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온다②] 독서를 위한, 독서에 의한 굿즈 ‘글입다’

글입다, 독서 굿즈의 새로운 패러다임 캘리그라피 SNS 통해 브랜드로 성장 문학의 감각적 재해석, 북퍼퓸과 잉크 독서 진입장벽 낮추고자 다양한 시도

2024-12-13     전세라 기자
글입다에서 판매 중인 북퍼퓸 [사진제공=글입다]

【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흔히 굿즈라고 하면 아이돌 혹은 영화에서 인물을 중심으로 디자인된 상품들을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독서를 위한, 독서에 의한, 독서 굿즈의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 가는 곳이 있다. 바로 ‘글입다’이다. 

‘글을 입다’와 ‘그립다’의 두 가지 의미가 연상되는 ‘글입다’는 국내외 문학을 모티브로 한다. 글입다는 노트, 책갈피 등 독서 굿즈를 생각할 때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상품이 아닌 다양한 독서 굿즈를 제작하는 곳이다. 책에 향을 입히는 북퍼퓸과 만년필에 사용되는 잉크가 글입다의 주력 상품이다.  이렇듯 굿즈로 독서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글입다’는 읽는 행위를 넘어 경험으로 확장시킨 독서문화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캘리그라피 활동명에서 시작되다

안동혁 대표는 ‘글입다’가 브랜드가 될 정도로 성장할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글입다’는 지난 2014년부터 캘리그라피(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를 업로드하던 SNS에서의 활동명이다.

군대에 입대한 안 대표는 행정병으로 복무하면서 여가 시간에 다양한 도구와 잉크로 캘리그라피 연습해봤다고 한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포함한 여러 작업물을 SNS에 업로드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디자인적인 요소를 더한 문학 글귀가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전역 후 안 대표는 대학 수업에서 SNS 채널을 성장시키는 과제가 주어지자 자신이 운영하던 캘리그라피 채널을 키우기 시작했다. 문학뿐만 아니라 드라마 대사, 가사 등의 다양한 문장을 캘리그라피로 표현하면서 200명에 그쳤던 팔로워 수가 5000명까지 늘었다.

이어 캘리그라피 채널에서 폰케이스 제작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판매 요청이 쇄도하면서 네이버 스토어에 진출하는 등 규모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안 대표는 글입다의 작업에 즐거움을 느끼자 준비하던 유학을 포기했다. 그리고 브랜드의 정체성과 운영 방식을 고민하며 글입다의 방향성을 잡아갔다. 

글입다의 한국 문학 북퍼퓸 [사진제공=글입다]

문학을 재해석한 북퍼퓸의 탄생

글입다는 많은 사람이 ‘독서’라는 행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에 “Different Reading”이라는 표어 아래 제품을 통한 문학의 재해석과 독서 기록 장려라는 두 갈래의 활동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브랜드 글입다의 첫 번째 작업은 출판사로부터 들어온 엽서 제작 의뢰였다. 문학 작품을 해석하고 상품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안 대표는 색다른 독서 굿즈 제작을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책에도 향기가 있을까?”란 물음을 시작으로 ‘북퍼퓸’이 출시됐다. 작품의 상징성을 살려 제작된 북퍼퓸은 향기를 통해 독서의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굿즈다. 

‘무기력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지식인의 이상을 담은 피톤치드 프래그랜스(향수)’, ‘가을밤 호숫가에 서서 별을 바라보는 청취의 신선하고 청량한 프래그랜스’는 향기에 대한 설명이다. 각각 이상의 <날개>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모티프로 한 북퍼퓸으로, 해당 문학 작품을 안다면 자연스레 향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북퍼퓸은 책에 직접 뿌렸을 때 잔향이 오래 머물고 손상을 최소화하는 연구를 통해 완성됐으며, 섬유에도 사용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간단하게 기록할 수 있는 독서 카드 [사진제공=글입다]

위기를 기회로, 독서 문화를 이끌다

글입다가 자리 잡게 되자 북퍼퓸을 따라 만든 카피 제품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또한, 오프라인에서 북퍼퓸을 시향한 경험이 호기심 충족에 그치며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야심 차게 기획했던 첫 기획 상품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자 향이 아닌 색으로 재해석하는 잉크 제품을 개발했다.

