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ㅅㅁ 게임] 사느냐 꿈꾸느냐…‘빵과 복권’ 앞 20대의 선택은

◐ <오징어 게임2> 딱지맨 실험 20대편◑ ‘젊음의 거리’ 홍대서 청년 15명에 직접 물어 빵 8명·복권 7명…“생존” vs “어차피 희망없다” “정상적인 현상…현실 20대, 헛된 꿈 꾸지 않아”

2025-01-14     박효령 기자

전편의 대흥행으로 국내외로 이목을 끌어모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의 첫 화의 제목인 ‘빵과 복권’. 다시 한번 등장한 딱지맨(공유)는 한 손에 빵을, 다른 한 손에 복권을 들고 탑골공원의 노숙자들에게 접근한다.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받은 노숙자들은 망설임없이 복권을 선택하고, 딱지맨은 이에 분노해 그들 앞에서 빵을 팽개치며 비난을 쏟아낸다.

이같이 최근 공개된 <오징어 게임2>는 ‘한탕주의’를 향한 노골적인 비판적 시선을 내보인다. 아울러 주식과 코인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우리 사회에서 ‘빵과 복권’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큰 돈부터 인간성까지 잃어버리는 자본주의적 백일몽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 사회는 한탕주의의 늪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게 된 걸까.

본보는 이 같은 지점을 자문하고 실제 여론을 파악하고자 홍대·강남·광화문·탑골공원에서 20~50대 이상을 대상으로 ‘빵과 복권’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회·경제·문화·심리 전문가와 함께 그 결과를 분석해 기획 시리즈 ‘ㅇ:운(복권) ㅅ:식사 ㅁ:게임’, [ㅇㅅㅁ게임]으로 담아봤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2> 갈무리. [사진제공=넷플릭스 코리아]

【투데이신문 박효령·권신영 기자】 “제가 자그마한 오늘의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빵과 복권, 둘 중 하나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최근 공개돼 큰 화제를 끌어모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 1화에서 딱지맨(공유) 노숙인들에게 건넨 선택지다.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딱지맨은 탑골공원 곳곳을 돌며 노숙인들에게 빵과 복권 중 단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 그때 노숙인 대다수는 복권을 선택하지만 결과는 모두 ‘꽝’이다. 딱지맨은 선택받지 못한 빵을 바닥에 모두 버린 채 경멸한다는 듯이 구둣발로 짓이긴다. 노숙인들이 “이 아까운 걸 왜 버리냐”고 묻자 그는 “이 빵을 버린 건 선생님들(노숙인)이다”라고 답한다.

이 장면은 현대 사회에서 상대적 빈곤과 불안감이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빵은 일용할 양식으로서, 눈앞에서 확실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선택지다. 반면 복권은 당첨되면 큰돈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그것은 확률에 의존하는 불확실한 선택이다. 그럼에도 많은 노숙인들이 눈앞의 필요를 외면하고 불확실한 꿈에 베팅한다.

이는 빈곤층이 줄어들었지만 서로를 비교하며 자아를 깎아내리고 불안감을 조장하는 ‘상대적 빈곤’이라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상징한다.

시즌1과 비교해 시즌2에서는 유달리 코인 투기·도박으로 빚더미를 떠안게 된 2030 청년 세대가 게임에 대거 참여한 모습이다. 청년 전체가 이 같은 상대적 빈곤감에 허덕인다고 말할 수 없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선택지가 많아진 현 시대에서 잘못된 선택이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을 극단적으로 그려낸다. 이런 이유로 ‘오징어 게임 2’가 단순한 시리즈물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청년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빵을 골라 당장 허기를 채워 확실한 행복을 얻을 것인지, 혹은 빵을 먹고 얻은 힘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회를 잡으려고 할 것인가. 이가 아니라면 눈앞에 보이지 않는 ‘대박’을 꿈꾸며 복권을 선택할 것인가.

이에 본보가 딱지맨이 돼 홍대 젊음의 거리로 나가 20대 청년들(남성 5명, 여성 10명)을 대상으로 빵과 복권이라는 선택지를 내밀었다. 그들의 선택과 그 이유를 직접 들어 이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그 속에 숨어있는 사회적 함의를 분석하고자 했다.

시민들이 본보가 건낸 안내문을 통해 취재에 참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눈앞의 ‘필요’를 채워 일할 용기를 얻다

14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은 이른 시간부터 젊은 이들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젊음의 거리로 나와 친구, 혹은 연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상점과 카페들이 늘어선 거리는 활기차고, 거리마다 음악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이들에게 갑자기 예기치 않은 질문이 던져졌다. ‘만약 당신이 노숙자라면 빵과 복권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냐’는 물음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당황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차례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빵을 고른 신모(25·남)씨는 “노숙자라면 음식을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배가 고프기 때문에 빵을 고르겠다”며 “이는 살기 위해서라도 당연한 선택”이라고 답했다.

