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방치된 믿음 ― 무속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
이성원·손영하·이서현 지음 | 204쪽│125×200│1만6800원│바다출판사
실제로 A씨는 콘텐츠 촬영 당일 있었던 일을 녹취한 파일도 함께 제공했다. 녹취록에선 A씨가 촬영 장소인 신당에 도착하자 담당 PD가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만 그냥 기억하시면 선생님(무당)이 거기에 대해서 이제 맞출 것”이라고 설명한다. 출연하는 주인공 무당 역시 대본 중 ‘A씨의 엄마는 사망했다’는 내용에 대해 “엄마가 무엇 때문에 돌아가신 걸로 하면 되느냐”라고 질문하자 PD는 “그냥 건강이 안 좋아져서 돌아가셨다고 하면 되지 않느냐”라며 “돌아가신 거는 어떻게 이유를 만들어도 상관없다”라고 말한다. A씨가 “제 나이는 몇 살로 하느냐”라고 묻자 PD는 “32살 정도로 하자. 생일 이런 것은 나가지 않는다”라고 강조한다. - 143쪽 6장 온라인을 타고 넘나드는 신령님
【투데이신문 박노아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은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그리고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에 나와 논란이 됐다. 임기 중에는 천공이라는 무속인에게 국정 조언을 받는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12.3 비상계엄 사태 때 배후 인물로 지목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최측근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직업은 무속인이었다. 한 연예 기획사 대표가 경영상 문제를 무속인과 상의한다는 소식도 한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렇듯 우리 사회와 무의식에 깊이 뿌리 내린 채 우리의 미래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무속 신앙의 실체와 그 이면을 집요하게 파헤친 도서 <방치된 믿음>이 출간됐다.
한국일보 탐사기획부 이성원·손영하·이서현 기자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은 무속 신앙의 현주소를 조명했다. 10년 치 판결문 분석과 전국 현장 취재, 수십 명의 무속인 인터뷰, 무속 범죄 통계까지 방대한 데이터와 취재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최초의 ‘무속의 사회학’이다.
이들이 파악한 무속 신앙은 단순히 전통 관습, 혹은 종교가 아닌, 특정한 삶의 형태이며 시장 경제의 산물이었다. 사람들이 무속을 믿는 이유에는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복잡한 이유가 숨어 있다. 우리가 기댈 곳이 없다는 것. 날이 갈수록 증대되는 불확실성도 무속이 인간 심리를 파고들 수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저자들은 무속인을 직접 인터뷰해 무속인들이 무속 신앙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지, 도대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는지 끌어낸다. 2018년 문체부가 발간한 <한국의 종교 현황> 보고서에도 무속 관련 내용은 전무하다. 왜 유독 무속만 방치돼 왔는지,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저자들은 질문하며 믿음을 길들이는 방안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