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조원의 연착륙②] 리스크 외면하는 탐욕…반복되는 위기 불러온다

‘분양 성공’에 올인하는 부동산PF, 사업 안정성 관리 뒷전 평가 대상 중 5~10% 부실 전망…구체적 근거는 빈약 저자본‧고보증 PF 구조, 사업성 평가 부실화로 이어져 ‘사업성 중심’ 개선…분양가 인상‧공급 부진 부를 수도

2024-06-26     홍기원‧박중선 기자

정부는 부동산PF 규모가 총 230조원에 달하며 전체 PF 사업장 중 5~10% 정도는 재구조화 및 정리 대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계획대로면 올 하반기는 각 PF사업장마다 ‘옥석가리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터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방침이 자칫 정상화가 가능한 사업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과도한 시장개입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지난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른 부동산PF 부실을 방치하다 리스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질 수 있다.

급한 불을 끄는 한편, 부동산시장 경기흐름에 따라 위기를 반복하는 부동산PF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사업체계의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편집자 주>

지난 24일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홍기원‧박중선 기자】 부동산PF 위기가 10여년 만에 반복되면서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행사의 자본 요건을 높이고 사업성 중심의 보다 신중한 사업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다만 자본 요건 상향만으로는 주택시장의 공정경쟁과 다양한 상품 공급을 담보할 수 없기에 보다 다각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이란 부동산 개발사업처럼 대규모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할 때 해당 사업의 예상 수익과 리스크 등을 분석해 이에 맞춰 자금을 공급받는 금융기법이다. 자체 유동성만으로 수년 이상의 긴 사업기간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르는만큼 PF는 부동산 개발사업에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개괄적으로 부동산 개발사업은 사업을 발주한 시행사와 실제 공사를 맡는 시공사, 그리고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들이 모인 대주단으로 구성된다. 통상적으로 토지 매입 등 사업 초기 자금은 단기에 높은 금리로 조달하는데 이를 자금을 연결하는 다리(bridge)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 브릿지론이라고 부른다. 

시행사는 브릿지론으로 조성한 자금을 통해 토지 매입, 인허가작업 등을 추진한다. 이들 작업은 시행사를 대행해 부동산신탁사가 진행하는 사례도 많다. 

한편, 시공사는 수주 기회를 얻기 위해 후순위 브릿지론에 보증을 선다. 또 본PF로 넘어갈 때 시행사의 공사비 지급과 여부와 관계없이 정해진 기간 내에 준공하는 책임준공도 보장한다. 신탁사도 책임준공 확약으로 본PF 대출 실행을 위한 신용보강에 나선다.

금융사들은 PF사업의 사업성, 시공사와 신탁사의 신용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본PF 대출을 일으켜 브릿지론을 상환하고 사업비를 조달한다. 보통 시중은행이 중심인 제1금융권이 본PF 단계에서 선순위 채권자로 참여하며 브릿지론은 저축은행, 증권 등의 제2금융권이 주축이 되고 있다.

PF 대출의 상환은 개발사업으로 인한 수익으로 충당한다. 결국 분양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이며 부동산시장 불황으로 미분양이 속출하면 곧장 위기로 이어지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업성이란 분양성이 좌우한다. 후분양제보다 선분양제가 더 보편적인 이유도 금융기관 입장에서 중도금을 받아야 안심이 되는 것”이라며 “시행사나 시공사가 주도하기보다 돈의 흐름이 주도하는 이 구도를 쉽게 바꾸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PF란 프로젝트에 투자를 하는 건데 금융기관들이 자기 부담을 지기 싫어하니 시공사 보증을 조건으로 내거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라며 “사업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제1금융권은 내부심사에 수개월이 걸리다보니 금리를 높여서라도 제2금융권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4일 서울 시내 한 저축은행 간판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수익률에 눈 먼 금융업계도 부실 키운 셈

반복되는 부동산PF 위기는 건설업계뿐 아니라 리스크 관리에 소홀한 금융업계의 책임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부동산 PF의 부실 문제가 제2금융권과 캐피탈, 중소형증권사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것에 대해 금융업계 관계자들 또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저축은행의 경우 시중은행과 수신 경쟁을 위해 통상 고금리의 예·적금 상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사업성을 위해서는 이보다 높은 금리의 대출이 필요하다. 이에 시중은행과의 여신 경쟁에서 밀린 저축은행들이 대안으로 PF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해석이다.

한국은행 경제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총수신의 경우 지난 4월 기준 2011조5154억원으로 지난해 5월(1915조2483억원)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 상호저축은행의 경우 지난 4월 기준 103조2831억원으로 지난해 4월(115조6366억원) 이후 지속적으로 수신 잔액이 줄어들었다. 

수신 유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탓에 여신업무도 타격을 입었다. 상호저축은행의 여신 잔액은 지난 4월 기준 100조7456억원으로 지난해 1월 115조6003억원 이후 내림세를 보였다.

한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경우 예대마진 확대로 수익성이 극대화됐지만 저축은행은 수신과 여신 경쟁에서 밀려 사업 다각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면서 “사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PF만큼 사업성이 좋은 아이템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캐피탈사들은 은행업권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어 여신전문금융회사채(이하 여전채) 발행을 통해 자금조달을 하기 때문에 부동산PF 사업에 뛰어드는 일이 업계에서 일반적이라는 입장이다.

