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해약준비금 개선안 ‘기대 소멸’…법인세 오르고 밸류업 ‘실망’

해약환급금준비금 개선안…높은 허들에 적용대상 단 3개사 건전성 지표 악화에 법인세 인상 겹쳐…밸류업 기대감 하락 전문가 “각 보험사 간 격차 심화될 우려…관련 보완책 필요”

2024-10-13     김효인 기자
지난 9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뢰회복과 혁신을 위한 보험개혁회의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금융당국이 보험사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위해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의 개선안을 발표한 가운데, 대다수 보험사가 수혜를 받기 어려운 데다 법인세 납부액만 늘어날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 1일 일정 수준의 재무건전성이 확보된 보험사에 한해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비율을 현행 대비 80%로 완화하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해당 개선안은 지난달 26일 열린 제3차 보험제도개혁회의를 통해 마련됐다. 

지난해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과 함께 새로 생긴 제도인 해약환급금준비금은 보험 가입자가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지급해야 하는 환급금이다. 신 회계기준 도입 이후 보험부채를 시가 평가하게 된 보험사들은 부채가 해약환급금보다 적을 경우 그 차액을 준비금으로 쌓아야 한다.

법정준비금인 만큼 상법상 배당가능이익 산정 시 차감돼 배당이 제한되고, 법인세법상 손금으로 인정돼 법인세 납부가 일정 기간 이연된다.

앞서 신 회계기준 도입 후 보험사들이 수익성 제고에 효과적인 신계약 CSM(보험계약 마진) 확보에 나서면서 해약환급금준비금 누적액은 2022년 말 23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32조2000억원으로 35.9% 증가했다. 보험사 지난해 당기순이익 또한 13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에 반해 배당가능이익의 산출 방식은 이전 회계기준 시점에 머물러 있어, 순이익 증가에도 배당가능이익과 법인세는 되려 줄어든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험사 준비금 적립비율을 낮추고 보험사 밸류업을 위해 기존 회계기준 적용시점과 비슷한 규모의 배당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정한다는 내용의 개선안을 내놨다. 

다만 이번에 제시한 당국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대다수 보험사가 수혜를 받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충족해야 하는 재무건전성 기준은 지급여력비율(K-ICS) 200%인데, 현재 보험사 지급여력비율 기준점은 대부분 당국의 권고치인 150% 선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 상장 보험사 중 이 개선안을 적용받는 보험사는 올해 상반기 기준 삼성화재(278.9%), DB손해보험(229.2%), 삼성생명(201.5%) 세 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200%를 넘겼던 미래에셋생명도 올 상반기 기준으로는 198%로 해당되지 않는다.

대신증권 박혜진 연구원은 “결국 상위사에게 유리한 제도로, K-ICS 200%가 넘는 회사들은 어차피 처음부터 걱정이 없었다”며 “K-ICS 비율이 낮은 보험사는 계약의 양 보다는 질에, 그리고 보완자본 확충을 통한 자본비율 개선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위사 또한 배당 재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급부로 법인세 납부액이 함께 늘어날 수 있는 만큼 부정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결국 기업가치 제고 효과 또한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 분석에 따르면 이번 개선안으로 인해 보험사의 배당가능이익은 3조4000억원 증가하는 반면, 법인세 납부액도 9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해약환급금준비금 개선안 적용시 법인세와 배당가능이익 영향 [사진제공=금융위원회]

보험업계 관계자는 “제도 완화조치로 인해 배당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높은 기준으로 인해 대부분의 회사는 해당 사항이 없어 밸류업 또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단기적으로 법인세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제도 시행이 돼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주주 친화 정책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세수 확보책에 그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 전문가는 이번 기준 설정 배경으로 소비자 보호 및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확보를 지목했다.

금융감독원 신제도(IFRS17·K-ICS) 지원 실무협의체에 참여한 보험연구원 노건엽 연구위원은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는 계약자의 수급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더라도 보험 계약자가 해약을 하게 되면 환급금은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라며 “해당 규모를 줄이면 법인세를 더 내야 하기에 상위사만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연법인세 정도의 20%를 줄인 상황인데, 건전성이 좋은 회사부터 조건을 적용한 것이고 고정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적용 기준이 높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엮여있는 문제가 많아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기준의 경우 소비자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본다. 배당을 원하는 회사는 건전성을 높여 지급능력 비율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제도 개선으로 인해 상위보험사와 중상위 보험사 간 격차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전주대학교 금융보험학과 이경재 교수는 “이러한 제도 개선은 대형사에게는 추가적인 세금 부담을 줄 수 있지만,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업계 내 건전성을 유지하고, 재무적으로 취약한 보험사들이 과당 경쟁에 뛰어들지 않도록 유도하는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며 “다만 보험사 간의 격차가 심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 부분에 대한 보완책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험업계 전반적으로 건전성이 악화된 상태인 만큼,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확보도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상반기 말 기준 자산규모 상위 10개 생보사의 평균 지급여력비율은 215.71%로 전 분기 대비 6.22%포인트(p) 하락했으며, 같은 기간 10개 손보사의 평균 지급여력비율(182.73%) 역시 전분기 대비 2.98%p 떨어졌다.

향후 금리 인하기를 앞둔 점도 악재다. 금리가 내려갈수록 부채가 자산 대비해 늘어나고 이는 요구자본의 증가로 이어져 보험사 지급여력비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10일 업계 전망 세미나를 통해 시장금리 1%p 하락시 생보사와 손보사의 지급여력비율이 각각 25%p, 30%p씩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