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조들의 화재 대비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윤석열의 대통령직 탄핵 심판이 늦어져서 사람들의 속이 타는 가운데, 최근 발생한 큰 화재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발생했다. 의성의 천년 고찰(古刹) 운람사가 잿더미로 변했고,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도 화재의 위험에 노출됐다. 경남의 화재로 백두대간의 한반도 남쪽 끝인 지리산 역시 화재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다. 화재로, 그리고 그 화재를 진화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했고, 많은 이재민도 발생했다. 이로 인한 안타까움으로 시민들의 속은 더 타들어 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화재로 인한 피해가 막대한데, 근대 이전은 오죽했을까. 근대 이전 주택 대부분은 나무나 짚으로 지었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돼 있었다. 또한 주요 산업이 농업이었고, 산림에서 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땔감과 음식을 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근대 이전에는 한 번 화재가 발생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살아남아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또한 불은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근대 이전 어둠을 밝히기 위한 초나 기름은 비싼 물건이었다. 이것들을 비롯해 땔감을 구할 재력을 더 많이 가진 지배층들은 오히려 화재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돼 있었다. 실제로 고종 대에 흥선대원군이 주도했던 경복궁(景福宮) 재건 당시에도 큰 화재가 발생했고, 궁궐 또는 양반들이 사는 동네나 집에서 화재가 일어나는 경우가 빈번했다.
역사 속의 자연재해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필자가 많이 쓰는 표현이지만, 선조들은 재해를 막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이것에 화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태종 17년(1417), 명(明)의 법전인 『대명률(大明律)』의 실화조(失火條)를 인용해 화재를 막고 불을 낸 사람들을 처벌하는 ‘금화령(禁火令)’이라는 법령이 만들어진다. 세종 8년(1426) 2월에 화적(火賊)의 방화로 큰불이 일어나자,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해 화재의 방지와 개천과 하수구의 수리 및 소통을 담당하게 하고, 화재를 이용한 도적들을 색출하게 했다. 오늘날로 치면 소방방재청과 비슷한 관청이 생긴 것이다. 금화도감에 소속된 군 조직인 금화군(禁火軍)도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소방관과 비슷하다. 이후 세조 13년(1467) 12월 14일 사옹원(司饔院)에서 발생한 화재를 계기로 대규모 화재를 진압하는 데에 취약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멸화군(滅火軍)으로 개편됐다.(2021년, <멸화군>이라는 제목의 창작 뮤지컬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비록 조정에서 화재 진압을 전담하는 조직과 인력을 만들었지만, 이들은 조직의 규모나 인원수가 매우 작았기 때문에 궁궐과 양반들의 주거지 화재를 진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백성들은 스스로 화재를 예방하고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의 색출에 사용됐던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은 민가의 화재 진압에도 적용됐다.
그렇다고 조선 조정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구휼(救恤)’로 분류된 기록 중 ‘화재’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250건 전후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화재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대표적인 구휼 방법은 식량 지급이었다. 조정에서 보유하고 있던 곡식이나 장(醬)을 지급했다. 『세종실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확인된다.
의정부에 명하기를, “화재를 당한 집 수와 인구를 장년과 어린이로 나누어 힘써 구제하여, 굶주리며 곤란을 당하는 사람이 없게 하라”하고, 병조에 명하기를, “화재를 당한 사람들의 집을 지을 재목으로 말라 죽은 소나무를 베어 주라” 하였다.(『세종실록』 31권, 세종 8년 2월 19일 계미 4번째 기사.)
위의 기록을 보면 상대적으로 화재의 위험에 취약한 어린이를 더욱 보살피겠다는 의지가 보이고, 불탄 민가를 다시 지을 수 있는 목재도 제공한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조선의 역대 왕 가운데 폭군으로 분류되는 연산군이나 광해군 대에도 화재가 발생하면 곡식을 지급하거나 역(役)을 면제해 주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재해가 발생하면 우선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화재의 경우 자연재해에 비해 사람의 실수로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조금만 조심하면 화재의 수나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한국의 산림을 구성하는 상당수의 나무가 소나무인데, 소나무는 송진 때문에 다른 나무에 비해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 조림의 변화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세운다면, 산불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가 이번 화재의 피해를 더욱 늘리는 원인이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자연재해와 달리 사람들이 조금만 조심하고,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잘 수립한다면, 화재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재와 화재의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빌고, 신체와 재산에 피해를 받은 분들에게 마음 깊은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