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이정표②] “왜 몇백이나 들어?”…‘발달지연 치료비’ 미스터리
발달지연 진단은 끝이 아니라 시작…치료 계획 ‘부모의 몫’ 한국 서진이 치료비 240만원 vs 호주 사는 샬럿은 13만원 공공 인프라는 사실상 전무…“정부 지원은 ‘할인쿠폰’ 수준” 사는 곳 따라 치료 기회 달라지는 ‘국가가 만든 격차’ 심각 “미흡한 공공지원과 뒤틀린 치료시장, 공공 지원 논의돼야”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질병분류(ICD-10)는 ‘발달지연’을 R620 코드, 즉 ‘Delayed milestones in childhood’로 분류한다. 말 그대로 아이의 발달 이정표가 또래보다 늦게 나타난다는 의미다. 발달지연은 더 이상 소수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지만, 사회는 그 ‘느린 속도’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단과 치료 개입은 빠를수록 좋지만, 이를 뒷받침할 공적 시스템은 느리고 복잡하며,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마지막 희망이던 민간 보험 역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절박함을 악용하는 구조다. 난립하는 발달센터부터 보험사기에 이르기까지, 제도의 빈틈을 노린 시장은 활발히 움직이지만, 정작 부모들은 믿고 의지할 곳을 찾기 어렵다. 일부는 ‘사적 해결’을 선택하고, 어떤 이는 포기한다. 그 사이 아이 치료의 ‘골든타임’은 사라진다.
본보는 발달지연을 겪는 다섯 가족의 사례를 중심으로, 진단과 치료 접근의 어려움부터 비용 부담, 정보 비대칭, 공적 지원의 한계, 민간 치료 시장의 그늘, 그리고 제도 밖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가족들의 현실을 추적했다. 이들의 여정은 단순한 개인의 고통을 넘어, 우리 사회가 발달 문제를 어떻게 방관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2025년 여름, 경기도의 한 아파트. 2년 전 발달지연 진단을 받은 서진이(5세)를 키우는 김지훈·김나영(가명) 부부는 매달 240만원이 넘는 아이 치료비 청구서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언어치료, 행동치료, 감각통합치료. 이 중 하나만 해도 비용이 적지 않지만, 아이가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멈출 수 없이 모든 것이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치료비가 비싸다는 데 있지 않다. 진단까지 험난한 여정, 진단 이후의 지원 공백, 치료비를 둘러싼 보험 시스템과 민간 중심의 시장 그리고 지역 인프라의 불균형까지 환자와 그 가족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구조에 있다.
“왜 수백만 원이 드는가”라는 질문은 공공이 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비용 부담과 실행 책임은 민간과 가족에게 전가하는 시스템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책임과 비용의 불균형은 조기개입의 효과를 저해하고, 결국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병원은 진단으로 끝…월급 집어 삼키는 치료비
“진단서 받고 나면 국가에서라도 도와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었어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고, 치료비 청구서만 쌓였죠.”
서진이 엄마 김나영씨의 하루는 치료일정 체크로 시작한다. 월요일엔 언어치료, 화요일엔 감각통합, 수요일엔 병원 진료, 금요일엔 놀이치료 상담. 혹시라도 치료를 놓치면 뒤처질까봐 모든 시간과 재정을 아이에게 맞췄다. 엄마는 치료 시간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닐 수 없게 됐고, 아빠는 치료비를 더 벌어야 했다.
두 사람은 아이가 첫 진단을 받았을 때 조기개입이 중요하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그러나 서진이 부모는 조기개입이라는 건 부모의 ‘정보력·자금력·체력’ 없이는 불가능한 현실이라는 점만 뼈아프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조기개입은 국제적으로도 그 중요성이 입증돼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조기 개입이 회복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고 강조한다. 보건복지부 역시 2023년 발간한 ‘장애아동 지원 정책 개편 방향’ 보고서에서 “생후 24~48개월 사이 개입 시 언어 및 인지능력 향상이 가장 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서진이 가족처럼 정작 ‘조기’ 단계에서 체계적이고 충분한 치료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실제 한국의 조기진단 및 개입 체계는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크다. 우선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영유아 건강검진(K-DST)’은 검사 시간 자체가 짧고, 보호자의 문답에 크게 의존한다. 사실상 보호자와 의료진 간 상호작용이 제한돼 있는 셈이다.
또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K-DST에서 심화평가가 권고된 아동에 대한 사후관리 연계율은 50%를 넘지 못한다. 선별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와도 ‘어떻게 이어지는가’가 불투명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정밀평가 시기를 놓쳐 골든타임을 경과하는 사례가 빈번하며, 특히 정신적 발달 지연을 보이는 아동은 진단 지체 가능성이 더욱 높다.
대학병원에서 발달지연 진단을 받은 서진이 가족은 바로 주 5회 이상 집중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정부나 공공기관 어디에서도 치료 경로에 대한 명확한 안내를 받지 못했다.
