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개혁 딜레마②] 낸 돈 얼만데 계약전환?…1·2세대 실손 가입자 ‘반발’

실손보험 개혁, 의료 본연의 역할 회복하기 위한 과정 필요성 공감하지만 소비자 보호·선택권 보장 주요 과제 소비자단체 “보험사 편드는 정부…개혁 대상이 주체로”

2025-01-20     김효인 기자

실손보험 적자가 이어지며 전체 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으로 비급여 진료의 과잉과 관리 부재가 꼽히고 있다. 정부가 과잉 진료와 비급여 항목을 통제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내놨지만, 소비자는 보험료 증가 및 혜택 축소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자기 부담률이 낮은 기존 가입자의 5세대 실손보험 전환율 또한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계는 자율성 침해와 환자 선택권 제한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실손보험의 보험금 누수는 보험사 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정책의 실효성과 이해관계자 간 합의가 개혁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진행된 실손보험 개혁 토론회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실손의료보험 개혁의 핵심은 비급여 치료 남용 등 ‘도덕적 해이’를 개선하자는 데 있다. 특히 초기 실손보험의 경우 사실상 자기부담금이 거의 없기에, 일부 가입자가 꼭 필요하지 않은 고가의 비급여 치료를 부담 없이 받는 행위가 전체 보험료를 인상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가입자 대다수가 보험료만 내고 혜택은 소수의 가입자만 누리는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보험사 재정 누수 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의 재정도 악화돼 결국 보험의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정부 시각이다. 이에 실손보험 개혁방안을 내놨지만 그 방법론과 현실성에 있어 소비자 권리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1세대 실손 보험 가입자의 비중은 19.1%, 2세대 실손 가입자의 비중은 45.3%로 실손 가입자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999년 등장해 현재까지 국민 3000만명이 훌쩍 넘게 가입한 실손보험은 이제 ‘제2의 건강보험’으로 자리잡았다. 질병·상해로 쓴 의료비를 실제 부담 금액에 따라 보장하는 상품으로, 가입 시기에 따라 1세대부터 4세대까지 개정됐다. 

‘의료쇼핑’ 우려가 증폭되는 가운데, 전체 의료비 중 자기부담금이 높은 3·4세대와는 달리 1세대는 자기부담금이 없고 2세대는 10%로 낮다. 이는 정부가 이들 가입자들의 계약 전환안을 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난관…개혁 정당성 vs 소비자 권리 상충

정부는 지난 9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개최한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를 통해 개혁안 발표에 나섰다. 정부는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와 과잉 진료 페널티 부과, 실손보험 갱신제도 개편 등을 포함한 방안 등을 통해 의료비 과잉을 통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이날 소비자·환자단체는 행사 시작 전부터 거센 항의에 나섰다. 정부가 보험사의 입장에서 사적 계약에 개입하고 소비자 권리를 축소하려 한다는 의견이다.

보험이용자협회 김미숙 활동가는 “실손보험을 개선하려면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하고 보장 범위 내에서 관리돼야 한다”며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할 보험사가 개혁의 주체가 됐다. 정부가 보험사 편에 서서 사적 계약에 개입하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러 개혁방안 가운데서도 1·2세대 실손 계약 재매입 논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약관변경이 불가한 초기 가입자를 대상으로 올해 나오는 ‘5세대 실손보험’으로의 전환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소비자 동의하에 계약을 재매입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필요할 경우 법 개정을 통해 초기 실손에도 약관변경(재가입) 조항을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초기 실손 가입자 중에는 해마다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보험료를 오랜 기간 납입하며 계약을 유지한 소비자가 대다수다. 상대적으로 젊었던 가입 당시보다 시간이 지나 40~50대 중장년층에 접어든 이들이 많은 만큼, 의료비를 본격적으로 소진할 시기가 돌아왔다는 평가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50대 여성 가입자는 “몇만원에 가입한 보험료가 20만원을 넘겨 너무 부담이 컸지만 노후 의료비에 대한 두려움에 지금까지도 보험계약을 잘 유지해 왔다”며 “얼마를 준다고 해도 스스로 계약을 바꿀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소비자의 의료 쇼핑이 문제라면 그 행위에 대해 제재를 하면 될 것인데 왜 정부가 나서서 보험사의 배를 불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당한 약관으로 계약했는데 소비자 권리 보호에 먼저 나서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70대 남성 가입자는 “지금껏 낸 보험료가 몇천만원인데 푼돈을 받고 이렇게 낮은 혜택으로 바꾼다는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정부가 보험사편을 들며 소비자 권리는 뒷전”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재매입에 대한 인센티브를 계약자의 납입 보험료 기준으로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기존 가입자의 이익 침해를 최소화하는 신뢰 보호의 원칙에 따라 실무적인 검토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고영호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은 “실손보험 계약 재매입 같은 경우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 당사자들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결국 소비자가 원할 경우에만 계약 재매입이 가능하다”며 “재매입과 관련해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설명을 강화하고 설명 프로세스도 별도로 관리할 예정이다. 특히 숙려 기간 부여, 철회권 취소권 보장, 현행 실손으로 무심사 전환 등 보안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재매입 취지 좋지만 소비자 보호 배제해선 안 돼”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1·2세대 가입자들의 계약을 재매입해 의료남용 가능성을 낮춘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입자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계약 전환률에 대해서는 미지수라는 의견도 나왔다.

함명일 순천향대 보건행정경영학과 교수는 “초기 실손보험의 경우 보험회사와 가입자 간의 사적 계약이기에 재계약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 해당 상품에 대한 재매입 계획은 매우 획기적인 방안”이라면서도 “비급여 항목의 구체적인 관리 방안에 대해서는 보건당국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유주선 강남대 정경학부 교수는 “실손보험 계약 재매입 시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소비자 보호 관점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보험 계약자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함께 생각할 시간, 취소 권리 부여에 대해 배제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는 “1세대와 2세대 일부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을 써도 축소된 실손보험으로 갈아타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이미 1·2세대 환자 중 중증 질환으로 보장을 받는 분들도 있는데 어떻게 축소를 하겠느냐. 법 개정까지 언급됐지만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보험업계에서도 재매입에 대한 전망은 불확실하다는 입장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오랜 기간 높은 금액의 보험료를 내고 계약을 유지해 온 고객의 목표는 결국 든든한 보장인데 이번 재매입 안의 경우 본인의 권리를 침해받는다는 의식이 강하다”며 “정부가 좀 더 고민해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계약은 가입자마다 재가입 주기나 특약 등의 조건이 모두 달라 일률적으로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며 “실효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만약 환급금의 몇 배를 돌려주는 안에 소비자가 동의한다고 해도 거액이 한꺼번에 나가는 것이기에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