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지털 문명의 그늘, SK 해킹 사태와 부모님의 5월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한국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에서 고객 정보에 대한 대규모 해킹이 발생했다. 점유율 40%가 넘는 SK텔레콤 고객 약 2300만명의 유심 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SK텔레콤 측은 고객들에게 유심칩을 무료 교체하고 있지만, 유심 재고 부족으로 유심을 교체하지 못하는 고객들이 속출했다. 급한대로 이용자들은 SK텔레콤에서 제공하는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하는 것으로 해킹을 막고 있지만, 가입자들이 늘어나면서 서버가 다운되는 등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특히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하면 해외 로밍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휴가철과 겹치면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 SK텔레콤 측은 임시로 해외 출국 예정인 고객들의 유심을 먼저 교체해 주었지만, 고객들은 예정 시간보다 일찍 와서 오랫동안 줄을 서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번 해킹 사건을 계기로 이동통신사업에서 엄존하는 독과점 문제, SK그룹의 역사에 대한 많은 비판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실 이러한 비판은 과거부터 있었다. 교복과 카세트테이프, 자전거를 만들던 SK그룹(옛 선경그룹)이 정치계와 결탁하고 정유사업과 이동통신사업에 뛰어들면서 받았던 많은 특혜는 늘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문제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SK 회장인 최태원의 불륜과 이혼 문제까지 언급되면서 SK텔레콤과 SK, 그리고 오너인 최태원 회장은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본 지면을 통해 필자까지 비난 행렬에 참여하고 싶진 않다. 과거에 이미 ‘이박사와이작가의이이제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해 논한 바 있다. SK텔레콤은 빨리 필자가 받은 피해를 보상하고 약관을 변경하길 바랄 뿐이다. 대신 ‘가정의달’ 5월에 이 사건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필자와 필자의 부모님 모두 SK텔레콤 장기 가입 고객이다. 그러므로 필자의 가족 역시 이번 SK텔레콤 해킹 사건으로 인해 해킹을 막기 위한 선제적 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출근 때문에 부모님 곁에서 끝까지 도와드릴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전화와 화상 통화를 통해 부모님 휴대전화의 유심보호서비스 가입을 도와드렸다. 그런데 부모님에게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유심보호 가입은 너무 어렵고 낯설었다. 1시간이 넘는 시간을 들여서 어플리케이션의 ‘홈(home)’과 ‘뒤로’ 버튼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누르라고 말씀드리는 동시에 “처음부터 다시!”라고 외친 끝에 겨우 부모님의 유심보호서비스 가입을 완료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와드리고 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로가 몰려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현재 시각, 다음 차례로 부모님의 종합소득세 신고를 도와드려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구분할 때 인간이 사용한 도구나 문명에서 주류가 되는 산업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인류가 사용한 도구를 기준으로 시대를 나누는 사례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 등이, 산업을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사례로는 농업사회, 정보화사회 등이 있다. 그렇다면 각각의 시대마다 시대의 변화와 문명의 발달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이들의 상당수는 노인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청동기나 철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거푸집을 만들고 열을 다룰 줄 알았어야 하는데, 높은 열을 낼 수 있는 연료를 구하고 고열을 견디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체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기계를 이용해서 재화를 생산하기 시작했을 때 기계에 익숙하지 않거나 청소년이나 청년들보다 새로운 문물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린 노인들은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증기기관차를 보며, 길을 가다가 갑자기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를 보며 놀라는 노인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디지털 소외계층’이라는 말이 있다. 정보기술(IT)과 디지털 기기 및 이것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주로 고령층을 비롯해 장애인, 저소득층, 농어민 등이 포함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보기술이나 디지털 기기를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넉넉한 재력이 없고, 공공의 기기들을 사용하기에 배움이 부족한 사람들이 일부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면 방식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그걸 이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반론을 할 수 있겠지만, 이들 대부분은 이동에 제약이 있다. 특히 농어민의 경우 대면으로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서 멀리 이동해야 한다. 자가용이 있는 사람은 주차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것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농어촌의 대중교통 인프라는 매우 부족하다.
올해도 변함없이 5월이 왔다. ‘가정의달’ 5월의 시작은 5월 1일 노동절부터 주말, 어린이날, 부처님오신날, 대체휴일로 이어지는 긴 연휴가 있다. 아울러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는 달이다. 최첨단 기술의 발전 속에서 맞이한 5월이다. 그리고 그 안에 난처한 상황을 겪으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 역시 가정의달 연휴에 디지털 소외계층을 챙기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