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본, 지난 1월 참사 희생자 교통카드 사용 내용 확보
이태원역장 수사 과정서 발생…일부 ‘금융내역 조회’ 주장
경찰 “금융기관 측 업무상 착오”…경찰청장 공식사과도
유가족 “안하무인 수사…공식사과·재발 방지 약속 촉구”
진상 규명 아닌 마약 등 ‘별건 수사 목적’ 의혹도 나와

지난달 서울 중구 서울광장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달 서울 중구 서울광장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경찰이 ‘이태원 참사’ 수사과정에서 희생자 및 피해자의 교통카드 사용 내역 등을 조회한 사실이 확인된 가운데, 유족들이 인권침해라며 사과를 촉구했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1월 금융정보 관련 영장을 발부받은 뒤, 참사 희생자 158명과 생존자 292명 등 총 450명의 교통카드 사용 내역을 확보했다.

경찰은 참사 당일 검찰이 송은영 이태원역장이 지하철 무정차 통과 요청에 응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단계에서 보완 수사를 요청해 이에 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무정차 통과 여부와 인명피해의 인과를 밝히는 것에 이어 송 역장이 업무상 책임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상자들이 실제로 이태원역을 이용했는지에 대해 조사가 필요했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송 역장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수사하던 서울서부지검은 경찰에서 제출받은 교통카드 사용 내역 등을 받아 본 뒤 지난 3일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최근 은행에서 금융거래 정보제공 사실 통지서를 받고 해당 사실을 알게 된 유족과 생존자들은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일부 유족이 교통카드 사용 내역뿐만 아니라 입출금 내용까지 조회됐다고 주장해 논란이 더해졌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이태원참사 희생자-생존자들에 대한 무더기 금융정보조회 규탄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이태원참사 희생자-생존자들에 대한 무더기 금융정보조회 규탄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분노한 유가족들…야권도 ‘반발’

유가족들은 검찰과 경찰의 교통카드 사용 내역 조회가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라며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이하 협의회)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는 전날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검경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들은 “검경은 어떤 사전 설명도 없이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로 450명의 개인정보를 무더기로 수집한 바 있다”며 “이는 피해자와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이자 정보 인권침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공개하지 않고 있아 유가족과 생존 피해자는 제공된 거래 내역 등이 수사에 어떻게 활용됐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또한 이들은 이번 검·경의 수사가 피해자들에게 참사의 책임을 돌리기 위해 마약 거래 수사 등 별건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 단체는 “안하무인식 오만한 수사방식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수사 책임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촉구한다”며 “이와 함께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제정하고 독립적 기구를 구성해 이번 사안을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의회 측은 금융기관에서 보낸 통보서를 찢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뒤, 항의서한을 서부지검에 접수했다.

야권에서도 이태원 참사 수사기관 금융정보 조회에 대해 비판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원내 대변인은 지난 21일 브리핑에서 “무정차 조치를 하지 않은 이태원역장 수사를 위해서라는데 말이 되는 것이냐”며 “이태원 참사를 마약 범죄 때문에 일어난 사건으로 몰아가려 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위선희 대변인도 같은 날 브리핑을 통해 “교통카드 사용 내역이 아닌 입출금 전체 내역을 조회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수사 범위”라며 “진상규명이 아닌 국민 탓으로 참사 원인을 돌리려는 수사라면 굉장히 심각한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유감스럽고 죄송”… 고개 숙인 경찰청장

이와 관련해 경찰은 사고 당일 이태원역을 이용한 사실과 시간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영장 회신 과정에서 금융기관 측의 업무상 착오로 인해 영장 범위가 아닌 자료 2건을 회신받은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일부 피해자의 교통카드가 일반카드와 겸용인 경우가 있어, 카드사가 입출금 내용까지 전달한 것”이라며 “금융거래내역은 영장 범위에 들어있지 않았으며, 수사에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중교통내역 외 자료는 금융기관 쪽에 영장 범위가 아님을 전했고, 수사와 관련이 없는 자료는 모두 폐기 처리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의 해명에도 유가족이 시위를 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자, 결국 윤희근 경찰청장이 고개를 숙였다. 

윤 청장은 전날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의 질문에 대해 “가족들께서 그런 아픔을 겪었다는 것에 대해 청장으로서 일정 부분 유감스럽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사전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수사 중 필요한 조회는 사전에 당사자에 고지하거나 양해를 구하는 절차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범죄 가해자가 아닌 참사 희생자들의 금융정보를 사전에 알리지 않고 조회부터 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은 여전히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협의회 측은 검찰과 경찰의 정보 수집행위에 대한 헌법소원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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