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하루 앞두고 구룡마을에 덮친 화마
주택 60여채 불타고 주민 500여명 대피해
약 한 달이 흐른 지금, 아무런 변화 없이 방치돼
이재민 주장 임대료 문제…여전히 현재 진행형

화재로 인해 모두 타버린 구룡마을 4지구 전경. 앞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새로 들어서고 있다 ⓒ투데이신문
화재로 인해 모두 타버린 구룡마을 4지구 전경. 앞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새로 들어서고 있다 ⓒ투데이신문

“다 탔어 다. 보이잖아. 당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이렇게 돼버렸어. 모든 게 검게 타버렸어”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17일 오전, 조심스럽게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 한 발을 내딛자 기다렸다는 듯 매캐한 냄새가 가장 먼저 반긴다. 눈앞에는 검게 그을린 가구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하늘과 우거진 숲의 풍경과는 이질적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이곳에 덩그러니 남겨진 이재민들이다. 굳은 표정을 한 이재민들은 저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타버린 물건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설 명절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오전 6시 27분경 거대한 화마가 구룡마을 4지구를 덮쳤다. 화재가 발생한 곳곳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신발이며 옷가지들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이번 화재로 주택 60여채가 불에 탔고, 주민 50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검게 변해버린 이 곳은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이다.

이웃 주민을 구하던 강씨가 남은 화재 잔해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웃 주민을 구하던 강씨가 남은 화재 잔해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재민 대다수가 고령층...긴박했던 탈출기

“불이 이렇게 났는데 우리 집 앞에 사는 할머니가 아무런 반응이 없는거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 나오시라고. 또 도착한 소방관한테 애원 했어 저기 우리 집 앞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한분 계신다고. 살려달라고”

아비규환. 시뻘건 불이 곳곳을 집어 삼키는 구룡마을 당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여기저기 놓여진 가스통이 터지고, 폭발음이 사방을 메웠다. 화재가 발생한 구룡마을 4지구 인근에서 거주했던 강모(67)씨는 화재가 발생함과 동시에 이웃부터 챙겼다. 거대한 화마가 눈앞에서 자신을 거세게 위협해도, 이웃이 우선이었다. 이웃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하단 걸 알았기에, 화재와 동시에 이웃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여기 길을 보면 알겠지만 소방차가 여러대 올 수가 없는 구조야. 불은 여기저기 삽시간에 번지지, 할머니는 미동도 없지. 일어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얼마나 질렀는지 몰라. 소화도구함에 놓인 소화기랑 관련 소화도구는 작동조차 되지 않았어. 그간 아무런 관리 없이 오래 방치돼있었는데, 옳게 작동을 하겠냐고”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은 이날 오전 6시 27분경 구룡마을 4지구에서 발생해 주변으로 번졌다. 이번 화재로 가건물 형태의 비닐합판 주택 60채, 총 2700㎡가 소실됐다. 총 44가구에서 6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나, 다행히 별다른 인명피해는 없었다. 불은 약 5시간 20분 만인 오전 11시 46분경 완전히 진화됐다.

이번 구룡마을 화재는 △소방 197명 △강남구청 300명 △경찰 320명 △군부대 100명 등 총 900여명이 동원될 만큼 큰 화재였다.

구룡마을의 주된 화재 문제로 지적된 저가 단열재 ⓒ투데이신문
구룡마을의 주된 화재 문제로 지적된 저가 단열재 ⓒ투데이신문

반복되는 화재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저 앞에 사는 할머니가 연탄을 떼우다가 불이 붙은거 아니야”
“누가 불을 몰래 지르고 달아난 거라니까”
“기자님, 앞에서 뭣들 하는거야! 아직 밝혀진 건 없잖아”

지난 10년간 구룡마을에는 5차례나 큰 불이 났다. 특히 2014년에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70대 주민이 연기에 질식해 숨지기도 했다. 반복되는 화재로 이재민들은 화재에 이골이 난 상황이었다. 버릇과도 같이 반복되는 화재에 이재민들은 저마다 이번 화재 원인으로 추정되는 일들을 토로했다.

이번 화재의 원인을 다양하게 추측하는 가운데, 모두가 공통적으로 답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저가형 단열재’탓에 불이 삽시간에 퍼진다고 주장했다.

