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형 소비 시대上] 올해도 ‘가성비’ 외식·의류 판매 늘어난 ‘유통가’
‘삼고(三高)’에 시달린 2024 유통가...‘불황형 소비’ 확산 외식·의류·화장품 소비 행태 변화,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
【투데이신문 왕보경 기자】 2024년 유통가는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한 직격탄을 맞았다. 치솟은 물가에서 기인한 내수 침체로 인해 유통가는 권고 사직·희망 퇴직 등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기도 했다. 연말에는 예기치 못한 탄핵 정국이 맞물리며 불안한 한 해를 마무리했다.
올 한 해 경기 불황과 물가 상승이 지속되면서 소비자들의 지출 패턴이 크게 변화했다. 고물가 시대에 점심 물가 상승을 뜻하는 ‘런치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면서, 저렴한 외식 메뉴로 수요가 몰렸다. 의류를 구매할 때도, 합리적 가격의 SPA 브랜드를 선호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다이소 화장품 같은 저가형 상품의 인기, C커머스 같은 가성비 유통채널의 부흥, 중고 시장의 성장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다.
필수적인 소비인 ‘식품’ 소비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물가 상승으로 점심값 지출이 증가하는 ‘런치플레이션’이 심화하며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아울러,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무한 리필 뷔페 등도 되살아나는 모습이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소비자외식물가지수는 122.22로 기준시점인 2020년과 비교해 22.2%까지 올랐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올해 1월~11월의 소비자 선호 8개 외식 메뉴 평균 가격 상승률(서울 기준)은 4%였다. 김밥은 올해 1월 3323원에서 3500원으로 5.3% 올라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짜장면은 7069원에서 7423원으로, 비빔밥은 1만654원에서 1만1192원으로 평균 가격이 올랐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외식 물가에 편의점 간편식 소비가 크게 늘었다. 편의점 CU의 간편식 매출 신장률은 5년 연속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6.4%, 2023년 26.1%, 2024년(1~11월) 32%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CU가 도시락 가격대별 판매 비중을 분석한 결과, 5000원 미만의 도시락의 판매 비중이 30%까지 증가했다. 2022년 28%, 2023년 27.8%, 올해 8월 기준 30.2%까지 늘어났다.
‘초저가’ 제품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880원짜리 라면, 990원 채소, 개당 290원에 판매하는 캡슐커피 등 CU는 올해에만 여러 차례 가성비 제품을 선보였다. 고물가 상황 속에서 저렴한 간편식, 식재료 등을 찾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편의점업계가 선보이고 있는 구독 서비스 이용 건수도 크게 증가했다. 일정 구독료를 도시락·김밥 등 간편식을 할인받을 수 있는 혜택이 제공된다. CU는 지난 5월 구독 서비스를 리뉴얼했다. CU의 구독 서비스는 5~11월경 리뉴얼 전인 1~4월과 비교해 평균 구독 건수가 60% 증가했다. GS25도 올해 1~11월 구독 서비스 이용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47.5%가량 증가했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올해 연말에는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외식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것 같다. 연말 외식 수요도 편의점으로 몰리며 간편식 매출이 증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연말 수요가 편의점으로 몰리며 간편식 매출이 증가했다. 고물가 시대에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을 위해 업계에서는 1000원 이하의 상품을 출시하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독 할인 서비스, 원플러스원 등 할인 프로모션과 증정 상품 매출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도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외식할 수 있는 뷔페형 식당도 올해 들어 매출을 회복했다. 시장조사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 규모는 2022년 6854억원에서 지난해 8931억원으로 성장했다. 올해는 9000억원대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실제로 이랜드가 운영하는 무한 리필형 뷔페 애슐리는 올 한 해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을 했다. 올해 110개까지 매장 개수를 늘렸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최근 런치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나올 만큼 외식 비용이 많이 올랐다. 식사 후 커피나 디저트를 포함하면 1만 원 후반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고물가 속에서 애슐리와 빕스 같은 무한 리필 뷔페의 매출이 신장하고 있으며, 외식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기화하는 경기 불황으로 인해 의류업계도 부진을 겪었다. 그러나 필요한 소비만 하는 ‘요노’ 트렌드가 주목을 받으며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실용적인 소비가 가능한 스파 브랜드들의 수요는 높아졌다.
이랜드의 의류 브랜드 스파오는 올해 6000억원의 매출고가 예상된다. 이는 전년 4800억원 대비 25% 증가한 수치다. 신성통상이 운영하는 탑텐도 올해 약 9700억원의 매출 달성이 예상된다. 이는 전년 매출 9000억원 대비 7.8% 성장한 규모다. 에프알엘코리아의 유니클로도 올해 1조원대의 매출을 회복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가 양극화되면서 고가의 제품을 구매하려는 수요와 가성비 제품을 찾는 수요로 나뉘고 있다. 저렴한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은 더욱 가성비가 높은 브랜드와 제품들을 찾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며 소비 패턴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흔히 경제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립스틱 효과’마저 저렴한 유통 채널로 몰리고 있다. 립스틱 효과란 불황 속에서 고가의 사치품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사치품인 화장품 등이 인기를 끄는 소비 현상을 말한다. 올 한 해 뷰티 상품 수요가 편의점이나 다이소 같은 초저가 유통 채널로 몰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실제로 CU의 화장품 매출 신장률은 2022년 24%, 2023년 28.3%, 2024년(1~9월) 14.7%로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왔다. GS25도 마찬가지다. GS25의 기초화장품 매출 신장률은 △2022년 35.5% △2023년 54.1% △2024년(1~10월) 72.5%이다. 세븐일레븐은 △2022년 30% △2023년 25% △2024(1~9월) 15%이다. 다이소는 기초화장품과 색조화장품의 매출이 2023년 1월~11월 전년 대비 약 150% 신장했다. 기초화장품은 약 200%, 색조화장품은 약 80% 증가했다.
특히 다이소는 1000~5000원 이하의 합리적인 가격대로 젊은 연령층부터 30·40세대까지 전부 아우르는 화장품 유통채널로 성장했다. 다이소 관계자는 “고물가에 5000원 이하의 균일가를 지켜오는 부분이 긍정적인 작용을 해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불황형 소비가 더욱 확산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황용식 교수는 “내년 한국은행 경제 성장 전망치가 1.9%다. 국내 경제가 저성장이라는 늪 속에서 불황형 소비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 체질 등이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업들도 기조에 맞춰 불황형 소비에 걸맞은 제품 등을 출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불황이 장기화했을 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상황이 올 수도 있어 고민스러운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