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보험 현주소②] ‘단기납 종신’ 브리핑 영업 가보니…‘재테크’ 유인 꼼수
‘목숨’ 담보 대신 ‘돈·건강’에 쏠리는 종신보험 여성만 불러 모아 재테크 강조하는 영업 실태 불완전 판매 증가 이면에는 생보사 과열 경쟁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여러분, 지금 자녀에게 얼마 남겨 줄 수 있으세요? 아이 하나 키우는데 4억원 드는데 앞으로 그 돈 어떻게 마련하실 건가요?”
여성만을 불러 모아 진행한 한 보험회사의 ‘브리핑 영업’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상대적으로 금융 지식이 취약한 여성 집단을 대상으로 공포 마케팅을 펼친 결과, 해당 설계사는 다수의 가입 신청서를 거둬 갔다.
18일 <투데이신문> 취재에 따르면 일부 생명보험사 설계사들은 브리핑영업을 통해 단기납 종신보험을 저축성 재테크 상품으로 둔갑시켜 판매하고 있다.
보통 브리핑 영업은 회사 내 성희롱 예방교육 등 법정 의무교육 시간에 설계사가 상조나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형태로 많이 진행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연예인이나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의 무료 강연을 명목으로 여성 대상 영업에 나서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실제 기자가 SNS를 통해 유명인 무료 강연 참가를 신청하자 남성과 아이의 참석은 불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상대적으로 금융 지식이 부족한 사회초년생이나 전업주부 등을 대상으로 한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강연 장소에 도착했지만 유명인 강연을 듣기 위해서는 2시간 가까운 ‘보험 영업’이라는 관문을 거쳐야 했다. 처음에는 신용카드 여러 개를 사용해 포인트를 받는 방법 등 생활 속 금융 지식에 대해 알려 주는가 싶었지만, 이내 자녀에 대한 이야기와 상속, 재테크 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후 설계사는 본격적으로 해당 상품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계사는 “네이버 이자 계산기에 20만원씩 7년을 납부했을 때 얼마가 나오는데, 요즘은 금리도 너무 낮고 15.4%의 이자소득세까지 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며 “그러나 자녀를 위해 이 보험을 들어주면 비과세이기에 통째로 적금통장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실제 단기납 종신보험은 보장성 보험상품이기에 비과세 대상인 점은 사실이다. 저축성 보험상품은 소득세법상 △10년 이상 유지 △5년 이상 보험료 납입 △매월 일정한 납입 보험료 유지 △월납 보험료 150만 원 이하 등의 조건을 유지해야 비과세 대상이지만 보장성 상품은 해당 요건을 지키지 않아도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이에 환급률이 130%까지 오르는 등 생보사 간 경쟁이 과열되며 저축성보험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과세당국은 올해 초 세법해석에 돌입했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는 국세청에 유권해석을 전달하며 ‘비과세’로 결론을 지은 바 있다.
특히 여러 명 앞에서 진행되는 브리핑 영업에서는 해당 보험의 장점, 즉 ‘비과세’에 ‘만기 시 은행이자보다 높은 환급률’만 부각되는 모습이었다. 높은 금리의 목돈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말에 여러 여성들이 가입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기납 종신보험을 중도에 해지할 경우 사업비가 빠지면서 큰 손해를 볼 수 있다거나, 도중에 연금으로 전환 시 당초 약속한 사망 보험금을 오롯이 수령할 수 없다는 점 등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도 해약시 환급률 낮지만 안내 불충분…불완전판매 위험 상승
종신보험은 정기보험 등 타 보험 대비 보험료가 높고, 납입 기간 또한 길다. 특히 중도 해지시에는 해약환급금이 없거나 적어 가입 시 충분한 사전설명과 검토가 필요한 상품이다.
브리핑 영업이 불법은 아니지만 다수를 대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방식 특성 상 불완전 판매 위험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는 “사망을 보장하는 종신보험을 저축성 보험으로 둔갑시키는 영업 방식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게 된다”며 “생명보험 자체가 긴 기간으로 진행되기에 유지가 어려운 보험을 충분한 설명 없이 계약했다가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날 설계사가 판매한 상품을 취급하는 보험사에서는 불완전판매 예방을 위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해당 보험사 관계자는 “일부 설계사가 구두로 저축성, 재테크를 활용한 영업을 하는 사실이 간혹 있어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한 모니터링 등 회사 차원에서 적극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브리핑 영업 자체가 불법은 아니고 충분한 설명으로 계약을 잘 유지하는 고객도 있기에 이를 원천차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완전판매 위험이 커지는 위험에는 보험업계의 단기실적 중심 출혈경쟁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올해 상반기 전체 보험상품 민원건수 8967건 중 종신보험 민원만 4091건으로, 전체 민원 중 45.6%를 차지한다.
보험사별 상반기 종신보험 민원건수는 삼성생명이 총 708건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KDB생명 688건 ▲신한라이프 519건 ▲NH농협생명 408건 ▲한화생명 391건 ▲교보생명 388건
순이었다. 또한 지난해 발생한 보험사 불완전판매건수 1만801건 중 절반 수준인 5457건은 종신보험 관련인 것으로 나타났다.
종신보험 관련 소비자 피해 우려 목소리가 커지자 금융당국도 제재에 나선 상태다.
금감원은 지난 12일 진행한 ‘올해 하반기 내부통제 워크숍’에서 보험사들에게 상품 개발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내부통제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금감원은 “보험회사가 높은 환급률만을 강조하며 보장성 보험을 저축성 보험처럼 판매한 단기납 종신보험 등에 대한 내부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건전성 훼손 및 불완전판매 우려가 높은 불합리한 상품의 경우 소비자 피해 확산 방지 등을 위해 엄정 대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