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가 내부 갈등을 더 원만하게 수습할 것인가

2024-04-27     이종우 칼럼니스트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야권의 압도적 승리로 끝나면서 다양한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대통령실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그동안 외면해 오던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의제 조율을 두고 이견이 오가며 회동 무산 가능성까지 제기됐으나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오는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차담 회동을 갖기로 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현재 총선 패배의 충격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모든 법의 재상정을 추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21대 국회의 6개 야당은 억울하게 숨진 채상병 사망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채상병 특검’ 법안의 신속 처리를 요구했다.

제22대 총선 이후 정국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어젠다는 ‘탄핵’과 ‘개헌’이다. 탄핵의 경우 앞에서 언급한 ‘채상병 특검’이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실에서는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게 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측된다. 일부 국민의힘 당선자들이 당선 직후 채상병 특검에 찬성 입장을 보이면서 대통령실과 각을 세웠다가, 갑자기 자기 입장을 바꾸기 시작한 것도 이것과 연결된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대통령 임기가 3년 남은 것이 확실하냐?”는 내용의 발언을 해서, 대통령 탄핵의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개헌의 경우 탄핵보다 조금 부드러운 방법으로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릴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즉 현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고, 대통령 4년 중임제건, 의원내각제건 특정한 정치체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나 ‘개헌’이라는 거대하고 중요한 의제를, 실정을 일삼는 대통령 한 명을 끌어내리기 위해 이용된다는 것은 필자 개인적으로 매우 서글픈 일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기회에 정치체제 개편까지!’라고 실용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로 이번이 개헌의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헌 초안을 만들 정치인들 개개인이 이상적 정치체제로 생각하는 시스템은 다 다르다. 또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헌법 명시를 비롯해 개헌에서 추진돼야 하는 사안들이 매우 많다. 개헌을 대통령 임기 단축의 수단으로 이용하면, 성숙한 논의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이 반드시 명시될 필요가 사안이 정치적 협상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필자가 제22대 총선 이후 정치권 상황을 길게 나열한 이유는 해결할 사안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과 양대 정당이 이것들을 제대로 수습할지 의문이 든다는 견해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참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수습하기는커녕 책임소재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총선 참패에 대해 대통령실의 책임이 없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고, 오히려 당내 영향력을 더욱 강하게 잡으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의 정치인들은 이러한 대통령실 반응에 눈치만 보면서 줄서기와 몸보신에 급급한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겉으로 보기엔 평온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2월까지만 해도 과반도 힘들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는데 170석이 넘는 국회 의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으니,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야당의 분열은 수면 아래에서 이뤄지고 있다. 차기 국회의장, 국회부의장, 상임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 특히 내부적으로는 이재명 대표의 당대표 연임과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외부적으로는 조국혁신당과의 관계 설정 등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현 정부와 여당의 실책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것뿐이다.

한국근현대사에서 진보-보수-수구를 막론하고 분열과 갈등은 종종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정파별 대립은 있었다. 오죽하면 징병에 끌려갔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해서 한국광복군에 합류했던 장준하, 김준엽 선생이 임시정부의 분열상을 실제로 보고 강하게 성토했을까?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에서 진보-보수-수구 세력의 분열과 갈등은 거칠게나마 다음과 같이 분류될 것이다. 우선 진보-보수 세력은 권력을 잡은 이후에 대립이 두드러진다. 조봉암 선생이 사법살인을 당한 이후 진보 진영에서는 민주노동당이 2002년 지자체 선거에서 당선자를 배출했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 총 10석의 의석을 획득하면서 오랜만에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그러나 그 이후 노선 갈등, 민주당과의 관계 등에서 수많은 갈등과 대립을 표출했고, 결국 당이 쪼개지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이번 제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은 단 한 석의 의석도 차지하지 못했고, 진보당이 약간의 의석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보수 세력인 민주당 계열 정당 역시 권력을 잡은 이후의 대립이 두드러진다. 굵직한 민주당 계열 정당의 분열을 살펴보자. 시민들이 흘린 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끌어내린 4.19혁명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신파와 구파로 나뉘어져서 갈등했고, 이는 박정희 쿠데타의 빌미가 됐다. 역시 시민들이 피 흘렸던 87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이후 김대중, 김영삼 두 야권의 지도자는 대통령 자리를 놓고 분열했다. 그리고 그 결과 전두환 독재정권의 또 다른 축인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나같이 시민들의 희생으로 성취한 정치체제 개편을 제대로 받아안지 못한 모습이다.

수구 세력인 국민의힘 계열 정당도 분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진보-보수 정당들에 비해 권력을 향한 욕망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충돌이 좀 더 두드러진다. 의원내각제를 통해 집권 의지를 끝까지 유지했던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에서 자유민주연합으로 이어지는 정당, 이회창 당대표 당시 공천에 반발해 탈당했던 민국당, 이명박 대통령 집권 당시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 사이의 공천 갈등에서 시작된 친박연대의 분리 등은 전부 권력욕 충돌의 결과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소위 ‘배신자 축출’이다. 이것은 대통령이나 당대표가 당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쫓겨나다시피 한 유승민 의원과 그에 동조한 세력들이 대표적이다. 유 의원이 당에서 축출될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배신자” 언급은 매우 유명하다. 그리고 유승민 의원, 유승민 의원과 당에서 축출된 의원들은 박근혜 탄핵의 전면에 나섰다.

한국 근현대사, 나아가서 민주공화정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당연한 사안이다. 인간은 ‘욕망’을 가진 동물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대립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단 성숙한 자유민주 체제를 유지하는 정당이나 정파라면, 대립과 갈등이 원만하게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대정당 중 어느 정당이 먼저 현재의 분열과 갈등을 최대한 부드럽게 수습하고 단일대오를 형성하느냐가 향후 집권의 주요 조건이 될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의 경우 톱다운(top-down) 방식, 즉 당이나 정부 수장인 정치인이 결정하면 지지자들이 따르는 형태라면,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보텀업(bottom-up), 즉 지지자들의 의견에 정치인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당장 당대표 선출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상대적으로 정치인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당원투표 100%로 선출하는 반면, 민주당은 여론조사와 당원투표를 적절히 섞지 않는가. 이것은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이 일부 목소리 큰 지지자의 의견에 휘둘릴 경우, 잘못된 결정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얼마나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치의식을 가졌는지에 따라 향후 당의 성패가 달려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국민의힘의 경우 당 운영이 여전히 제왕적 총재 체제와 비슷하고, 당의 민주적 운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어느 정당이 당 내분을 최소화하고, 민의를 잘 받들지 여부가 향후 집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언론들은 호시탐탐 취잿거리를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