정모(22·여)씨는 조심스럽게 빵을 골랐다. 그는 “복권은 당첨되면 큰돈이 생기고 그 덕에 인생이 필 것 같지만 당첨 확률이 너무 낮아 택하기가 망설여진다”며 “더욱이 노숙자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생존하기 위해서 빵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일을 구하기 위해서 빵을 고른 청년도 있었다. 박모(22·여)씨는 “노숙자라면 제대로 된 한 끼 식도 하지 못했을 것 같다”며 “빵을 먹고 힘을 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모(25·여)씨도 “불가능에 가까운 선택을 할 바에는 먹고 기운을 차린 다음 일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이외에도 홍모(20·여)은 “빵은 당장 주어지는 보상이고 바로 받아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최모(20·여)는 “복권이라는 도박을 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빵을 얻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다”고 빵을 택했다.

이처럼 홍대 거리에서 만난 청년들이 선택한 답은 단순한 선호를 넘어 이들의 삶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우리가 만난 15명의 청년 중 8명은 당장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빵을 골랐다. 일부는 더 나아가 빵을 통해 얻을 힘을 생각하며 미래를 그려내기도 했다.

복권을 택한 시민들이 복권을 살펴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식사는 찰나일 뿐”…빵, 그 존재의 가벼움

반면 현실에서 확실한 선택지가 아닌 불확실한 운을 택하는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노숙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복권이 유일한 희망이라 여겼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현실 이들이 처한 사회적 불안감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복권을 택한 임모(23·여)씨는 “어차피 노숙자라면 굶고 있었을 테니 배고픔은 익숙해졌을 것 같고 음식은 주워 먹거나 구할 수 있다”며 “노숙을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니까 한 번의 기회를 노리겠다”고 의견을 드러냈다.

신모(26·남)씨 또한 “빵은 먹으면 끝나버린다”며 “노숙인처럼 어떠한 가능성이 안 보이는 답답하고 막막 상황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에 거는 게 낫다”고 응답했다.

성공에 대한 욕망을 강렬히 드러낸 청년도 있었다. 망설임 없이 복권을 택한 김모(29·남)씨는 “성공하고 싶은데 이를 도와줄 큰돈이 없으니까 단 한번에 기회라도 복권이라는 도박에 걸 것 같다”며 “당첨될지 혹시 모르지 않나”라고 선택 이유를 밝혔다.

대부분의 대답은 유사했다. 황모(23·남)씨는 “빵은 일회성에 불과하다. 복권은 인생이 바뀔 기회라도 주기 때문에 복권을 택해 행운이 찾아오길 빌겠다”고 말했으며 오모(28·남)씨는 “노숙을 할 정도면 인생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간 거라고 보기 때문에 한탕으로 인생을 뒤집으려고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15명의 청년 중 7명은 복권을 통해 자신의 미래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일용할 양식인 빵보다는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며 복권을 선택했던 오징어게임 2 속 상황이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오징어 게임 2> 홍보물이 홍대거리에 세워져 있다. ⓒ투데이신문

청년 누구나 ‘457번’이 될 수 있다

실제 청년들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2023년 정부가 발표한 ‘청년 삶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청년 세대의 연평균 소득은 2162만원에 그쳤다. 부채는 1172만원에 달했다.

‘상대적 빈곤’을 유발할 수 있는 청년 세대 내부에서 소득 격차도 존재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통계청의 ‘2023년 생애단계별 행정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 인구는 총인구의 29.4%(1462만8000명)였고 이 가운데 11.5%가 주택을 소유했다.

집이 있는 사람일수록 소득도 높았다. 지난해 주택을 소유한 청년은 연간 소득(근로·사업)은 4994만원으로 무주택 청년(2618만원)보다 1.9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청년 평균(2959만원)과 비교하면 1.7배의 소득을 벌고 있었다.

돈을 벌 수 있는 ‘고용’ 여건은 여전히 어렵다. 통계청이 지난달 11일 발표한 ‘11월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가 2882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12만3000명 늘었다. 전 연령대에서 고용률이 증가했지만 청년층(15~29세)은 45.5%로 0.8%p 떨어졌다.

특히 청년층은 고용난 장기화로 인해 기존 구직자들이 경제활동인구에서 빠져나가면서 경제활동참가율도 48.1%로 0.8%p 하락했다.

구직난이 길어지자 지난해 5월부터는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같은 통계를 보면 20대 ‘쉬었음’ 인구는 전년 동월 대비 6만5000명 늘어났다.

이 같은 장기화된 취업난과 경제적 불안정 등으로 인해 청년들의 고립감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지원과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는 전 사회적인 움직임이 절실한 시점이다.

홍대 거리를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러한 상황에도 복권보다 ‘빵’을 택한 청년이 많았다는 점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박종인 강원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빵을 선택한 20대가 많은 것은 정상적인 현상이다. 복권을 선택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당첨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기대에 대한 액수만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복권을 선택한다는 건 희망적인 현상이 아니다. 복권은 현실과 이상의 격차를 커지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복권은 가난할수록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스스로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수록 복권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20대 남성들이 복권을 대다수 선택한 점을 볼 때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이 여유 있지 않다거나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주관적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