진단 이후 서진이 부모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아동발달복지관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입소 대기만 24개월”, “3,4세는 너무 어려 안전 문제로 치료가 어려울 수 있다”는 말뿐이었다. 대학병원 부설 센터는 전화 연결조차 되지 않았고, 겨우 잡은 진료예약은 세 달 후였으며 심지어 치료 가능한 일정은 수년이 걸린다는 설명이었다.
“지원이 없거나 적다고 손 놓고 아이 상태가 나아지길 기다릴 수는 없었어요.
결국 선택지는 민간 센터뿐이었어요”
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기준 전국 보건소 229곳 중 발달지연 조기개입 서비스를 자체 운영하는 곳은 수도권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지방 대부분은 민간기관에 의존한다.
민간센터는 보험 실비 청구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고액의 진료비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 집 근처 민간 센터 세 곳을 돌아봤지만 언어·감각·놀이치료 회당 평균 12만원. 주 5회 치료로 계산하면 최소 한 달에 240만원 이상이 들었다.
이마저도 아이와 센터가 잘 맞는지 테스트 기간이 필요하고, 치료사가 갑자기 바뀌거나 센터가 문을 닫는 일도 흔했다. 치료비의 경제적 부담뿐 아니라,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 문제도 심각했다.
정부 바우처는 치료비의 10% 수준…지역 편차도 심각
보건복지부는 만 18세 미만 장애아동(또는 발달지연 진단 아동)에게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소득기준 기준은 중위소득 150% 이하 가구, 월 지원 금액은 14만~25만원 정도다.
대상 치료는 언어, 감각통합, 행동, 미술·음악 등 다양한 편이지만, 문제는 이 바우처가 실제 치료비의 10~2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실제 아동 1인당 연간 최대 지원액은 약 264만 원에 불과하다.
민준이 가족처럼 집중치료가 필요한 경우 한 달 치료비는 최소 200~250만원. 바우처 25만원은 회당 1~2회 치료 비용에 불과하다. 그나마 맞벌이 가정은 소득기준을 초과해 혜택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바우처 대상기관에 등록된 센터도 적고, 치료사의 자격이나 질도 천차만별이다.
“바우처는 정부의 지원이라기 보다 ‘조건부 할인쿠폰’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센터들은 이걸 눈먼 돈이라고 생각하는지 치료비를 그만큼 올렸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부모에게는 체감 혜택이 없었습니다”
수도권에 사는 서진이 가족은 그나마 다양한 민간 센터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방은 상황이 다르다. 전북, 강원, 전남 등 일부 지역은 치료 가능 센터가 몇 개 안 되고, 3세 미만 아동 치료를 받기 어려운 곳도 많다.
2023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엔 언어·감각·행동치료가 가능한 센터가 약 1600개소에 달하지만 전북은 94개소, 강원·전남 등은 한 자릿수 수준에 그친다. 지방일수록 진단을 받아도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수개월, 심하면 수년이 걸린다.
또한 지자체마다 바우처 지급 기관이 다르다 보니, 같은 진단을 받은 아동이 거주지에 따라 전혀 다른 지원을 받기도 한다. 서진이와 같은 시기에 진단을 받은 경북 지역에 사는 한 부모는 “우린 언어치료 받을 곳이 없어 울산까지 왕복 3시간씩 치료를 다녔다”고 말했다.
몇백씩 안 쓰고 그냥 적당히 치료하면 안 돼?
서진이 엄마가 가족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언어가 늦다면 언어치료만 하면 되지 않느냐”다. 심지어 시어머니에게서는 “남자애라 기다리면 저절로 말 할텐데 에미가 유난”이라며 “언어가 문제면 언어치료 한 가지만 해라”는 타박까지 들었다.
하지만 발달지연은 단일 영역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 소견이다. 언어지연은 감각처리 문제, 주의력 결핍, 사회성 발달 지연 등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감각통합치료는 아이가 소리, 빛, 촉각 등 외부 자극에 과잉 또는 과소반응할 때 꼭 필요하다. 감각 처리 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으면 언어발달에 직접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청각 자극에 민감한 아이는 말을 듣는 것 자체를 회피해 언어습득이 지연된다. 민준이 역시 소리에 예민해 언어치료 집중력이 떨어져 감각통합치료 병행이 필수였다.
놀이치료 또한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또래와의 상호작용 능력, 자기 표현, 감정 조절을 기르는 치료법이다. 언어치료가 ‘말하는 기술’을 훈련한다면, 놀이치료는 ‘소통 능력’과 ‘사회적 적응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둔다.
34개월 진단 당시 서진이는 언어 표현이 18개월 수준이었지만 청각 과민, 시각처리 혼란, 낮은 사회적 반응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다각적 치료가 절실하다는 소견을 들었다.
