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룡이 아닌 백호살(白虎煞)이었던 2024년을 역사로 보내며

2025-01-02     이종우 칼럼니스트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어김없이 2025년이 왔다. 과학적 사고로 생각한다면 2025년 1월 1일에 떠올랐던 태양은 태양이 없어지지 않는 한 늘 봤던 그 태양이었다. 심지어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이 보내는 빛과 에너지를 받기 시작하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새해의 시작을 축하한다.

여기에서 인간 이외의 동물과 다른 인간의 독특함이 드러난다. 인간은 농경사회와 수렵사회를 따지지 않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역법(曆法)을 연구하고 ‘달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소위 ‘서기(西紀)’라고 부르는 서양 스타일의 서력기원을 고안했고, 동아시아에서는 12간지(干支)를 기준으로 10개의 천간 중 한 글자와 12개의 지지 중 한 글자를 결합해 한 해의 이름을 붙였다.

지난해는 서기 기준으로는 ‘2024’, 12간지 기준으로 ‘갑진(甲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2024년 1월 1일, 정치권, 언론, 재계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분야의 여러 인사들이 ‘갑진년은 청룡의 해’라고 말하면서, 청룡이 승천하듯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또한 서기 기준 2025년, 12간지 기준 ‘을사(乙巳)’년은 ‘푸른 뱀의 해’라고 이야기한다. ‘색깔 있는 12간지 동물’을 규정하는 것에는 나름의 조잡한(!) 논리가 있다. 2024년 갑진년의 갑(甲)과 2025년 을(乙)은 목(木)을 뜻하고, 목은 파란색으로 상징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체계는 오행, 즉 세상이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가 서로 부딪히고 조화하면서 이루어지는 원리로 구성됐고 운행하고 있다는 사고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2024년 지지가 사(巳), 즉 뱀의 해이기 때문에 ‘푸른 뱀의 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룡의 경우 방위를 뜻하는 상상 속의 신성한 동물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하고, 이로 인해 “청룡의 해처럼 승천했으면 좋겠다”라는 덕담이 가능했다. 그런데 ‘푸른 뱀’은 무슨 신화적 의미를 갖다 붙일지 궁금하다.

필자는 오히려 명리학에서 논하는 갑진(甲辰)의 성격인 ‘백호살(白虎煞)’에 주목한다. 말 그대로 ‘흰 호랑이’를 뜻하고, ‘백호대살’이라고도 부른다. 백호살은 명리학에서 ‘신살(神煞)’이라는 것 중 하나다. 근대 이전 소위 ‘흉한 죽음’ 중 하나로 꼽는 것이 호환(虎患), 즉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것이었다. 그래서 백호살은 ‘자신이나 가까운 가족(육친)에게 피를 보는 흉한 사건’을 뜻한다. 혹은 거칠고 험한 행동이나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2024년 한국인에게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한 해였다. 경제적으로는 불경기가 심해서 시민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외교적으로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면서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살육을 저지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에 북한군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말 나온 김에 남북관계를 살펴보면, 백호살의 기운은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북한은 한국과의 관계 단절을 주장하고 있고, 한반도 긴장은 고조됐다. 사회적으로 갑작스러운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의료의 일부가 마비됐고, 아픈 사람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도 다수 발생했다. 청룡 승천의 기운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백호살과 맞지 않는 것이 없다.

백호살의 기운은 정치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 윤석열과 김건희를 비롯한 그 일가가 과거에 일으켰던 여러 가지 비위가 한꺼번에 터졌지만, 드러나는 족족 무혐의로 처리됐다. 그러나 과거 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명태균에 의한 여론조사 조작이 세상에 밝혀졌고, 여기에 윤석열이 연루됐다는 정황이 속속 공개됐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은 12월 3일 밤 10시 30분경, 윤석열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 쿠데타는 3시간 천하로 끝났고, 국회의 탄핵 의결로 현재 윤석열의 대통령 직무는 정지됐다. 그러나 내란 우두머리였다는 혐의가 있는 윤석열의 대통령직 파면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백호살의 절정은 무안국제공항에서 있었던 제주항공 비행기 폭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승객 175명과 승무원 4명이 사망했고, 2명의 승무원이 부상당했다. 12월 29일 일요일 아침에 있었던 이 사고로 시민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고, 정부는 1월 4일까지를 국민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서력기원 기준으로 2025년이 시작됐다. 서력기원 기준으로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기도 하다. 아울러 사람들은 다시 을사년을 푸른 뱀의 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을사년은 1905년 제국주의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면서 침략을 가속화 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해로 유명하다. 또한 조선 시대 명종 즉위 직후인 1545년, 명종의 외척인 파평 윤씨 일가의 윤임(尹任, 1477~1545)과 윤원형(尹元衡, ?~1565) 사이의 권력 다툼과 이에 따른 정적인 을사사화(乙巳士禍)가 발생한 해이다. 그러나 을사(乙巳)라는 글자 자체는 명리학적으로 상승 기운과 역동성이 뚜렷하다.

솔직히 사주 명리학은 현대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빈틈이 많다. 2024년의 역사적 사건을 ‘백호살’이라는 것에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고, 그 백호살이 정말 있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백호살과 대면했을 텐데, 과연 세계의 모든 사람이 고통스러웠을지 확인할 길이 없다. 당장 작가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큰 명예를 얻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주를 보는 이유는 아마 사주가 주는 위로와 희망으로 현실의 고통과 미래를 알 수 없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 가지 첨언하면, 명리학적으로 갑진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명리학의 역법상 새해의 시작은 입춘, 즉 2월 3일부터다. 그래서 명리학 역법상 보통 새해의 시작은 2월이라고 말한다. 남은 한 달가량의 기간 동안 갑진이라는 운을 잘 마무리해야 을사의 운을 잘 받을 것이다. 불의를 타파하고 정의를 다시 세우며,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1월을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