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책 방향 확인 한숨 둘렸지만...다양한 과제 부각
부실채권 펀드 통한 유동성 관리 위기 제어 필요
에너지 수급 통한 환율 정책 등 관점 전환 주장 대두
예금자보호 정책 수정하면 뱅크런 가능성 하락 효과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금융 불안이 불거졌지만,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결국 금리 인상을 택했다. 22일(현지시간) FOMC 정례회의에서 베이비스텝 즉 0.25%포인트(25bp) 인상이 발표된 것.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의 결심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관심을 모은다. 물가를 안정시키면서도 경제 침체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통화정책 방향을 잡은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FOMC 이후 우리의 정책 과제다. 글로벌 정책 방향을 고려해 우리가 택해야 할 조치에 관심이 모아진다. 에너지 수급 등을 종합한 환율 관리, 부실채권 펀드, 예금자보호 확대 등 다양한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3월 FOMC 결과에 따른 각국 대응 과제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출처=뉴시스]
3월 FOMC 결과에 따른 각국 대응 과제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출처=뉴시스]

SVB, 포트폴리오 배분 중 사고 불과...금리 계속 상승 불가피

SVB 사태 직전에는 미국의 견조한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연준이 빅스텝(한꺼번에 0.50%포인트 금리 인상)할 가능성마저 높게 점쳐진 바 있다. SVB 사태 이후 금융 불안이 고조되면서 연준은 동결 가능성과 베이비스텝을 저울질하던 끝에 결국 소폭 인상을 택했다.  

이 같은 노선은 우선 금리 동결이 시장에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진화하기 위한 정책적 판단, 그리고 SVB 사태의 원인 자체가 대형 위기는 아니라는 점 등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양준모 교수는 SVB 여파와 이번 결정의 상관 관계를 묻는 본보의 질문에 “이 사태는 개별 금융기관의 포트폴리오 재구성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금리 정책 전반을 바꿀 일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상황에 금리 인상을 멈추면 70년대와 같은 고물가 상황을 지속하자는 이야기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미국 긴축 지속 상황에서 우리도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려야 할 가능성이 대두된다. 연준이 이날 동결 대신 베이비스텝을 밟으면서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23년 만에 최대 폭을 기록했다.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연 3.50%로, 4.50~4.75%인 미국과 상단을 기준으로 1.25%p포인트 낮다. 이번 연준 금리 인상으로 양국간 금리차는 다시 1.50%포인트 차로 벌어졌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강성진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올리는데 우리가 안 올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까지 우리와 미국이 3.5%와 4.75%로 1.25%포인트 차이가 난 상황에서도 생각만큼은 자금 이탈 등이 불안정하게 나타나진 않았다”면서도 “다만 너무 격차가 벌어지면 곤란하다“며 금리차로 인한 외국 자금 이탈 가속화 가능성을 우려했다. 

양 교수는 ‘금리 정상화’라는 표현을 쓰면서 “금리 인하에도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지 않듯, 금리 인상으로 경제가 급속히 나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거품을 제거하고 건실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금리 정상화와 부실채권 인수...부동산 PF 등 유동성 관건

문제는 금리를 올릴 경우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부실채권 가능성이다. 잔뜩 낀 버블을 꺼뜨리려면 과도한 대출자의 부담을 사회가 1/n로 부담해 주는 대신에 부실채권의 할인 가격 매입, 일명 헤어컷을 통해 위기가 전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그 방안으로 현재 거론되는 것이 금융기관의 충당금과 자본 증가 등 대응책 마련, 기금관리를 통한 부실채권 인수 등 준비 작업이다. 

양 교수는 “부실채권 위기가 전이되지 않도록 펀드 조성 등으로 상당한 헤어컷을 통한 인수 준비를 미리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 역시 “PF 부문 걱정이 있다”면서 “유동성 준비가 상황을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저축은행 등 금융권 상황, 그리고 건설산업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우발채무 대응력 등에는 일단 큰 문제가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21일 ‘건설회사 부동산PF 우발채무 리스크 범위 비교분석’ 보고서에서 “현재 상황에서는 건설산업 전체적으로 위험군 우발채무 부담에 대한 대응은 가능한 수준”으로 판단했다.

나이스신평은 자사의 회사채 혹은 기업어음 유효등급을 보유한 11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PF 우발채무 규모와 위험도에 따른 우발채무 규모를 산정했으며, 위험군 우발채무 부담이 높은 일부 개별 건설회사의 경우에도 적극적인 현금유동성 확보를 통해 단기적인 대응력을 높인 상태라고 덧붙였다.

다만 나이스신평은 부동산 업황 침체의 장기화는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당국도 PF 문제를 들여다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금융투자 부문에서 부동산 PF 등 잠재 리스크 요인을 조기에 진단하고, 증권사의 건전성 감독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검사 기본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아울러 정부와 한국은행은 부실 우려가 있는 PF 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해 내달 ‘PF 대주단 협약’을 가동하는 한편 정책금융을 28조4000억원으로 늘려 공급하기로 했다.

저축은행은 PF 부실과 뱅크런 가능성 등에 함께 노출돼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저축은행 업권의 부동산PF 전체 규모는 10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8.5% 늘었다. 다만 지난해말 기준 저축은행 업권 전체의 유동성 비율은 177.1%로 저축은행 감독규정에서 정한 100%를 훨씬 넘는다. 

신한투자증권 정혜진 연구원은 15일 ‘한국형 SVB? 저축은행 점검’ 보고서를 통해 “이번 SVB 사태에서 보듯 과거 지표가 건전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며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 상반기 109%의 유동성비율을 보인 부산저축은행이 무너졌던 것처럼 급격한 예금 인출은 양호한 지표에도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저축은행의 부실을 단언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약한 부분에 대해 인지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는 있다”며 “저축은행은 과거를 거울 삼아 경쟁적 자산 확충을 지양하고 손실 흡수를 위한 자본 확충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수급 시스템 회복을 통해 환율을 큰 틀에서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전기계량기를 살펴보는 주민의 모습이다. [사진출처=뉴시스] 
에너지 수급 시스템 회복을 통해 환율을 큰 틀에서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전기계량기를 살펴보는 주민의 모습이다. [사진출처=뉴시스] 

예금자보호 손질 필요...환율, 에너지 수급 통한 접근 주장도

이런 가운데 급격한 예금 유출 가능성은 오히려 예금자보호액을 늘려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번 SVB 사태의 한 교훈으로 예금자보호 한도 문제가 거론되는 것. SVB에서는 예금자보호액을 넘는 잔고를 가진 이들이 불안감에 대규모 인출을 하는 일명 뱅크런이 나타나 문제를 더욱 키웠다.

강 교수는 “예금자보호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10여년 전부터 계속 나오고 있다. (IT 기술 발달로) 인출이 너무 쉬워진 가운데 보호한도는 (기대치만큼) 안 되어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뱅크런 인출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양 교수는 향후 우리 경제의 과제로 거시적 관점에서의 환율 변동성 관리를 꼽았다. 환율이 불안하면 외국인 자금도 계속 빠져나가지만 무역 등 전반적 측면에서 환율 이슈를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 교수는 환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특히 에너지 수급 시스템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에너지 가격을 물가 관리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묶을 게 아니라, 저소득층 등에 대한 에너지 지원을 강화하고 대신 중산층 이상은 에너지 가격을 현실화해 쓴 만큼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무역비중상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 수입 지출을 줄여 환율 안정 효과를 노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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