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쓰기의 힘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문자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인들이 점토판에 남긴 쐐기문자로 알려져 있다. 수메르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문자는 쌍방 간 계약과 거래 내용을 기록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기원전 2000년대의 점토판에 새겨진 설형문자도 대체로 양과 염소의 숫자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 문자는 현대적 의미로 보자면 미수금 기록이나 영수증 더미였던 셈이다.
문자가 등장한 이래 소리를 내지 않고 읽는 묵독(默讀)이 일반화된 것은 상당히 최근의 일이다. 인쇄 매체가 확산되고 글읽기가 보편화되면서 독서는 상대가 있는 소통 행위가 아닌 개인화된 소통 행위로 변모한다.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의 표현에 따르면 책은 ‘무언의 교사’로서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의 양을 비약적으로 늘려줬다. 분류하고 비교하는 사고 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근대 문명을 이끌어낸 과학 혁신의 기반이 됐다.
흔히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하지만, 이는 단지 책 속의 내용이 독자의 가치관과 인생관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뜻만은 아니다. 인쇄 매체 자체가 인간을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디어 사상가 마샬 매클루언은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몸에 익혀온 현대인들은 말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글쓰기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현실을 논리적 사고로 포착하게 해준다. 오늘날 우리가 논리를 핵심 사고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글쓰기의 영향이다.
글쓰기는 우리가 세계의 복잡성에 압도돼 무력해지지 않도록, 여러 선택지 중 최선의 길을 고민하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의 결정이 대부분 이미 결정한 것을 ‘재결단’하는 과정인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 내면이 “예”라고 대답했던 것에 다시 “예”라고 답하는 과정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 아이리스 머독의 멋진 표현처럼 인간이란 자기 스스로 그린 그림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며, 글쓰기란 바로 스스로 정한 방식대로 자기 자신을 훈련해 나가는 과정이다.
글쓰기란 단지 자기 내면과의 깊은 대면에 머무르지 않는다. 글쓰기는 자아라는 좁은 한계를 넘어 더 큰 공동체와 공감을 나누게 한다. 글쓰기는 공동체를 격려하고 희망을 불어넣는 수단이며, 우리 계획과 행동에 의미와 가치를 더해 주는 도구다. 동시에 글쓰기는 주변부나 그늘에서 시작된 생각이 중심으로 옮겨오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대부분 사상이나 가치도 대중에게 알려지고 공감을 얻기 전까지는 급진적이거나 전위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글쓰기는 산 정상에서 느끼는 잠깐의 행복이라기보다는 험난하지만 의미 있는 등반의 과정 그 자체였는지 모른다. 글쓰기는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라 우리의 복잡한 내면을 통과하는 과정, 우리의 여과된 생각들이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지난한 여정 그 자체였는지 모른다. 이제 그 모든 과정이 생략되고 사라진 글쓰기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우리가 알던 글쓰기를 떠난 인간은 이제 어떤 세계로 항해를 시작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