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온다①] 오롯한 사유의 숲, 문학 도서관 소전서림(素磚書林)

책 위한 공간과 프로그램 통해 경험 확대 소전서림 운영 모델, 만화방의 시간제 참고 “제대로 책 읽기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미래에 남겨질 고전을 만들 작가 찾아 후원

2024-12-05     전세라 기자

인산인해를 이룬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 이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SNS를 중심으로 생겨난 ‘텍스트힙’, ‘북스타그램’ 등 2024년은 그야말로 ‘독서의 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책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2023년 4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지만 2030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독서가 새로운 반향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투데이신문>에서는 책을 위한 공간인 ‘소전서림’, 새로운 독서 굿즈를 선보이는 ‘글입다’, SNS에서 독서로 소통하는 ‘책여사’, 독서인을 위한 SNS ‘플라이북’을 통해 요즘 세대의 독서 문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문학 도서관 소전서림 내부 사진.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독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 환경에 진심인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있다. 청담동에 위치한 프라이빗 도서관, 소전서림이다.

소전서림은 책에 진심인 곳이다. 이 공간의 모든 것들도 ‘책’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잡지부터 시집까지 다양한 종류의 서적들이 구비돼 있는 것은 물론이고 도서관의 가구와 배치 모두 최고의 독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최적화된 독서 환경을 위해 실시간 이용자 수 확인이 가능한 자체 애플리케이션까지 개발했다. 수익을 내야 하는 사설 도서관이지만 쾌적한 공간을 위해 하루 입장 가능한 인원(50명)을 제한하는 등 파격적인 운영 방식을 고집한다. 

서가에 꽃힌 수많은 책과 편안한 분위기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소전서림은 공간에서의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 구독’의 개념을 실현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책과 연계된 강연, 전시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단순히 책을 보는 것에서 나아가, 책을 매개로 깊이 있는 사고와 대화를 나룰 수 있도록 돕는다. 소전서림에서는 책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 깊이 있는 사유와 몰입이 가능하다.

청담동에 위치한 소전서림 외부 사진. ⓒ투데이신문

흰 벽돌로 이룬 책의 숲, 소전서림의 첫인상

소전서림이라는 이름은 흰 벽돌(素磚)로 지어진 책의 숲을 의미한다. 건물 외관부터 내부 공간까지, 고유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흰 벽돌 구조는 주변 건물과 차별화된 미감을 드러낸다. 정문으로 들어선 뒤, 차분한 분위기의 카페 옆 계단을 통해 지하로 이동하면 비로소 책의 세계가 펼쳐진다. 

책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은 흰색 인테리어와 다양한 책의 색감이 조화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길을 끈 시집 코너는 일반 도서관과는 달리 최신작까지 구비돼 ‘문학도서관’의 명성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서가가 꽂혀있는 소전서림 책장. ⓒ투데이신문

문학 중심 공간의 다채로운 매력

소전서림은 크게 3구역으로 나눠진다. 가장 큰 구역은 도서관의 중앙 홀로, 가장 많은 서가와 좌석이 마련돼 있다. 모두 일률적인 책상과 의자들이 아니라 서로 다른 책상과 의자, 또는 소파들이 소전서림의 인테리어를 담당하고 있다.

‘예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두 번째 공간, 예담은 재즈류의 음악들이 흘러나오며 큰 창문이 있어 개방감을 선사한다. 백색소음이 있어야 집중할 수 있는 방문객을 위한 공간이며 미닫이문으로 구분돼 독서모임, 강연과 같은 행사가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은 조금 더 독립적인 공간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1인, 2인 서가가 있다. 이렇듯 소전서림은 미감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분위기를 가진 공간을 제공해 개인에 맞는 독서 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

중앙 홀 왼편에 위치한 소전서림 내부 공간. ⓒ투데이신문

삶을 비추는 거울, 문학

소전서림에서는 책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책 분류표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시, 문학, 잡지 등 구역별로 큰 카테고리가 나눠져 있을 뿐이다. 책의 제목을 기준으로 정리된 다른 도서관과는 달리, 소전서림은 작가별로 책이 구분돼 그 작가가 집필한 책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소전서림은 왜 ‘문학’ 중심의 도서관이 된 걸까. 황보유미 관장은 “문학이 우리의 삶과 가장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문학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삶의 여러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상황에 놓인 입체적인 인간의 모습들이 문학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소전서림은 문학이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돼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게끔 이끌어준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문학뿐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예술철학 분야의 책들도 함께 갖춰 읽기의 확장을 돕고 있다.

한쪽 공간에 비치된 소전서림 추천 도서. ⓒ투데이신문

도서관을 둘러보니 소전서림만의 다양한 문학 큐레이션이 눈에 들어온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관련한 큐레이션 섹션부터 ‘황보유미 관장과 함께 읽는 책’, ‘인아영 문학평론가와 함께 읽는 책’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추천하는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소전서림의 고요한 분위기도 인상적이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함이 감돌았다. 황보 관장도 소전서림 운영에서 소음 부분을 가장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책을 읽는 공간은 고요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납득되는 공간이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책의 의미는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 책은 단순히 읽어야 하는 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자신이 책에서 읽고 있는 내용, 그리고 책의 제목이나 디자인이 개인의 취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책이 개인의 취향과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변화하면서 책을 품고 있는 도서관의 역할도 확장됐다. 이제 도서관은 책이 있는 공간을 넘어 책이라는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책의 숲’과 같은 소전서림은 이 같은 변화를 선도하며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소전서림 내부에 위치한 휴식 공간, 모동정 ⓒ투데이신문
▲소전서림 황보유미 관장

[일문일답] 소전서림 황보유미 관장 

Q. 소전서림을 주로 찾아주는 분들은.

30~40대의 여성 방문객이 가장 많으며, 20대와 60대의 방문객 비율은 비슷하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개인적인 관심사에 집중하게 되면서 독서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전서림을 찾는 60대 방문객의 비율도 높아지리라 기대한다. 20대가 유입될 수 있는 통로도 고민 중이다. 

Q. 준비하면서 참고했던 곳이 있다면.

시간제로 요금을 받는 만화방 운영 모델을 주목했다. 만화는 책장을 빨리 넘길 수 있는 반면, 인문학 도서들은 빨리 읽기 어렵다 보니 3시간으로 시간권을 만들었다. 1년 회원권(10만 원)으로 이용하면 하루에 500~600원 정도이다. 책을 좋아한다면 비용을 지불해도 방문할 것이라 믿고 있다. 실제 많은 분들이 이 공간을 찾아주시고 있기 때문에 개관 5주년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Q.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는지.

사람들이 사진만 찍고 가는 핫플레이스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개관 초기에는 전문용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촬영하는 것을 제지하고 유튜버의 촬영 의뢰를 거절하기도 했다. 독서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줄여 책을 읽는 분들이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앞으로의 행보는.

도서관 운영 외에도 작가를 후원하고 있다. 출판의 홍수 속에서 미래의 고전을 만들 작가를 찾아 활동비 지원 등의 후원을 하고 있다. 2026년 홍천에 개관을 앞둔 ‘두내원’은 작가들의 집필 환경 제공과 갤러리 등의 인프라를 조성할 예정이다. 독서라는 문화를 활용해 한 지역의 랜드마크로서 두내원이 운영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또한 내년 2월, 개관 5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으니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