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이프덴’ 공연 장면 [사진제공=쇼노트]<br>
뮤지컬 ‘이프덴’ 공연 장면 [사진제공=쇼노트]

누구든 인생의 갈림길에서 항상 최선이라 여겨지는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결과를 당장 알 수 없을지라도 그 선택이 가장 좋은 미래로 이끌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판단의 기준은 매번 다르지만, 우리는 그 선택에 어렴풋이나마 적잖은 기대를 건다. 그렇게 선택에 선택을 거듭해 얻은 결과가 모여 삶을 이루고, 그 삶은 언젠가 인생이라는 단어로 갈무리된다. 눈앞에 마주한 오늘 역시 수많은 선택이 만든 중간 결과물이다.

하지만 때때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와 맞닥뜨리기도 한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여겼던 사건이 벌어지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을 만큼 혼란에 빠지기 마련이다. 자연히 새로운 선택이 가져올 미래를 예측할 만한 판단력조차 흐려진다. 뮤지컬 ‘이프덴(IF/THEN)’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도 그런 위기 앞에 섰다. 두려움을 안고 새 출발을 앞둔 이 순간, 선뜻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고민하는 엘리자베스. 이번에는 반드시 ‘괜찮은’ 선택이어야 한다. 그가 내린 선택은 과연 옳았을까?

뮤지컬 ‘이프덴’이 한국 초연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8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개막해 오는 2월 26일까지 이어질 이번 공연은 한국 관객들과 나누는 첫인사인 만큼 여러모로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부응하듯, 작품에도 많은 부분에 세심하게 공들인 기색이 역력하다.

우선 초연답게 출연진부터 화려하다. 작품에는 정선아, 박혜나, 유리아, 에녹, 송원근, 조형균, 신성민, 윤소호, 최현선, 이아름솔, 조휘, 임별, 정영아 등 다양한 작품에서 눈부신 열연을 펼쳤던 배우들이 함께해 더욱더 기대를 모았다. 특히 ‘뮤지컬 디바’ 정선아는 출산 후 복귀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해 또 한 번 주목받았다.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하면서 운명처럼 찾아온 작품’이라 말한 대로, 그가 ‘이프덴’에 얼마만큼의 애정과 자신감을 품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또,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창작진인 브라이언 요키와 톰 킷 콤비의 합작으로 탄생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는 점도 주목해 볼 요소다.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와 탄탄한 드라마, 인간 심리를 깊숙하게 파고든 분석, 공감을 일으키는 대사와 구체적 상황 묘사 등은 뮤지컬 ‘이프덴’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품을 보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인물의 내면에 몰입해 울고 웃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뉴욕 전체를 위에서 조망하는 듯한 풍경과 한정된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무대, 감각적인 연출 등도 ‘이프덴’이 가진 강점이다.

작품은 미국 뉴욕에 사는 38세 여성 엘리자베스의 삶을 조명한다. 지금껏 꽤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던 엘리자베스에게도 선택은 늘 극적인 순간에 과제처럼 주어졌다. 그도 예전에는 사랑 하나만 믿고 과감히 내린 결정이 오늘로 이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무대 위에 선 엘리자베스는 십 년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이제 다시 취업 준비생이 돼 뉴욕 한복판에 홀로 서 있다. 하지만 앞으로 후회할 만한 선택은 더 하고 싶지 않다던 그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선택지가 놓인다. 케이트를 따라갔을 때 펼쳐질 ‘리즈’로서의 삶과, 루카스를 따라갔을 때 펼쳐질 ‘베스’로서의 삶은 너무나 다른 방향을 향한다. 케이트와 함께한다면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 남아 기타연주를 감상할 것이고, 다른 선택지를 택한다면 루카스가 주도하는 주거환경 개선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엘리자베스의 선택을 따라 두 가지로 나뉜 삶의 모습이 동시에 평행 세계로 나타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캐릭터 구분이 쉽지 않을 관객들을 위해 엘리자베스가 베스일 때는 안경을 착용하고, 리즈일 때는 안경을 벗는 것으로 다른 삶을 표현했다. 여기에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각각 파란색 조명과 주황색 조명을 비춰 시각적으로 또 한 번 캐릭터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왔다.

뮤지컬 ‘이프덴’ 공연 장면 [사진제공=쇼노트]<br>
뮤지컬 ‘이프덴’ 공연 장면 [사진제공=쇼노트]

‘이프덴’이라는 작품 제목에 담긴 뜻처럼 만약을 상상하는 일은 참 흥미로우면서도 두렵다. 만약 엘리자베스가 리즈로 살기를 택했다면 한눈에 봐도 매력적인 조쉬와 운명처럼 만나 사랑을 키웠을 것이다. 반대로 베스의 삶을 택했다면 접었던 꿈을 현실로 꽃피우면서 잘 나가는 도시계획 전문가가 됐을 것이다. 그런 베스 곁에는 오랜 친구였던 루카스와 스티븐이 함께다. 하지만 어떤 선택이든 그에 뒤따르는 결과 역시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길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라는 말처럼 작품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도 여러 의미가 담겼다. 극 후반부에 이르러 엘리자베스는 각각의 선택을 따라 벌어진 결과 앞에 ‘결국 다시 시작 (Always Starting Over)’을 뜨겁게 노래한다. 도망칠 수 없는 인생의 궤도에 오른 그가 아픔 또한 자신의 인생이라며 당당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오래도록 진한 여운을 준다. 또 어둠 속에 홀로 서서 고마움을 말하는 모습에서는 오랜 인내 끝에 얻은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항상 선택 앞에 망설이고 갈등하지만, 결국 어떤 선택이든 완벽한 선택은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비록 고통스러운 삶의 과정을 거칠지라도 그로부터 얻는 배움 또한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힘이 돼준다는 사실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끝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다시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내딛는 주인공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누군가의 삶을 옳고 그름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듯, 그만큼 ‘이프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br>-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br>-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br>-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br>-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br>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뮤지컬 ‘이프덴’은 묻는다. 과연 당신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삶을 그대로 선택하겠느냐고 말이다. 우선 필자의 대답은 ‘Yes’다. 물론 지우고 싶거나 되돌리고 싶은 기억도 분명히 있다. 그래도 지금 마주한 내 삶이 정말 그 모든 발걸음으로부터 얻은 결과라면, 이제는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고나 할까. 다행히 아직 만나지 않은 내일이 불안감보다 훨씬 더 큰 기대감으로 다가오는 오늘에 문득 고마운 마음도 든다. 어쩌면 뮤지컬 ‘이프덴’이 관객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세상의 모든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고 소중하다’라는 확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뮤지컬 ‘이프덴’이 전한 온기는 다시금 힘차게 걸어볼 이 길에 커다란 응원으로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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