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바뀌지 않는 미용계 ‘저임금·장시간노동’
‘교육이냐, 노동이냐’ 사장-직원 입장 엇갈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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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2013년 모 시민단체가 폭로한 헤어숍 스텝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는 연일 세간을 뜨겁게 달궜다. 하루 12시간이 넘게 주 6일 근무를 하고도 평균 90만원대 월급을 받았다는 헤어숍 스텝 노동자들은 미용업계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그늘같은 존재였다. 

이는 비단 헤어숍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닌 미용업계 전반의 문제로, 당시 고용노동부는 가장 주목을 받았던 헤어숍과 관련해 7대 브랜드를 대상으로 집중 근로감독을 실시했고 공론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한가닥 희망이 생겼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2020년, 현재 미용업계 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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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장시간노동의 민낯

청년유니온은 2013년 2월, 전국 미용실 198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용실 스텝 근로조건 실태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시급은 2971원으로 조사됐다. 2012년 기준 최저임금인 4580원의 반토막 수준이다. 소규모 업장이 아닌 프랜차이즈만 따져도 평균 3000원대에 그쳤다.

근무시간도 상당히 긴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기준법상 기본 근로시간은 40시간이고, 12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고려하면 한주에 최대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그런데 조사결과 미용업계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64.9시간으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 가운데 주중 근로시간이 52시간 미만인 사업장은 4곳에 불과했다.

근무시간이 긴 데다가 노동 강도가 높아 산업재해 발생 비율이 상당히 높지만 치료는 전적으로 자비로 부담하고 있었다. 급여가 적어 노동자들이 4대보험 가입을 꺼리다 보니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도 업무를 위해 필요한 교육 등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시스템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당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실장(현 부소장)은 “장시간·저임금 구조는 전(前)자본주의 잔재인 도제식(제자가 스승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던 방법)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청년유니온은 “이번 실태 조사를 통해 드러난 미용실 스텝들의 근무 환경은 매우 처참하다. 지난 수십년 동안 급격하게 성장한 미용산업은 청년 노동자의 광범위한 임금체불을 기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규탄하며 노동부가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노동부는 7대 헤어숍 브랜드를 대상으로 스텝 종사자의 근로자성, 근로시간, 임금수준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위반 사실을 확인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노동부는 수시감독 실시와 더불어 7대 미용업체 대표와의 간담회 개최, 가맹점주에 대한 교육 강화 등을 통해 개선 분위기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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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지치고 생활은 빠듯하고

노동부가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을 약속한 이후 미용업계 종사자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해보기로 했지만 쉽지 않았다.

청년유니온 김영민 사무처장은 “2013년 실태조사 이후 현장 변화나 개선 진행 상황 등을 파악하고자 미용 노동 당사자들의 조직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여느 미조직 사업장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어려움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본지는 헤어숍을 비롯한 미용업계 종사자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저임금·장시간노동에 노출된 미용업계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일부는 한차례 논란을 겪은 탓인지 내부 사정이 밖으로 알려지면 안 된다는 지침이 생겨 인터뷰에 응하기 어렵다는 답을 보내오기도 했다.

서울 구로구 소재 미용실에서 스텝으로 근무하는 A(25)씨는 평일 2교대 근무를 한다. 오전 10시 30분에 출근하는 날에는 오후 8시 퇴근, 오전 11시 30분에 출근하는 날에는 오후 9시에 퇴근한다. 식사 시간이나 쉬는 시간은 별도로 없다. 일도 손님도 없을 때 틈나는 대로 해결해야 한다.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고, 4대 보험, 교육비, 식비는 모두 별도로 해결해야 한다.

A씨는 주로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는 ‘샴푸’나 염색약 바르기, 디자이너가 퍼머 시 모발을 롯드에 감는 것을 돕는 일을 한다. 보통은 본사에서 교육이 이뤄지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취소됐다. 매장에서라도 교육이 있었으면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현 직장이 미용을 배우고 처음 입사한 곳이었던 A씨는 모르는 게 많아 배움에 욕심이 컸던 탓에 만족스럽지 못하게 일을 하고 있다.

네일아티스트 B(23)씨는 서울 강남구의 모 네일숍에 재직 중이다. 오전 11시 30분까지 출근해 오후 9시 30분에 일을 마치며, 휴무는 매주 일요일과 한달에 하루 주어지는 월차가 전부다. 쉬는 시간도, 식사 시간도 별도로 없다. 때문에 손님이 많은 날에는 끼니를 챙기기는커녕 화장실도 제때 못가기 다반사다.

수습기간에는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없고 배울 게 더 많다는 이유로 70만원을 받고 일했다.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지금은 기본급 100만원에 인센티브제가 적용됐지만 조건을 채우기 어려워 기본급 정도만 챙겨가는 수준이다. 100만원으로 교통비, 식사비 등을 모두 해결해야 하는 탓에 B씨는 매달 빠듯한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근무환경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상사의 위로 아닌 위로와 언젠가 개인 숍을 차릴 목적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한다.

고용주들은 업계 특성상 이 같은 노동 구조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손님 시간에 맞춘 연장 근무가 불가피할 때가 많고, 임금의 경우 기술직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역량이 모두 달라 차등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0년 전 속눈썹 숍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다 현재는 개인숍을 운영 중인 C씨는 “직원으로 근무했을 당시에는 수강료도 별도로 지급하고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이유로 사실상 수입은 거의 없이 차비 정도만 받으면서 일했다”며 “돈이 적어 어려웠던 건 사실이지만 경험 쌓는 투자라고 생각하며 버텼던 거 같다”고 설명했다.

C씨는 “미용업이 서비스 업종이다 보니 (일반 기업처럼) 정해진 시간에 일을 끝내기보다는 고객의 상황에 맞춰 예약을 잡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근무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업주는 직원을 통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미용업은 기술직이다 보니 개개인 능력이 달라 무턱대고 높은 임금을 주고 고용하기는 부담스럽다. 업주는 직원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실질적인 수익 창출엔 많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직원 실력에 따라 임금 지급이 차이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최저임금 때문에 열정페이 노동이 과거보다는 줄어든 것 같다. 대신 업주도 직원으로 채용하려는 걸 꺼리게 돼 ‘숍 인 숍(shop in shop, 매장 안에 또 다른 매장을 만들어 상품을 판매하는 새로운 매장형태)’이나 프리랜서 고용이 늘고 있다”며 “보통 임금에 불만이 있는 분들은 배우는 단계의 초보 일텐데, 현 미용업계 상황에서는 스스로 실력 쌓고 더 많은 인센티브를 가져가거나, 혹은 개인숍을 운영하는 게 최선인 것 같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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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관계 명확히 해야”

이와 관련해 김영민 사무처장은 교육과 노동의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현재는 최소한 최저임금은 지켜지고 있는 사업장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영세한 사업장은 크게 개선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교육의 명목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근무 시간의 상당 부분을 소위 ‘잡일’, 사업장에서 필수적인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면서 보낸다. 교육이라고만 보기에는 일의 비중이 너무 크다”고 부연했다.

김 사무처장은 “(미용업계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두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신입 노동자들은 교육인지, 업무인지 계약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숙련된 노동자의 경우 대체로 프리랜서 계약 관계가 많은데, 이는 급여가 성과로 측정되기 때문에 불안정성이 심화된다. 이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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