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전태일 열사’는 부당한 노동현실 가운데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화염 속에 내던지는 희생도 서슴지 않았죠.

그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열악한 노동현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다 목숨을 잃곤 합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희망에 숨을 불어 넣어 줄 새로운 노동정책이 필요한 때, <투데이신문>은 ‘우리가 바라는 근로기준법’을 기획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께서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손수 남긴 의견들을 토대로 실제 노동현장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노동정책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br>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구직하는 기간에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뉴스를 통해 월세나 식비가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다 끝내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세계 경제대국 10위 안에 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수 있겠지만, 실제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계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시민단체 생명존중시민회의가 경찰청이 공개한 ‘2019년 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생활고 등으로 죽음을 선택한 사례가 2년 연속 크게 늘어났습니다. 경제문제로 인한 죽음은 △2016년 3043건 △2017년 3111건 △2018년 3390건 △2019년 3564건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일부 소외계층은 여러 지원금을 수혜할 수 있지만 사실 최소한의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이 결코 아니라고들 합니다. 게다가 갈수록 취업시장이 침체되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며 하루 아침에 생계 위기에 처하게 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입니다. 기본소득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노동의 필요성이 감소하는 시기 재산이나 소득의 유무,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 등과 상관없이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해 주자는 제도입니다.

전 국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돈을 지급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이미 기본소득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19로 국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재난지원금입니다. 재난지원금은 지금과 같이 특정 시기에만 지급하지 않고, 보편적 복지로 적용하면 기본소득이 되는 것입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진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리고 많은 정치인들이 기본소득론 실천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단기적으로는 국민 1인당 연간 50만원을 지급하고, 이를 점차 확대해 1인당 100만원까지 늘리는 한국형 기본소득을 그리고 있습니다. 1인당 연간 100만원(분기별 25만원) 기본소득은 결단만 내리면 수년 내 충분히 시행 가능하다는 게 이 지사의 판단입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전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방식의 기본소득론은 재정 여력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복지 욕구별, 경제 상황별 맞춤형 한국형 기본소득제도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기본소득 관련 정책들이 두드러졌습니다.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기본소득론을 화두로 던졌다고 알려진 민생당 이수봉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4 25세부터 65세까지 자기 생애 전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월 80만원씩 1년 동안 기본소득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자기 생애 동안 총 3번의 기본소득을 수혜할 수 있는 ‘생애기본소득청구권’을 주장했습니다. 더불어 0세부터 18세까지 월 15만원 상당의 기본소득을 통장에 지원해 주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는 서울시에서 걷히는 부동산 관련 세금과 서울시가 공유자산을 통해서 얻고 있는 수익을 서울시민들이 모두 누릴 수 있도록 기본소득으로 나누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무소속 신지예 후보는 서울의 경우 만 19~34세 미취업 청년에게 청년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주해 일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수당의 형태가 아닌 기본소득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기본소득과 관련된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은 과연 기본소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지난해 6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모든 국민에게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8.6%가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반대한다’는 42.8%, ‘잘 모른다’는 8.6%를 차지했습니다.

기본소득 도입을 찬성하는 응답자들은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반면 반대하는 응답자들은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고 세금이 늘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동계는 기본소득을 통해 노동유인을 강화하고, 복지함정 탈피, 노동공급 증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선별적 복지, 예컨대 기초생활보장은 일정 수준 이하의 소득자에게만 급여를 주고, 그 이상의 소득을 얻는 노동을 하게 되면 급여가 중단된다. 따라서 그 수준 이상의 소득을 얻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경우 일을 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그 수준의 소득이 보장됨으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이른바 ‘복지함정’에 빠지게 되고, 노동유인은 약해진다.

이에 반해 같은 수준의 소득을 기본소득으로 보장해 주 경우에는 기본소득에는 조건이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추가 소득이 발생할지라도 기본소득 지급이 중단되지 않는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기본소득보다 적은 저임금이라고 해도 추가 소득이 되기 때문에 노동유인이 증가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본소득은 복지함정을 탈피하고, 노동공급을 증가시킬 수 있다. - 민주노총부설 민주노동연구원 정원호 정책자문위원의 ‘기본소득과 노동’ 일부 발췌

2017년에 핀란드, 캐나다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이미 기본소득에 관한 소규모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또 국가 차원이 아닌 유럽연합(EU) 전체에 통일된 제도를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흐름은 이미 세계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이에 발맞춰 한국도 노동하지 않는 기간 동안 굶어죽지 않을 수 있는, 생계가 우려돼 부당한 노동을 이어가지 않아도 되는 ‘한국형 기본소득’을 안착시킬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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