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제5차 ‘번개탄 생산’ 금지하겠다는 자살예방기본계획 발표
“실효성 우려·근본적인 예방 대책 아냐”…여론·정치권서 비판 제기
복지부 “지난 정부서 확정…추가 심의 거쳐 기본계획 마련할 것”
전문가 “수치·수단에 치우치면 안돼…실질적·장기적 대책 우선”

보건복지부가 지난 13일 공청회에서 발표한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2023~2027) 자료 일부분. [사진제공=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가 지난 13일 공청회에서 발표한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2023~2027) 자료 일부분. [사진제공=보건복지부]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정부의 자살예방 대책에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 생산을 금지한다’라는 시안이 포함돼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지난 13일 서울역 공간모아에서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복지부는 우리나라 자살률이 경제협력기구(OECD)에서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오는 2027년까지 30% 이상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연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망한 사람은 1만3352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인구 10만 명당 26.0명 수준이다. 

복지부는 현재 인구 10만 명당 26.0명인 자살률을 오는 2027년까지 18.2명으로 약 30%가량 감소하겠다고 공언했다. 더불어 현재 12%를 기록한 자살생각률을 오는 2026년까지 4.6%로 내릴 계획을 밝혔다. 

특히 복지부는 번개탄 등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위해수단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 자살위험 요인을 보다 강력하게 제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복지부의 기본계획에 따르면 번개탄 등 가스중독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는 지난 2021년 2022명으로, 전체 15.1%에 달했다. 번개탄으로 인한 사망은 지난 2011년 1165명에서 2021년 1763명으로 증가했다. 번개탄은 온라인 유통과 판매 제한을 하기 어려워 개인이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고 복지부는 판단했다.

이에 복지부는 산림청 주도로 산화형 착화제가 첨가된 번개탄은 생산을 금지하고, 인체 유해성이 낮은 친환경 번개탄 대체재를 개발할 계획을 발표했다.

번개탄뿐만이 아니라 복지부는 자살위해물건고시에 수면제나 진정제, 마약류도 포함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실효성 우려된다”…번개탄 생산금지 도마 위

하지만 공청회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를 중심으로 이 같은 내용이 퍼지며, 정부의 정책이 현실성 및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원인이 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단지 수단을 규제하는 것은 근본적인 방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서 시민들은 “자살을 택하는 이유에 대한 대책은 없고 수단에 대해서만 대처한다”, “정부 대책대로라면 칼, 밧줄 등 위험할 수 있는 물건은 다 없어져야 한다”, “양극화 등 사회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고 비난했다.

일각에서는 번개탄을 실제로 사용하는 일반 시민, 자영업자, 제조업계 등에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복지부에 대한 비판 여론에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이 워낙 황당하고 기가 막힌다”며 “국민은 스스로 목숨을 저버릴 만큼 삶이 고통스러운데 국가의 최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집단이 겨우 하는 짓이라고는 국민의 처참한 삶을 가지고 농단을 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들의 생명과 국민들의 삶을 조금만 깊이 생각했더라면 이 같은 장난도 아닌 장난을 하겠나”라고 덧붙였다.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도 지난 2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원인에 대해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더 무섭다”며 “시도할 수 있는 도구나 장소만 차단하면 뭐하나. 국민 개개인의 고통스러운 삶은 지속될 것이다”고 비난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제공=뉴시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제공=뉴시스]

진화에 나선 보건복지부

점차 논란이 심화되자, 복지부는 지난 21일, 22일 두 차례 공식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해명에 나섰다.

복지부는 지난 21일 “산화형 착화제 사용을 금지하고 대체제를 개발해 번개탄의 인체 유해성을 낮출 시, 자연스럽게 자살위해물건으로의 접근성이 감소할 것을 기대해 관련 내용을 삽입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 생산금지 및 인체 유해성이 낮은 번개탄으로 대체하기 위해 ‘목재제품의 규격과 품질기준(국립산림과학원고시)’ 개정을 완료했으며 대체재 개발·영세 생산자 보호 등을 위해 오는 12월 31일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서 산림청은 번개탄에 폭발성 산화물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다”며 “복지부는 일산화탄소(번개탄), 농약 등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용도로 빈번히 사용되는 위해수단에 대해 관계부처와 협의해 고독성 농약은 품목등록취소 및 생산을 금지해 뚜렷한 정책효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중 농약 중독으로 인한 경우는 지난 2009년 2743명→2012년 2103명→2015년 959명→2018년 806명→2021년 741명으로 집계됐다. 일산화탄소 중독의 경우도 지난 2019년 1996명→2020년 1620명→2021년 1763명으로 조사되며 감소세를 보였다.

한 차례 해명에도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복지부는 다음날 “번개탄 생산 시 사용되는 산화형 착화제는 인체 유해성 논란이 있어 지난 2019년 10월에 이미 산림청에서 관련 기준을 개정해, 오는 2024년 1월 1일부터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에 대해 생산이 금지됐다”고 또 한 번 강조했다.

또한 복지부는 “관계부처에서 추진하는 자살예방 정책을 검토해 범정부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수립 중이며, 국무총리 주재 자살예방정책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기본계획을 확정 및 발표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책은 시안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충분히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서봉균 겸임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압도적으로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높은 가운데, 꾸준히 자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방안을 마련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정부가 성과를 내기 위한 방안으로 내세운 ‘번개탄 생산 금지’만 부각되는 바람에 본 취지가 퇴색된 것이 안타깝다”고 짚었다.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 및 외부적 요인이 크다”며 “이와 관련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정부는 불평등, 경제지상주의, 과도한 입시경쟁, 가족 해체 등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는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번개탄’과 같은 수단을 없애고, 자살률 등과 같은 수치에만 치우친 단기적인 계획보다는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며 “사회복지 강화 및 공동체 복원 정책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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