 통해 조합원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거듭나야 한다. 농촌현장에서 일선 지역농협을 보면 실질적인 사업에서 농민을 위한 내용을 찾기 어렵다”라며 “이번 선거에서 농민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조합장이 많이 당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려면 위탁선거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희망했다.

한편, 중앙선관위는 지난 11일 내년 3월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돈 선거’ 척결에 모든 단속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전국 17개 시·도에서 ‘돈 선거’ 척결 전담 광역조사팀을 운영하고 과거 ‘돈 선거’ 발생 지역 등은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야간에도 특별단속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반장, 영농·부녀회장, 어촌계장, 조합 대의원 등을 ‘조합선거 지킴이’로 선정해 자정노력도 권장한다.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는 내년 2월 21일부터 22일까지 후보자등록 신청을 받으며 다음날인 23일부터 선거운동이 개시된다. 2월 26일 선거인명부가 확정되면 28일까지 선거인에게 선거공보를 동봉한 투표안내문이 발송된다. 투표일은 3월 8일이다.

시일이 촉박하지만 국회에서 위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번 선거부터 적용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위탁선거법이 개정되면 그에 관한 시행령, 시행규칙 등도 개정해야 한다”라며 “가급적 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이번 선거에 그 내용을 적용할 수 있다. 어떤 내용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말 안에는 법이 개정돼야 준비할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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