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 위기上] 정치 혼란 속 대외 악재 겹친 한 해

보호무역·환경 규제·중국 공세에 국내 기업 고전 상계관세 검토 불구, 관세 장벽 구축 쉽지 않아 김필수 교수 “정치적 혼란 조속히 종식돼야”

2024-12-31     양우혁 기자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야적장에 차량들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출처=뉴시스]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국내 자동차 산업이 대내외적인 악재에 직면하며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강화된 보호무역주의와 전기차 세제 혜택 조정, 유럽연합(EU)의 환경 규제 강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국내 시장 진출 가속화 등이 주요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 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면서 기업 투자와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자동차 업계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생존 전략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업계가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 속에서 사업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의 보편 관세 및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가능성, 국내 정치적 혼란, EU의 강화된 환경 규제, 그리고 중국 완성차 기업들의 국내 시장 진출 등 여러 요인이 미래 경영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업계는 이러한 변수를 면밀히 살피며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높은 수출 의존도로 인해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보편 관세가 도입될 경우 한국산 자동차에 10~20%의 관세가 부과돼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대미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한국산 전기차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위험을 더욱 높이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보편관세의 효과 분석: 대미 수출과 부가가치 효과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미국이 보편 관세를 도입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은 최소 9.3%에서 최대 13.1%까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관세 부과로 인해 미국 내 수입품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입 규모가 줄어들고, 대체 효과에도 불구하고 대미 수출이 전반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경우 최대 13.6%의 수출 감소가 예상되며, 멕시코·캐나다 10%, 중국 60%, 한국 등 기타 국가 20%의 관세를 가정한 시나리오에서 그 영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연은 “이번 분석에서는 기업의 생산기지 이전 등 보편관세 부과의 투자 유출 효과는 고려하지 않았다”며 “이를 고려하는 경우 부가가치 감소 효과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IRA가 폐지될 경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IRA를 통해 제공되던 세제 혜택과 보조금이 사라지면 북미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구매력이 낮아진 소비자들로 인해 전반적인 전기차 수요가 감소할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글로벌 경기 침체와 맞물려 자동차 시장 전체의 수요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한국 자동차 산업 역시 이러한 변화에 따른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반면 유럽연합은 자동차 제조사들의 내연기관 차량에 대해 탄소 배출 규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어 전기차와 내연기관 모두 부담되는 상황이다. EU는 지난해 3월,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전면 중단하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내년부터 유럽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당 93.6g 이하로 제한될 예정이며, 이는 기존 기준인 110.1g/㎞보다 약 15% 낮아진 수치다. 이러한 규제는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기술 개발과 생산 공정의 전환 등 상당한 기술적·재정적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규제는 연간 1만 대 이상의 신차를 판매하는 대형 제조사를 대상으로 하며, 대부분의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규제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높은 벌금이 부과돼 제조사들은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전기차 생산 확대와 기술 혁신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 의존해 온 기업들은 생산 구조를 대폭 전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증가와 전환 속도의 부담이 제조사들에게 큰 과제로 작용하고 있다.

EU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는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교통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제조사들에게는 생존을 좌우할 중대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해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규제를 충족하려면 하이브리드 기술 개발, 연비 효율화, 그리고 전기차로의 대규모 전환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전기차는 여전히 높은 생산 비용과 제한적인 충전 인프라라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제조사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 혁신과 인프라 확충 등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환경 규제가 단기적으로 자동차 업계에 큰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생산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시장 확보 등 제조사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많다. 이와 같은 상황은 중소형 제조사들에게 특히 더 큰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대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시장 변화와 규제 동향을 면밀히 살피며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트럼프 리스크에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정치적 혼란으로 개선되더라도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최소 7~8개월간 대응할 책임자가 없어 자동차 기업들이 각자 살 길을 마련해야 하는 불안정한 상태라며 기업들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부담을 전가하는 정치권을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내년 자동차 산업은 정치적 혼란과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큰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고 국내 탄핵 정국으로 컨트롤 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강화, IRA 조정, EU의 환경 규제 강화 등 다양한 악재가 겹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신속히 정치적 안정을 되찾고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