한 캐피탈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때 정부의 대대적인 통화완화 정책으로 부동산시장은 호황기를 맞아 PF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회사들이 고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만큼 대부분의 캐피탈 회사들이 부동산 금융시장에 진출했다”면서 “다만 현재 문제가 되는 곳은 뒤늦게 뛰어들어 브릿지론에서 본PF로 넘어가지 못한 회사들이 고금리 장기화 기조에 따른 금리 상승까지 겹쳐 유동성 위기에 몰려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아주 낮은 금리 상황에서 높은 수익률에만 초점이 맞춰져 리스크 평가나 개발 프로젝트의 실패 가능성 등을 충분히 고려한 회사가 거의 없었고 금융기관들의 무리한 대출 확장 규제도 없어 리스크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부연했다.

금융위원회 권대영 사무처장이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PF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금융당국은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개별 PF사업장에 대한 사업성을 검토해 본격적인 연착륙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 권대영 사무처장은 지난달 13일 브리핑에서 “230조원 규모의 PF 사업성 평가 대상 중 5~10% 가량이 부실 우려 사업장”이라며 “금융사와 건설사 등도 이번 대책으로 인한 영향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부실 우려 사업장이 금융당국의 예상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위원회 중소금융과 관계자는 부실 수준을 5~10%로 예상한 근거를 묻자 “분양률과 연체율을 감안해 추정한 수치로 개별 사업장의 정보가 있기도 하고 업계 의견 수렴 등을 통해 그 정도로 보고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상 구체적인 PF사업장의 부실 수준은 부실 사업장에 대한 정리가 완료될 때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행사 자기자본 비율 높이면 해결될까

한편, 이번에 부동산PF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시행사가 매우 적은 자본금으로 PF사업을 일으켜 시공사를 통한 신용공여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가 문제라는 시각이다. 

캠코연구원이 지난 4월 발간한 부동산PF 현황 분석 및 제도개선 연구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부동산PF의 특징으로 ▲시행사의 높은 레버리지 보유 ▲시공사를 통한 신용공여에 크게 의존 ▲수분양자 자금으로 사업비 충당 등을 꼽았다. 이 보고서는 “현실적으로 시장은 완벽하지 않기에 과도한 레버리지는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라며 “레버리지 문제는 부동산 투자의 과도한 위험으로 인한 장기적인 부실화를 초래하는 동시에 불황기에는 부동산 투자 공급의 급격한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 보고서는 부동산PF 개선방안으로 시행사의 자본 요건 강화와 시행사와 대출기관의 장단기 불일치 위험 분담을 제안했다. 또, 사업성 평가를 중심으로 PF 부동산금융이 발달하도록 리츠 등 간접투자기구를 활용한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역할 확대 등을 주문했다.

국가별 부동산PF 자본구조 [자료제공=한국개발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 황순주 연구위원 역시 20일 우리나라의 부동산PF에 대해 ‘갈라파고스적 부동산PF’라고 칭하며 근본적인 구조개선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황 연구위원은 해당 보고서에서 “부동산PF 문제의 근본 원인은 ‘낮은 자기자본’과 ‘높은 보증 의존도’로 대표되는 낙후된 재무구조에 있다”고 진단했다. 앞서 캠코연구원의 보고서와 일맥상통하는 결론이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 3년 내(2021년~2023년) 총액 100조원 규모의 PF사업장 300여 곳의 재무구조를 분석한 결과, 개별 사업장에 필요한 총사업비는 평균 3749억원이었지만 시행사는 자기자본을 118억원(평균 사업비의 3.2%)만 투입하고 남은 3631억원은 대출로 충당했다. 반면, 주요 선진국은 시행사의 자기자본비율이 30~40%에 달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논지다.

이어 이 보고서는 “투입 자본은 적고 수익성은 높기에 소위 한탕을 노리는 행태가 나타나고 수많은 영세 시행사가 난립하기도 한다. 2020년 기준 등록된 시행사는 무려 6만개 이상”이라며 “이는 사업성 평가를 부실화시키고 묻지마 투자를 일으키며 대출의 거시적 변동성을 확대시킨다”고 비판했다.

황 연구위원은 부동산PF의 개선 방향을 묻는질문에 “바람직한 개선방향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고 제3자 보증은 폐지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자본확충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대형화가 불리한 환경에서도 대형 시행사가 존재하고 대기업 계열 시행사도 존재한다. 자본확충에 참여할 지분투자자의 저변도 좁지 않다”면서 “간접부동산투자회사인 리츠의 지분투자를 활성화하거나 리츠를 직접적 시행주체로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시행업계에서는 자기자본 확충 요구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자기자본 확충이 분양가 상승을 부추기고 나아가 주택공급을 늘리는데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자기자본 비율 상향이 부동산PF 문제 개선 방안 중 하나일 수는 있으나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자본 확충은 자금 조달 비용을 높일 가능성이 있고 이는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외에 사업성 중심의 선별이 강화되면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지방에서의 주택 공급에 차질을 빚을 개연성도 높다. 

한 시행업계 관계자는 “자기자본 비율이 20%, 30%로 올라간다고 큰 변화를 가져올거라 보지 않는다”라며 “결국 금융기관의 대출이 필요해 금융에 많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구조”라고도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장이 호황일 때는 이런 얘기가 나올 이유가 없다. 요율을 높이는 방안이 (문제해결의)조건은 충족될 수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고 의견을 전했다.

이에 황 연구위원은 “만약 시행사가 자기자본을 높여 브릿지론 없이 그 자금만으로 토지를 매입했다면 본PF로 전환하지 못해도 지금처럼 금융 리스크로까지 번지지는 않는다. 일단 자기자본을 확충한만큼 대출이 줄어들 테니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줄어든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분양가와 주택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지금의 구조는 위기가 발생하면 국민들이 부담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 메워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사업성을 보다 신중히 평가해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이 낫다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