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상, 놀이치료 실손보험금 소송 승소…타 보험사 영향은?

의료법상 기준에 따라 ‘민간자격자 치료’ 실손 적용 제외 판단 보험금 지급 기준 변화 주목… 업계는 “자체 기준 유지” 전망 발달지연 복지 공백 우려…"공적 제도 관련 사회적 논의 필요"

2025-04-11     김효인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이뤄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발달지연특별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만삭의 임산부도 함께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현대해상이 발달지연 아동의 놀이치료 실손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사건에서 법원이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치료가 의료법상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이로 인해 해당 사안은 일단락됐지만 발달지연 치료에 대한 제도적 공백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단독37부(부장판사 이효진)는 현대해상을 상대로 어린이보험 가입자가 제기한 ‘발달지연아동 실손보험 치료비 부지급’ 소송을 지난 9일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민간자격 치료사가 제공한 놀이치료가 의료법상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앞서 현대해상은 2023년부터 의사의 처방이 있더라도 민간자격 치료사가 제공하는 놀이치료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후 발달지연을 겪는 자녀의 치료를 위해 약 300만원 상당의 놀이치료 비용을 청구한 가입자에 대해 현대해상이 지급을 거부하면서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이번 판결은 실손보험이 보장할 수 있는 치료의 범위와, 그 기준이 되는 ‘의료행위’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짚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치료의 실효성과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치료 행위들이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기도 하다.

보험사는 부작용 예방, 소비자는 치료 제한…엇갈리는 입장

현대해상은 이번 조치가 실손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와 무자격 치료로 인한 부작용 예방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실손보험 손해율은 최근 수년간 130%를 넘나들며 업계의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실손보험이 의료법상 ‘의료행위’를 기준으로 보장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해상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다만 일부 무자격 의료행위로 인해 각 시기별 적정 치료에 대한 골든 타임을 놓치는 선의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 자격자 치료 청구 건인 540만원을 제외하고 정당하게 청구된 3700만 원의 보험금은 모두 지급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발달지연 아동을 둔 보호자들은 이번 판결로 인해 필수 치료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발달지연특별위원회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민간 자격자가 아닌, 의료법상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작업 치료사 등이 진행하는 놀이치료를 받고 싶어도 이를 진행하는 곳이 거의 없다. 대학병원은 몇 년간 예약이 다 차 있다”며 “치료는 골든타임이 있고, 의사는 아동의 정서 안정과 사회성 향상 등 실질적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치료가 보험 보장 대상에서 제외될 경우, 가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이번 판결로 다른 보험사들도 보험금 지급 기준을 줄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업계는 다소 다른 분위기다. 대다수 보험사들은 현대해상과 달리 판결을 내부 정책으로 바로 반영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현대해상은 어린이보험 시장에서 7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점유율을 비슷하게 나눠 가진 타 보험사들과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며 “이런 가운데 현대해상의 결정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소비자 반발과 브랜드 이미지 타격, 고객 이탈 등의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도 “현대해상이 승소한 것과는 별개로 자사는 기존 기준을 유지할 예정”이라며 “각사 내부 기준에 따라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의료행위’ 정의를 둘러싼 제도 공백…사기업 말고 정부 역할은?

놀이치료는 현재 민간자격을 보유한 상담사들이 주로 제공하고 있으며, 정부의 공식적 의료 자격이나 제도 내 편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실손보험뿐 아니라 건강보험 등 공적 보장 체계에서도 실질적으로 제외돼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제도 밖에서 이뤄지는 치료가 늘어나는 반면,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되면서 사회적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 이번 소송에서 다시 확인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놀이치료와 같은 비의료적 치료 행위가 의료법상 ‘의료행위’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실제로는 치료의 일환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제도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발달지연이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 ADHD 등을 겪는 아동의 경우 다학제적 접근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민간자격 상담사나 치료사들이 일정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한 아동발달 전문가는 “의료인만이 치료를 독점해야 한다는 발상은 이미 현실과 괴리가 있다”며 “민간치료사의 자격 요건과 교육 과정, 실무 능력을 기준으로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보장 범위 안에 포함시키는 방식의 유연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발달장애 및 정신건강 치료 분야를 실손보험과 분리해 공적 의료보장체계에서 별도로 다루는 방식을 제안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의 경우 물리적·외과적 치료 중심으로 보장하고, 정서·인지 치료 분야는 별도의 공적 보장 구조 안에서 제도화하는 이원화 모델이 필요해 보인다”며 “현재 정부에서는 발달재활서비스가 운영 중이지만 소득수준 제한 등 그 실효성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손보험의 지속 가능성과 제도 밖 치료에 대한 보장을 고려해 정부가 책임 범위를 넓혀 치료 사각지대에 처한 아이들의 상황을 살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패소한 발달지연 아동의 가족이 항소를 검토 중인 만큼, 해당 결정에 따라 법적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