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인종/민족/출신국가,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장애, 나이, 외모, 지역, 종교, 소득/경제력/고용의 형태, 학력/학벌, 가족의 형태 등 13가지의 정체성에 의해 발생하는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처한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서 사회적 특권(Privilege)를 가지는 특권그룹에 속하게 되기도 하고 사회적 억압(Oppression)을 당하는 억압그룹에 속하기도 한다는 ‘권력의 교차성’ 개념이 다양성의 핵심입니다. 사회문제를 구조적으로 보며 교차하는 권력을 인지하게 되면 누구나 다양한 형태의 사회문제를 유지시키는데 협조하고 있는 일부임을 알게 되고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다양성훈련>이라고 부르는 참여형/대화형 프로그램 중에는 ‘무빙닷(혹은 내 안에 고정관념 찾기)’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전지 10-13장을 펼쳐놓고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그룹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해서 풀어놓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적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한발 물러서서 살펴보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권력”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속한 사회가 ‘권력자’의 관점에 의해서 차별과 억압을 합리화하는 메시지를 계속 주입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지난 주 한 지역에서 무빙닷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워크숍을 마친 후에 좋은 후기를 많이 전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신선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유형의 차별과 억압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게 누구인가요? 선생님이신가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교차성이나 다양성에 대한 개념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차별과 억압의 기제와 구조가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점과 ‘우리가 모두 사회문제의 일부분이다’라는 것이 잘 전달된 것 같아 정말 기뻤습니다.

차별, 억압, 혐오, 폭력은 상황에 따라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 본디 근원적인 자신의 얼굴을 감춰 우리가 그 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만듭니다. ‘혐오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지금, 차별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끼고 마치 막다른 길에 와있는 것처럼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무력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해결 방법이 없다’고 단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시작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쟁과 성장중심의 자본의 세상과 결별하고 모든 사람과 생명이 평화롭고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나기 위해 ‘평등’에 방향을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거대한 차별과 폭력의 ‘시스템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시작입니다. 자신이 이 시스템의 일부라는 말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책임을 물을까봐’,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봐’ 등 비난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하는 분들도 마음을 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면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어느 누구도 그 자신 역시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억압그룹에 속한 정체성에 대해서는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 쉽게 공감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변화에 대해서 주장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사회적 특권그룹에 속한 정체성에서는 자신의 특권을 인지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특권그룹에 속해 있는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이 억압그룹에 속해 있는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정체성으로 인한 불편함이니까요. 게다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에 분노 등으로 표현되는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가 작동하기도 합니다.

저는 다양성훈련을 하며 차별과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불편함을 편하게 여기라”는 말을 자주하곤 합니다. 모순적으로 들리는 말이지만 익숙한 사고방식을 넘어서서 불편함을 마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세입니다. 내가 확신하고 있는 세상에 머무는 것은 안전하고 편안합니다. 그러나 그 편안한 공간(Comfort zone)에서 벗어나 사고를 확장하는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는 학습이나 성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다양성, 즉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 발생하는 사회적 특권과 억압 그리고 자신이 가지는 교차하는 권력에 대해서 쉽고 명확하게 그리고 실천적으로 유익하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과 구체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를 주고 싶습니다. 차별이 무엇인지, 차별적인 세상과 나는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평등한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평등한 세상에서 사는 나의 모습은 어떨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와 같은 문제들을 고민하다보면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주체가 돼있는 모습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으면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가는 ‘변화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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