구룡마을 판잣집 대부분이 비닐과 목재, 스티로폼, ‘떡솜’이라 불리는 솜뭉치 등을 단열재로 두른다. 그렇기에 불똥이 한번 붙는다면 삽시간에 불이 번질 수밖에 없다. 또 이번 겨울 한파를 맞아 찬 바람을 막기 위해 집집이 천장에 비닐과 모포를 덮어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기자가 이날 현장 곳곳을 살펴본 결과, 가건물 위에 헝겊이나 천 등 가연성 소재가 아무렇게나 둘러싸져 있었다. 또 정비되지 않은 전선도 쉽게 눈에 띄었다. 이로인한 합선·누전의 위험도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다.

이재민들의 무성한 소문 속에서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를 ‘전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했다.

소방당국과 경찰에 따르면 불이 난 지난달 20일과 이튿날 잇따라 합동 감식을 실시했다. 구룡마을 안에는 폐회로(CC)TV가 거의 없는 탓에, 소방당국과 경찰은 화재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최초 발화지점을 추적하고 있다.

방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한 소방당국은 1차 감식 결과 4지구의 한 교회 인근 주택에서 전기적 요인으로 불이 시작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덩그러니 남겨진 신발 하나. 긴박했던 탈출 순간을 짐작하게 한다 ⓒ투데이신문
덩그러니 남겨진 신발 하나. 긴박했던 탈출 순간을 짐작하게 한다 ⓒ투데이신문

화마가 할퀴고 간 곳에 홀로 남겨진 이들

화재 이후 남겨진 이들은 ‘구룡마을(4지구) 화재민 비상대책위원회’ 텐트에서 낮 시간을 보낸다. 해가 어슷어슷 저물즘이면 각자 임시숙소로 지정된 호텔 4곳에서 밤을 보낸다. 이마저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 이들에겐 유일한 보금자리가 모두 타버린 탓에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임시숙소로 지정해준 호텔에서 지내는 것도 우리에겐 힘들어. 말 그대로 임시 숙소야. 퇴실 예정일이 다가올때면 갈 곳이 없다고 애원해. 그렇게 7일씩 기간을 늘려온게 어느덧 한 달이 됐어. 우리는 매주 빌어야해. 조금만 더 지내게 해달라고. 모든 것이 타 버렸는데 대체 어딜 가서 살라는 건지”

지자체는 앞서 이전한 구룡마을 주민 500여 세대와 같이 이재민에게도 임대 아파트 이전을 권유하는 상황이다. SH(서울주택도시공사)와 서울시, 강남구청은 이들을 위례신도시에 위치한 임대아파트로 이동할 것을 권유했고, 이에 이재민 김씨는 “여기 다 어떤 일도 하기 어려운 연로하신 분들인데 그 임대료는 대체 어떻게 내라는 건가. 그냥 무작정 임대아파트로 내쫓으면 해결 되는 문젠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구룡마을에는 마을 한켠에 텐트를 치고 지내는 무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해당 텐트에 대해 김씨는 “저기 텐트에 계시는 분들이 임대 아파트로 옮겼다가 생활비며 임대료며 금액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저기 텐트에 다시 둥지를 튼 사람들이다”라며 “강남구청은 이런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우리를 임대아파트에 밀어넣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에 강남구청 관계자는 “화재이후 이재민들에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임대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시는 걸 독려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안전 점검 및 화재 예방 관련해 주기적인 점검을 추진하고 있으며, 수급자 중 주거비 지원 대상자의 경우 주거비 대다수를 지원받기 때문에 주거비 자체가 크게 들지 않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재민이 주장하는 임대아파트에서 거주하다 다시 구룡마을로 들어온 상황의 경우 새로 증축물을 지을 경우 이는 모두 불법건축물이라 즉각적인 확인이 가능하지만, 기존 다른 이웃의 집에 몰래 함께 거주할 경우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에 대해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SH 관계자는 “구룡마을 이재민들의 보증금은 현재 이들이 구룡마을에 재정착 할 때 까지 유예가 가능하다. 또 위례지구 39㎡ 기준 임대료는 약 14만원으로 책정돼 있다”고 답했다.

구룡마을 입구에 걸린 현수막 ⓒ투데이신문

헌법 제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구룡마을의 입구에 걸린 현수막이다. 과연 이들은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가 되묻고싶다. 이들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어디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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