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모와 처자가 슬퍼하는 마음은 기운의 조화까지 깨뜨릴 수 있다

2024-06-09     이종우 칼럼니스트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태종 14년(1414) 8월 4일. 조정에 조운(漕運)을 운반하던 배 66척이 태풍으로 침몰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로 인해 병사 200여명이 익사하고, 운반되던 쌀과 콩 5800여석이 침몰했다.

당시 7월은 배를 움직이기 좋은 시기가 아니라고 여겨졌다. 이에 따라 7월은 배의 운행을 중단했었다. 그런데 당시 조정의 재정을 담당하던 기관이 호조(戶曹)에서 다른 기관에 보낸 문서에는 7월 그믐에 미곡을 실어서 8월 초에 움직여라’라고 적혀있었고, 수군 도절제사(水軍都節制使) 정간(鄭幹)은 이 명을 그대로 실행했다.

이에 태종은 크게 분노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7월에 행선(行船)하는 것은 일찍이 교지(敎旨)로 금지하였는데, 정간(鄭幹)은 절후를 살피지 않아서 배가 뒤집혀 망가지고 침몰하는 데 이르렀다. 그 부모 처자의 슬퍼하고 원망하는 정이 어찌 화기(和氣)를 손상시키는 것에 이르지 않겠느냐? 정간(鄭幹)을 대신할 자로서 모름지기 능한 자를 가려서 천거(薦擧)하라."[『태종실록(太宗實錄)』, 태종 14년(1414) 갑진 2번째 기사]

태종은 우선 수군 지휘관인 수군 도절제사 정간을 질책했는데, 그 내용은 절기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배를 움직여서 배가 침몰하는데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즉 태종 14년은 7월의 절후(節候)가 8월 14일에 다하는데, 임무를 수행했던 정간이 잘 살피지 못하고 처리한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이어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정간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을 명령했다.

무엇보다도 “부모 처자의 슬퍼하고 원망하는 정”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화기(和氣), 즉 조화로운 기운을 손상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침몰한 곡식을 언급하기 전에 익사한 200여명의 군사들과 그 가족들이 받았을 슬픔과 원망을 먼저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의 슬픔과 원망이 나아가서 이 세상의 조화로운 기운을 손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태종은 유가족의 슬픔과 원망을 심각하게 여긴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음에 태종이 사헌부에 명했던 사안이었다. 그것은 앞으로 관기(官妓)가 월경(越境), 즉 자기가 속한 지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금지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배가 침몰할 때 중간급 무관인 진무(鎭撫)가 데리고 가던 두 명의 관기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관기는 관청에 속한 여자 노비였다. 즉 태종은 관기가 이동 중에 사고로 익사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관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동을 금지시킨 것이다.

이어서 태종은 관리를 파견해 배가 침몰할 때 유실된 군사 물품들을 검사하고, 물에 빠진 군정(軍丁), 즉 군역에 참가한 백성을 파악해 이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지시했다. 사고로 인해 유실된 물품부터 생명을 잃은 백성의 보상까지 꼼꼼하게 지시한 것이다.

보통 6월은 여름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앞으로 장마, 태풍, 폭염으로 각종 재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온 나라가 아직 존재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동해안 유전에 들썩거리고 있다. 이로 인해 누군가가 어렵게 얻은 외아들이자 수해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은 해병대 대원의 죽음은 잊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지휘관은 자신의 업적만 생각해서 해병대 대원의 목숨은 나 몰라라 했고, 어떤 군인은 진실을 파헤치다가 불명예스러운 처분을 받았다.

한국은 늘 산유국이 아니었다. 그리고 유전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늘 있는 것이다.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군인의 사망 경위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유전이 더 중요한가? 유전 없이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수해 복구를 위해 구명조끼 하나 없이 명령 하나 때문에 급류로 들어갔던 해병대원의 죽음과 그 부모의 충격과 슬픔과 원한은 나라의 조화를 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