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뻔한 서사, 예상 못한 감동…‘F1: 더 무비’
【투데이신문 최두진 객원기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스포츠 영화라면 으레 등장하는 갈등과 화해,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주인공, 팀워크, 그리고 마지막 역전승까지. 서사 구조는 익숙하고, 연출의 흐름 또한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F1: 더 무비>를 다 보고 난 뒤, 어두운 극장 안에서 홀로 되뇌인 한마디 — “We did it.” — 그 짧은 문장이 깊숙이 마음을 파고든다. 뻔한 이야기라 여겼지만, 그 뻔함에 결국 무너지고 만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힘이다.
영화는 두 명의 드라이버를 축으로 전개된다.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는 한때 F1 최고의 유망주였으나 치명적인 사고로 커리어가 꺾인 인물이다. 택시 드라이버로 생계를 이어가며 여전히 속도의 갈증을 안고 살던 그에게, 과거 팀 디렉터였던 ‘루벤 세르반테스(하비에르 바르뎀)’가 다시 손을 내민다. 최하위 팀 ‘APXGP’에 합류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라는 제안이다.
이 팀에는 신예 드라이버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가 있다. 그는 재능과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자만과 허세가 섞여 있는 인물이다. 젊은 루키와 노장의 충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신뢰—클리셰 같지만 견고하다. 두 사람은 부딪치고 깨지며 다시 하나가 되고, 서로를 끌어올린다.
<F1: 더 무비>는 두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특히 브래드 피트는 능청스러움과 묵직한 열정을 품은 노장 드라이버의 얼굴로, 2시간 30분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붙잡는다. 그의 눈빛, 목소리의 떨림, 코너를 도는 손끝의 긴장감까지—모두가 ‘진짜’였다. 한때 최고였으나 지금은 잊힌 인물의 쓸쓸한 자의식과 다시 한번 달리고자 하는 욕망을 이토록 섬세하게 그려낼 배우는 드물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속도의 미학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실사 기반 촬영으로 구현된 F1 레이스 장면은 현실 그대로 빠르고 위험하다. <탑건: 매버릭> 제작진이 참여했다는 소문은 허언이 아니었다. 포뮬러1 특유의 고도의 기술과 순식간의 판단력이 요구되는 스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단순한 질주가 아니라 하나의 전쟁을 지켜본 듯한 박진감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감동은 속도도, 이야기 구조도 아니다. 바로 감정의 정직함에 있다. 루키는 노장을 통해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배우고, 노장은 루키 덕분에 아직 스스로 도전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팀은 함께 울고 웃으며 마지막 한 판의 레이스에 모든 것을 건다. 이야기는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조슈아는 소니를 다시 존경하게 되고, 두 사람은 협력해 마지막 레이스를 완주한다. 관객은 이미 이 결말을 알고 있지만, 알고도 눈물이 난다. 얼마나 간결하고 강력한 감동인가.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 소니 헤이스와 팀원들이 외치는 그 말 — “We did it.” — 나도 모르게 따라 중얼거린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와 소니, 조슈아,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관객 모두가 상영 시간 내내 하나의 팀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함께 달렸고, 함께 브레이크를 밟았으며, 함께 피니시 라인을 넘었다.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마치 레이스를 끝낸 드라이버가 헬멧을 벗고 한참 숨을 고르는 것처럼, 영화관 의자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마지막 장면에서 헤이스는 또 다른 경주를 위해 떠난다. 새로운 차도, 새로운 팀도 아니다. 그는 단지 다시 달리기 위해 사막의 레이스에 참여한다. 더 이상 승리가 목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증명할 것도 없다. 그저 자신이 달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 장면에서 ‘도전은 계속된다’는 진부한 메시지가 아니라, ‘달리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야말로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더 깊은 이야기를 보았다. 결국, <F1: 더 무비>는 “We did it”이라는 짧은 문장을 위해 모든 뻔함을 기꺼이 감수한 영화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뻔함에 다시 한번 마음을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