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닫힌 문 여니 좁은 문…고립·은둔 청년의 외침에 응답해야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고립·은둔 중인 위기 청년 54만명.
2022년 조사된 이 수치는 2023년 국무조정실과 통계청이 공개한 추정치다.
현재 정부는 고립청년을 사회활동이 현저히 줄어 취약한 상태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인적 지지체계가 부재한 청년으로, 은둔 청년을 외부외출조차 거의 없이 제한된 거주 공간에 스스로를 가둔 청년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와 정의 너머에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와 진심이 있다. 고립은둔 청년이라고 해서 모두가 방 안에 갇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시선은 이들의 치열한 하루를 결코 담아낼 수 없었다.
어떤 이는 끝없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애썼고 일부는 경제활동을 하며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기도 했다. 또 다른 이는 일상을 찾기 위해 취미, 모임 등 여러 도전에 나섰다. 자신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정신의학과를 찾을 만큼 회복이 간절한 청년도 있었다. 자신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 안에서 스스로 상처를 보듬고 조금이라도 나아가려 애쓰는 모습은 결코 멈춰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애를 써도 바깥세상은 너무 차갑고 시려 몸이 움츠러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에서는 느린 발걸음을 이해하기보다는 다그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다가가려는 손길보다 경계하는 시선이 더 많았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상하다”며 손가락질했다.
계속된 도전과 작은 용기로 일부 고립·은둔 청년들은 ‘회복’의 길을 걷고 있다. 누군가는 가족의 사랑으로, 누군가는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일주일에 한 번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함께하는 활동을 하는 것 등 남들에게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이들에게는 거대한 벽을 넘어서는 위대한 여정이었다.
이들을 만나면서 고립·은둔 청년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느꼈다. 청년들의 고립은 단순히 ‘게으름’이나 ‘성격’ 때문이 아니었다. 사회의 치열한 경쟁 구조, 실패에 대한 극심한 낙인, 다양한 삶을 인정하지 않는 냉정한 분위기 등이 청년들을 작은 방 안에 숨게 했다.
설령 청년이 용기를 내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해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먼저 달라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고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변해야 하는 것은 결국 사회가 아닐까. 정부가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청년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고립·은둔을 회복한 청년들은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가 규정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청년, 속도가 느린 청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청년들 모두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더 나아가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구조와 불안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도 구축돼야 한다.
혼자만의 깊은 우주를 탐험하다가 다시 용기를 낸 청년들은 우리 사회에 말하고 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으며 사회가 우리를 조금만 더 기다려주고 이해해 준다면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이제는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