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블러드 : 김나현] 경이로운 자연의 요소를 캔버스에 옮기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의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팝아트스트 낸시랭과 김선 비평가가 작품에 대한 폭넓은 시각도 제공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나무표면을 저만의 시선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하는 김나현이라고 합니다.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 후 현재는 동대학원에서 서양화 석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주재료는 유화이며, 인디고 색을 사용해 화면을 구성합니다.
삶은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각자만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인간들은 자신만의 회피 공간을 만들어내거나 찾으려 노력합니다. 예전부터 스트레스에 취약했던 저는 어느 순간 사람들과의 대화가 소음으로 느껴졌고 저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혼자만의 문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주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자연은 저에게 도피처였습니다. 저는 정적인 자연의 모습에서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작업의 내적 요소는 자연에서 제가 느꼈던 치유, 자아성찰, 현실에서 느꼈던 불안을 털어놓는 행위 등 다양한 감정을 쏟아 그림으로 표현해 저만의 도피처를 만들고 이를 관람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캔버스 화면 위에 저만의 해석을 통한 거대한 자연적 이미지를 만들어 현실에서와는 다른 형태의 자연을 사람들에게 제시했습니다. 이때 말하는 자연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일반적인 자연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꽃, 나무 등이 가진 고유한 형태와 색 등 자연의 일반적인 구성 요소를 멀리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혹은 반대로 매우 근접하게 다가가 관찰한 듯한 시점으로 그려냈습니다.
작업의 외적 요소는 우리 인간의 삶에 가장 가까이 자리하고 있고 오랜 시간의 흔적이 담겨있는 나무 표면을 사용했습니다. 흔적들로 인해 나무 표면에 생긴 주름 혹은 균열이 강물이나 바다의 파도와 유사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흔적들로부터 떠오르는 다양한 자연 이미지와 저의 감정을 함축시키고 추상적인 이미지로 재탄생시켜 캔버스 위에 구성했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냈습니다.
<움벨트 시리즈> 그림에서 저만의 치유와 도피 공간을 표현해내고 관객에게 보여주지만 관객 각자가 가진 삶과 경험, 그리고 심상에 따라 작가가 담아내고자 한 감정을 같이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 혹은 자신만의 또 다른 자연에 대한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관객들이 작가의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품을 해석하고 감상하기를 바랍니다.
작업들은 <움벨트 시리즈>로 제작됐는데 이때 ‘움벨트’란 ‘um(둘러싼)’,‘ welt(세계)’를 합쳐 만든 용어로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경험이 아닌 개개의 동물들이 각각 자신들이 느끼는 감각세계라고 뜻합니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환경입니다. 같은 조건의 환경에서도 본인만의 시선,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합니다. 일상과 우리 사회에 밀접해있는 ‘나무’라는 자연 요소를 자신만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해체하여 재구성함으로서 관람자에게 보여주는 이 행위가 ‘움벨트’라는 단어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사용했습니다.
2. 움벨트_파도2(umwelt_wave2) , 162.2 x 130.3cm, oil on canvas, 2023.
# ARCHIVE
<움벨트_파도1,2> 작품은 나무처럼 보이는 긴 형태의 캔버스가 아닌 일반적인 인물 f형 캔버스 규격을 사용함으로써 그린 대상을 추측하도록 하였습니다.
두 작품에서 인디고의 중간톤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흰 면을 사방으로 균일하게 표현하여 한 곳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 아닌 화면 전체로 시선을 분산시켰습니다.
이때 커다란 캔버스에 상공에서 관망하는 것 같은 시점을 사용하여 그림과 관람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다른 자연을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더 열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가장 밝은 부분을 작업 마지막에 두텁게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스케치 작업과 함께 가장 밝은 면을 마스킹액으로 막고 이후 유화 작업을 진행합니다.
유화 작업과 중간톤 묘사가 끝난 후 마스킹액을 제거합니다. 마스킹액을 뜯어낸 일부분에 거친 붓 자국이 드러나는 선을 사용하여 이미지의 입체감을 주었고 1차 코팅만 된 캔버스 고유의 면이 드러나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특징을 작가의 손이 닿지 않은 캔버스 고유 면에 비유하여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흰 면들이 응집되고 흐르는 것 같은 이미지를 사용해 작가 스스로 만든 치유의 공간 속에서 현실에서 있었던 고민들을 흘려보내는 행위를 나타냈습니다,
<움벨트_파도 1,2> 작업들은 각각 하나의 캔버스에 표현을 했다면 <움벨트_바다> 시리즈에서는 100호 크기의 대형 캔버스 3개를 이어 이전 작업들 보다 대형화된 구도를 보여줍니다. 역동적인 물결 이미지를 통해 관람객에게 더욱 압도감을 느끼게 하며 캔버스의 상단과 하단에 캔버스 흰 면의 분포를 몰아넣어 화면이 더욱 확장되어 보이는 효과를 창출해냈습니다.
중간톤의 비율을 낮춤으로써 인디고와 흰 캔버스 면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이 차이가 더욱 강조되어져 보이는 색상대비 효과를 보여줍니다.
중간톤이 사라져 대비가 더욱 강조된 화면을 통해 밤바다의 고요함을 표현하였고 이는 형태의 역동성과 고요함, 두 반대되는 특징을 같은 화면 안에 공존하도록 하였습니다.
화면의 크기, 색상대비 강조 등을 통해 모든 것을 포용해주며 부정적인 감정들까지 집어 삼켜버릴 것만 같은 광활한 공간을 표현했습니다.
# ARTIST STORY
아직은 나무 표면을 사용해 저만의 이미지와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즐겁고 더 많은 형태를 그려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이후 다른 자연 요소를 사용해 캔버스에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혹은 같은 이미지이지만 또 다른 감정들을 담아 색깔을 다양하게 사용해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신작들을 만들어 전시마다 새로운 이미지들을 관람자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저만의 치유와 도피의 공간을 스스로 그려내는 것처럼 모두에게 힘들 때 잠깐 쉬거나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ART CRITICISM
김나현 작가는 자연이 주는 의미를 해석하고 자연으로부터 오는 경이로움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아티스트다. 김나현은 나무 표면의 거친 균열과 주름의 원시적인 느낌을 그대로 표출하면서 자연의 요소를 자신만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해체하여 재구성한다. 자연 안에서 온전히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여 치유와 자아성찰이라는 정신적인 명상에 마음을 내어준다. 자연의 안내자가 되어 김나현은 캔버스 화면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잠시 숨 가쁜 시간들을 내려놓고 자연에서의 고요한 물결의 파동이 정적인 상태로 머물며 자연의 소리를 귓가에 맴돌게 한다.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에서 김나현의 자연의 울림은 거대하고 웅장한 자연의 낭만성의 흔적들로 쌓여 가며 수많은 시간의 흐름으로 채워진 광활한 풍경의 장으로 또 다른 자연의 문을 열었다. (김선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