글입다는 문학 작품의 상징성을 농담(濃淡)과 색 등으로 표현하며 출시하는 잉크의 수를 점차 늘려나갔다. 제품은 만년필 사용자들 사이에서 명확한 콘셉트와 희귀한 색이라는 호평과 함께 글입다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매출과 인지도 측면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글입다는 잉크 제품 출시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독서 후 휘발되는 기억을 효율적으로 기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식의 독서 기록장도 선보이고 있다. 그중에는 간단하게 감상을 남길 수 있는 책갈피 크기의 독서 카드와 전자 세대를 위한 PDF 형식의 필사 노트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제품들은 기록에 대한 부담감을 낮추고 언제 어디서든 기록이란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

문학 잉크 ‘소영위제’ 연출 사진 [사진제공=글입다 홈페이지]

독서 굿즈로 문학과 일상을 연결하다

‘이상-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북퍼퓸’, ‘변신(카프카) 잉크' 등 글입다가 선보인 제품 중에는 유독 고전 작품이 많다. 안 대표는 고전 작품을 소재로 한 제품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저작권과 판매 안정성을 꼽았다. 고전 문학은 대부분 자유 이용 저작물(퍼블릭 도메인)로 상업적 사용이 자유롭다. 또한, 작가와 작품의 평가가 공공연히 완료된 작품은 제품 출시 이후 판매 안정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안 대표는 글입다의 주 소비층에 대한 질문에 “문학 작품을 좋아하는 고객이 30%이고 잉크를 선호하는 고객이 70%”라고 답했다. 문학 마니아가 주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와 다른 답변이었다. 그는 “작품의 제목이라도 아는 것이 독서의 시작”이라며 간헐적인 독서도 유의미하다고 말했다. 대중적인 작품으로 제품을 제작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상의 ‘소영위제’와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소개하려는 시도 역시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입다는 SNS 등을 통해 문학과 제품을 연결하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자 잉크 색상에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이 차츰 잉크와 관련된 문학에까지 관심을 넓히고 있다고 한다. 안 대표는 “글입다가 선보인 제품을 통해서라도 문학 작품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라며 “글입다를 통해 문학 작품에 대한 인식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입다 안동혁 대표
[일문일답] 글입다 안동혁 대표

Q. 굿즈 기획 시 고려하는 것이 있다면.

제품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가장 고민한다. 과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작품을 모티브로 북퍼퓸을 제작했을 때, 구매자로부터 ‘향을 맡으면 시계를 든 토끼가 쫓아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는 후기를 받았다. 본래 글입다가 의도한 해석은 아니었지만, 제품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와 해석이 만들어지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작의 대중화된 해석을 기반으로 제품을 기획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제품을 통해 사용자가 만드는 새로운 해석들을 보는 것도 즐겁다. 우리의 상품을 통해 사람들이 독서를 다시금 이해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요즘 독서 문화에 대한 생각은.

문학을 기반으로 제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독서를 문화로 여기는 요즘의 경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잠깐의 검색으로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서 독서는 가장 느린 정보이다. 그래서 독서는 시간이 걸리고 수고로움이 필요한 행위이다.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 힘들다는 의견에 매우 공감하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의 빈 공간을 상상하는 힘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시욕에서 비롯된 독서일지라도 이를 통해 독서를 할 수 있다면 좋다고 여긴다. 글입다 또한, 콘텐츠의 소비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이 시대에서 사람들이 책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Q. 앞으로의 목표는.

글입다의 첫 기획 상품이었던 북퍼퓸을 ‘새로운 독서의 패러다임’이라고 홍보했던 것처럼,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독서 활동과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활자인 책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등 장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서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는 새로운 작업들을 진행하면서 글입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