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블러드 : 최소희] 트라우마가 남긴 기억, 원초적인 색으로 통제하고 재창조하다

2024-06-01     영블러드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의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팝아트스트 낸시랭과 김선 비평가가 작품에 대한 폭넓은 시각도 제공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staged, 116.8 x  91.0 cm, oil on canvas, 2023

안녕하세요. 저는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소희라고 합니다.

저의 작업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이 얽히면서 다양하게 변화되고 재생산돼 기억되는데 그 기억들을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일상적이면서 모순된 풍경을 제시하기도 하고, 스스로 속하고 싶은 공간을 창조하기도 하며, 때로는 내면의 감정을 그대로를 표현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적 기억이 작업의 중심인데 이 기억을 기반으로 작품에서 자연공간과 인공공간을 만들고 붉은색을 통해 공간을 나누고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어린 시절 거대한 자연에서 길을 잃고 홀로 남겨졌을 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했던 자연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트라우마적 기억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공간에 대해 집착을 가지게 됐고, 이후 항상 저의 물건이나 공간에 붉은색을 표시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선을 그어 나만의 공간과 영역을 표시하기도 하고 물건에 꼭 붉은색으로 나만의 표식을 해두는 등의 행위를 통해 안정감을 얻곤 했습니다.

<red territory> 시리즈의 작품에서 레드는 공간 자체를 붉게 물들임으로써 제 영역에 대한 소유의 표시를 좀 더 강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저에게 완전한 나의 것, 스스로 주인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색은 레드입니다. 일종의 집착일 수도 있지만, 온전히 소유해서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 외부로부터의 불안이나 공포감을 이겨내고 견뎌낼 수 있게 해줬습니다.

# ARCHIVE 

Red territory, 72.7 x 53.0 cm, oil on canvas, 2017

이 작품은 <Red territory, 72.7 x 53.0 cm, oil on canvas, 2017 >입니다. Red territory 시리즈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공간을 붉게 물들여서 공간을 장악해 나가는 느낌을 주는 작업들입니다. 이 작품에서 작은 섬 위에 의자를 놓고 의자부터 점점 붉은 기운으로 저만의 공간을 늘려 나가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작품에는 의자가 자주 등장하는데 가장 먼저 가진 나만의 공간이자 나만의 물건은 의자였습니다. 둘째로 태어나 언니에게서 항상 모든 걸 물려받곤 했지만 의자는 동시에 사용해야 했기에 온전히 저만의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공간에 가면 의자에 앉아서 그 공간을 살펴보며 생각들을 정리하곤 하는데 이런 부분들은 저에게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는 의식이 됐습니다.

Drawing 6- mixed media on paper, 21.0 cm x 29.5 cm, 2024

<Drawing> 시리즈는 2024년부터 시작된 작업들입니다. 드로잉이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재료들을 사용한 절제된 색감과 함축된 표현을 통해 간결하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가로서, 엄마로서 살아가고 있기에 작업실에서만 할 수 있는 유화 작업에서 벗어나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해서 더욱더 애착이 가는 작품들입니다. 일주일에 한 장씩 꾸준하게 해나가며, 작가의 일기처럼 삶을 기록해 나가는 프로젝트로 드로잉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ARTIST STORY 

작업 중인 최소희 작가. [사진=본인 제공]

내년에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지금 전시 진행 중인 ‘Red Territory’ 시리즈의 평면 작업을 중심으로 하고, 조금 더 영역을 확장해 설치미술(installation) 작업을 하려고 구상 중입니다. 평면이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도 다양하지만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설치미술 작업을 같이 전시하면서 관객 참여를 유도해 관객이 작품으로 뛰어들 수 있는 전시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제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좀 더 흥미롭고 새롭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사회와 삶, 예술과 기억을 구체화하고 표현해 내는 작가 되고 싶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들을 기록하고 불안을 다루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아트 상품과 함께하는 전시를 했는데요, 작품을 다양한 상품들과 접합해 재미있는 생활용품들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재밌는 전시였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예술은 화두를 던지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이 말하고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작품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주신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 많은 이미지가 있지만, 그 이미지를 가지고 다양한 생각들로 뻗어 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소통하는 작품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ART CRITICISM   

최소희 작가는 내면 깊이 잠재돼 있는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 꿈/현실과의 경계에서 비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적 요소의 공간을 구성하는 아티스트다. 최소희의 공간은 삶이자 자신이다. 강렬하고 원초적인 색감인 레드의 존재에 자아를 대입시키고 절제된 색감과 함축된 구성으로 개인의 삶의 시간을 녹여낸 상징적인 장소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자연이 주는 불안과 공포에서 최소희는 레드로부터 온전히 자신을 지켜나가며 스스로 통제하고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레드로 고유한 개인의 영토를 만들어 가며 사적인 영역의 주체적인 공간으로 최소희는 공간의 의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김선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