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금융소비자연맹 조연행 회장 “성경보다 많이 팔린 보험 약관, 소비자에겐 ‘난관’”

40년 ‘보험通(통)’ 조연행 금소연 회장 인터뷰 소비자 권리 배제, 보험 산업 고질적 문제 지적 “입증 책임 전환 등 ‘소비자권익 3법’ 제정돼야”

2025-02-13     김효인 기자
금소연 조연행 회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보험은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난해한 영역이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보험 약관은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으며, 법률과 금융 용어로 가득 차 있어 전문가의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금융소비자연맹 조연행 회장은 보험 약관이 성경보다도 더 많이 배포됐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난관’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성경이 방대한 분량과 오래된 언어로 인해 해석이 필요한 것처럼, 보험 약관 역시 변호사나 설계사의 설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조 회장은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에서 16년간 상품 개발을 담당하며 보험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2002년 금융소비자연맹 창립 멤버로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소비자 권익 보호 활동에 나섰다. 금소연은 그동안 외부 금융·법률 전문가들을 회장으로 선임해왔지만, 조 회장은 조직 내에서 성장한 첫 내부 출신 회장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다양한 기관에서 정책 위원으로 활동하며 소비자 권익 보호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시민단체 운영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실제 기자가 찾은 금소연 사무실은 이전보다 더 좁아졌다. 운영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도 소비자 권익 보호에 그 어떤 것보다 보람을 느낀다는 조 회장을 만나 보험업계의 구조적 문제와 소비자 권리 강화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보험 개발에서 시민단체로…“보험, 중요하지만 어려워”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소비자권익 보호에 앞장서게 된 계기는.

1986년 교보생명의 전신인 대한교육보험에 입사해 16년 동안 상품 개발에 나섰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해보험 개발로 ‘최단기간 최다판매 보험상품개발’이라는 기네스 기록을 세울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금융, 그중에서도 보험에 어려움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너무 많다는 점을 체감하고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 편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민단체에 합류했다.

오래 전 이야기인데 연맹을 처음 세울 때 상황은 어땠는지.

연맹이 처음 깃발을 세웠을 때의 이름은 보험소비자연맹이었다. 지금도 금융 분야 중에서 보험이 가장 민원이 많은 분야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 보험 약관 자체의 어려움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금융 산업은 국민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보호보다는 금융사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더욱 열악했다. 소비자들의 권익이 보호되지 않는 시기였고 소비자 단체 또한 별로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지지와 칭찬을 많이 받았다. 

현재 보험 산업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보험학이라는 학문이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깊이 있는 분야라고 본다.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금융 상품이자 인간이 만든 가장 합리적인 제도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열에 아홉은 보험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복잡한 상품 구조와 난해한 약관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로 인해 보험 상품 가입 후 발생하는 분쟁이 잦고, 소비자 불신이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돈만 내고 혜택은 제대로 못 받는 상품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험업 신뢰지수는 아프리카 우간다보다도 낮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는지.

최근 대두된 실손 보험 문제만 해도 과도한 보장 설계로 인해 시장이 왜곡되고 보험금 누수가 발생하는 등 심각한 문제다. 잘못된 상품 설계 때문에 시장 혼란이 생기고, 보험사가 손해라는 주장을 펼치면 정부가 들어주는 형태로 대응한 것이 다섯 번째까지 왔다. 보험상품은 과거의 위험률 통계를 기반으로 상품을 만드는데, 일반적으로 화재위험이나 교통사고 위험 같은 것은 통계상 고정이 돼 있지만 실손보험은 그렇지 않다. 고정돼 있어야 할 위험률이 계약자의 행동에 의해 증가할 수 있는 구조이고, 상품이 나오면서 시장이 움직였다. 악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금소연 조연행 회장 ⓒ투데이신문

시장이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문제 해결책이 있을지.

현재 상태로는 어렵다고 본다. 실손 5세대 상품은 자기부담금이 80% 이상인데 이를 실손보험으로 부를 수 있을까. 실제 손해액을 보상해준다는 취지와는 너무 다르다. 세대를 거듭해 지급항목을 바꾸더라도 시장에서는 어떻게든 ‘제2의 도수치료와 백내장 치료들을 만들 것으로 본다. 보험사가 좋은 상품을 만들면 돈을 벌 듯이, 잘못 설계한 상품으로 인한 손실을 감수해야 할 책임도 있기에 정부가 나설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당초 계약했던 내용을 바꾸는 것 자체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고, 결국 손실을 다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보험사의 불완전 판매로 인한 피해도 꾸준히 지적되는 문제인데. 

사실 보험 약관이 너무 어렵다 보니 소비자들이 정확한 정보 없이 가입한 후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빈번하다. 보험 상품 구조를 보다 단순화하고, 약관 내용을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보험사의 책임 의식을 강화하고, 불완전 판매를 근절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은 보험사들이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도록 감독을 강화해야 하며, 소비자들도 충분한 정보를 습득한 후 신중하게 보험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

금융사의 금융 교육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금융맹을 탈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아무래도 금융사가 직접 하는 교육에 대한 우려점도 있다. 어린 학생들의 경우 판단력이 부족한데 금융취약계층을 상대로 하는 금융교육에서 당사의 상품을 홍보한다던지 하는 일을 배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소비자연맹에서도 소비자 교육, 금융 상품 비교, 피해 사례 상담 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금융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또한,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며, 금융 정책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법적제도 미비 아쉬워…소비자 권익 3법 마련돼야

금융 산업 전반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금융 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비자 중심 경영의 부재다. 현재 많은 금융사들은 소비자의 이익보다는 자사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소비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금융 상품 설명이 미흡하게 이루어지고, 불완전 판매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배당 상품을 운영하며 보험 이익을 소비자와 나누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무배당 상품이 대중화된 점을 들 수 있다. 대형 금융사들이 이익이 나면 성과급 잔치를 한다는 보도 등을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라고 볼 수 있다.

시민단체로서 금융사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소비자 중심 금융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노력이다. 금융사들은 소비자의 자산을 관리하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소비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특히 금융 상품의 설명이 미흡한 점을 개선하고, 소비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금융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금융당국도 금융사의 책임을 보다 강화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금소연 사무실의 손팻말 ⓒ투데이신문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지. 

현재 집단 소송 제도는 증권 분야에만 한정돼 있는데, 이는 형해화된 법이다. 그간 연맹은 금융소비자 권익 찾기를 위해 백수보험 배당금청구, 생보사상장시 계약자배당금 청구, 근저당권설정비 반환, 생명보험사 자살보험금청구 공동소송, 카드사 정보유출 손해배상 등 소비자공동소송을 앞장서 왔지만 개인이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도 지연되고 있다.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집단 소송 제도를 확대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입증 책임 또한 소비자가 아닌 보험사가 지도록 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80% 이상이 검진을 먼저 하고 보험에 가입한다. 국내에서는 고지의무 위반이라고 해서 소비자 말만 듣고 보험에 가입시킨 후 보험금 지급은 굉장히 까다롭게 한다. 여러 제도 개선을 통해 소비자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금융소비자연맹이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바란다. 약자인 금융소비자 편에 서서 20여년간 투쟁하는 동안 희비가 엇갈리는 경험이 많았지만, 정의를 실천한다는 사명감에 보람을 많이 느꼈다. 또한 시민단체를 운영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연맹이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다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으면 한다. 법적 지식이나 이론을 갖춘 좋은 활동가 등이 모이면 더욱 광범위하게 소비자들의 권익 보호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