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길잃은 발달지연 치료…태어난 아이도 품지 못하는 사회

2024-11-04     김효인 기자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넌 두 줄로 나타났지 콩알보다 더 작았었지 심장 소리 듣고 심장 터질 뻔했지 백 년 동안 든든히 지켜줄게”

공개된 지 10년이 지난 노래지만, 여전히 아기 성장 영상 배경음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보험회사 CM송이다. 사랑받아 마땅한 작은 존재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오롯이 표현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격언이 있듯, 부모들은 온갖 위험으로부터 내 아이를 지켜 줄 생애 첫 보험을 든다. 그러니 출생 전 태아 단계에서부터 준비하는 어린이보험은 명실상부한 ‘첫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선물하는 민간보험 외에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태어나는 순간 사회보험이라는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게 된다.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보장제도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달지연 환아를 기르는 부모들은 민간보험과 사회보험 어느 것도 아이를 위한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착용이 의무화되면서, 한창 단어와 문장을 말하는 시기에 선생님의 표정과 입 모양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언어 발달 치료를 요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대학병원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3년이 걸린다고 할 정도로 대기 시간이 길다. 그러나 아이들의 치료에는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부모들이 빠른 치료가 가능한 사설 클리닉의 문을 두드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대부분 비급여 치료이다 보니 비용이 만만찮은데 보험금 청구조차 여의치 않다. 아이들 사회성과 언어 발달에 꼭 필요하다고 평가받는 놀이치료사, 미술치료사, 음악치료사 등 민간치료사의 치료는 현행 법상 ‘의료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행위가 아니기에 실손보험금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사례가 많다.

또 실손 지급액이 크게 늘어난 보험사들은 일부 병의원의 과잉 진료와 브로커를 동반한 보험사기 등을 문제 삼으며 심사 강화에 나선 상황이다. 실제 어린이보험 업계 1위인 현대해상의 경우 올해 국감에서 보험금 면책 사유인 F코드로의 변경 의혹도 받은 바 있다.

보험사의 실손보험 지급액이 크게 늘어난 점은 사실이다. 현대해상이 지급한 발달지연 관련 실손 지급액만 해도 2020년 219억원에서 2023년 956억원으로 뛰었다.

부모들은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보험은 물론, 기본적인 성장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할 사회보험까지도 아이들을 외면한다고 지적한다.

독일이나 미국, 일본의 경우 발달지연 치료를 국가에서 주도한다. 반면 우리 정부는 해당 치료에 대한 명확한 기준조차 주지 않고 있다. 발달지연 환아 부모들은 국가가 발달지연 아이 치료에 대한 책임을 민간 보험사에게만 지워, 결국 보험사와 고객이 싸우게 한다고 말한다.

저출산 시대, 아이를 낳으라고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지만 정작 태어난 아이를 품지 못하는 사회다. 어린이의 안위를 소구점으로 삼아 상품판매에 나섰던 보험사는 무조건적인 심사 강화보다, 꼭 필요한 치료에 대해서는 보장의 폭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가 나서서 발달지연 환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비하고, 이를 위한 복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