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 현장]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헌재 선고에 같은 시간 다른 세계
[현장취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반대 집회 긴 기간 이어진 집회의 끝…서로를 안아준 시민들 “국민이 승리했다” 박수·환호로 가득찬 현장 분위기 400m 거리 두고 반응 엇갈려…냉랭했던 尹 지지 측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김민수 인턴기자】 “민주주의가 승리했다!”
22분 동안 이어진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끝나고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자 그 일대는 뜨거운 환호로 들끓었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내려진 4일 서울 안국역 일대는 탄핵 찬반 시위로 많은 인파가 모이면서 긴장감이 흘렀다.
헌법재판소를 중심으로 안국역 일대에서는 탄핵 찬반 양측이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일부는 서울 한남동 소재 대통령 관저 앞에서 모여 시위를 진행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은 오전 10시부터 동십자각과 경복궁역 사이 사직로 일대에서 약 10만명이 참석한 집회를 열었으며 촛불행동도 같은 시각 한남동 관저 인근에서 2만명 규모로 탄핵 찬성 집회를 이끌었다.
자유통일당이 주도하는 탄핵 반대 측 집회는 한남동 관저 일대에서 2만7000명 규모로 개최됐으며 안국역 3·5번 출구에서도 반대 시위가 6000명 규모로 동시에 열렸다.
헌법재판소 인근은 이른 아침부터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저 마다 긴장과 기대를 안고 모인 이들은 비상행동 등이 주최한 집회 장소에 모였다.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들은 ‘윤석열 파면’, ‘내란동조 국민의힘 해체하라’, ‘내란수괴 즉각파면’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든 채 윤 대통령의 파면을 외쳤다.
그러다 오전 11시 헌법재판소의 선고 방송이 시작되자 탄핵 찬성 시위 인원은 일제히 숨을 죽인 채 화면을 응시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윤 대통령의 헌법 위반 사실을 조목조목 짚을 때마다 찬성 시위대는 환호와 박수로 반응하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오전 11시 22분경 문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을 낭독하자 안국역 일대는 일순간 환호성과 탄식이 뒤섞인 공간으로 바뀌었다.
탄핵 인용 결정에 찬성 집회 측 현장은 축제 분위기로 전환됐다. 파면 결정 직후 밴드 데이식스의 노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 등이 크게 울렸다.
시민들은 서로를 껴안으며 환호했으며 곳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한 곳에 모여 춤을 추기도 했고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돌면서 기쁨을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주권자가 승리했다”, “민주주의가 승리했다” 등의 구호가 거리 위를 가득 메웠다.
시민들은 저마다 기쁜 심경을 내비쳤다. 김모(30·여)씨는 “무려 4개월 동안 휴식도 미뤄가며 매일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해 온 시간들이 떠올라 한편으로는 마음이 복잡했다”며 “그래도 결국 파면이라는 결과가 나와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도 빠짐없이 집회에 참석해 왔다던 설모(73·남)씨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다”며 “전 국민이 힘들어했다. 몇 달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기쁨을 전했다.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석한 청년도 있었다. 공모(25·여)씨는 “너무 당연한 결과인데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 오래 걸려 좀 아쉽다”며 “그래도 탄핵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다. 기쁘다”고 밝혔다.
손피켓을 들고 집회 현장을 돌아다니던 김모(53·남)씨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이렇게까지 많은 인원이 오랜 시간 힘들게 투쟁했어야 했나라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결국 국민이 승리한 날”이라며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봤는데 옆에서 박수 쳐드리며 기쁨을 나눴다”고 답했다.
탄핵 찬성 집회 현장에서 약 400m 떨어진 곳에서는 탄핵 반대 집회가 이어졌다. 뜨거운 환호와 박수 소리가 끊임없던 찬성 집회와는 달리 반대 시위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싸늘했고 참가자들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일부는 침묵 속에 태극기를 들고 서 있었고 또 다른 이들은 말을 아낀 채 주변을 서성였다.
현장 주변에는 찬·반 양측의 충돌을 막기 위해 많은 경찰 병력이 배치돼 긴장감을 더했다.
취재진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한 시위자는 말을 아끼며 자리를 피했다. 일부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욕설을 내뱉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윤석열 대통령님’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현장을 배회하는 시민도 보였다.
긴장감은 곳곳에서 현실이 되기도 했다. 경찰 버스 유리창을 곤봉으로 파손한 한 시위자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선고 직후 불만과 분노가 더욱 거세졌고 찬반의 감정은 물리적으로도 가까운 거리에 놓인 채 팽팽히 맞섰다.
한남동에서의 탄핵 반대 집회는 오후 늦게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경찰은 해산 시점까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4월의 서울. 헌재의 선고는 대통령 한 사람의 운명을 넘어 광장의 민심을 두 갈래로 갈랐다. 어느 쪽이든 이날은 분명히 역사 속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한편 경찰은 갑호비상 발령에 따라 최고 수준의 비상 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서울 도심 곳곳에는 1만4000여명의 경찰 인력이 배치됐으며 헌법재판소 주변 반경 150m는 차벽으로 둘러싸여 일반인 출입이 제한됐다. 경찰은 돌발 상황에 대비해 전국 338개 기동대 소속 약 2만명을 동원해 만일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