“처음에는 4~500만원까지 들여 치료에 전념했어요. 시간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가정 월 소득이 넘는 돈을 투자해서라도 치료했는데 한계가 오더라고요.
결국 비용을 줄여 200만원대로 치료하고 있는데, 강남에 사는 지인은 월 1000만원씩도 쓰며 치료하는 모습에 부모가 죄인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같은 진단, 다른 운명…국가가 만든 격차
서진이와 똑같은 3세 나이에 발달지연 진단을 받은 미국의 에밀리, 호주의 샬럿, 일본의 유키, 독일의 한스, 프랑스의 피에르, 스웨덴의 엘, 네덜란드의 얀. 가상의 가족 사례를 통해 아이들의 치료비 청구서를 비교해 봤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에밀리는 주정부 조기개입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치료를 무료로 받는다. 치료사가 집으로 찾아오고, 부모는 경제적 걱정 없이 아이의 발달에만 집중한다.
호주 시드니의 샬럿은 연간 3100만 원 상당의 치료비를 국가장애보험제도(NDIS)로 지원받는다. 본인부담은 월 13만원 수준이다. 일본 도쿄의 유키도 지자체가 치료비의 90%를 지원한다. 일반 소득 가정의 월 상한액은 33만원이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모두 국가 건강보험 또는 사회보장제도로 치료비 대부분을 지원한다.
반면, 한국의 서진이 가족은 부모가 월 240만원의 치료비를 감당하며, 보험금 지급 거부와 복지관 대기, 민간센터의 고비용 구조에 시달리게 된다.
같은 진단, 같은 나이. 그러나 국가에 따라 아이와 가족의 삶은 극명하게 갈린다. 한국의 발달지연 아동 치료비 부담이 ‘국가가 만든 격차’로 귀결되는 현실은, 단순한 복지정책의 차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국가가 어떤 원칙과 책임의식을 갖고 조기개입과 치료비 지원 체계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같은 진단을 받은 아이와 가족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해외 주요국들은 발달지연 아동의 치료비를 ‘사회적 비용’이자 국가의 책임으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주정부 주도의 공적 보장제도로 조기개입 치료비 대부분을 지원하고, 호주는 국가장애인보험제도(NDIS)로 연간 수천만원 상당의 맞춤형 치료비를 개인예산 형태로 제공한다. 일본은 지자체 복지예산을 활용해 의료와 양육이 결합된 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민영보험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와 달리 한국은 공적 지원의 공백 속에 민간 실손보험이 치료비를 전담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건강보험은 진단·상담 비용만 일부 지원할 뿐, 실제 치료비는 급여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바우처 지원금 역시 월 17~25만원에 불과해 회당 10만원이 훌쩍 넘는 치료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치료비 부담은 고스란히 가계로 전가된다. 이런 제도적 차이는 치료 접근성, 치료 지속성, 가정의 경제적 안정성, 아이의 미래까지 좌우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은영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출생아 수가 줄고 있음에도 발달지연 치료비 관련 실손보험 손해액은 최근 5년간 약 10배로 증가했다”며 “조기개입이 필요한 아동들의 치료를 사회적 비용으로 간주하고, 공적 보장제도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치료사 자격 요건과 치료센터 운영 투명성을 강화하고, 조기개입 치료를 국가적 책임으로 간주하는 장기적 제도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은희 대한소아·청소년 행동발달증진학회 보험이사 역시 “나라에서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몇 년 동안이라도 치료받을 수 있는 급여 체제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발달지연 치료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공동의 숙제이자 의무”라며 “정부는 발달지연 치료비를 급여화하고, 각종 지원을 위한 공공의료체계 정비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서진이 가족의 발달지연 치료 2년, 현실은?
서진이 가족은 대학병원 진단 이후 바로 민간센터 치료를 시작했으며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놀이치료 등을 병행하며 주 5회, 월 20회 이상 진행 중이다. 총 치료비는 월평균 240만원이며 공공지원은 월 25만원 내외 바우처를 지급받는다. 이는 총 치료비의 약 10%에 해당한다. 실손보험은 지난해부터 민간자격 치료사 치료비 보장 중단 등으로 실질적으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2년이 지난 현재, 치료비 부담으로 서진이 부모는 전세를 포기하고 월세로 이사했으며, 어머니는 시간제 직장에 다니며 중고거래 앱으로 아이 용품을 팔아 생활비를 충당한다. 아버지는 대리운전을 하며 추가 수입을 올려서 버틴다.
“남편은 주말마다 대리운전, 저는 오전 알바하고 오후엔 아이 치료 데리고 다녀요. 헉 소리 나는 치료비 때문에 전세는 진작 포기하고 월세로 옮겼고요.
저희는 정말, 다 내려놨어요. 아이 문제 아니었다면 이렇게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서진이 가족 사례는 단편적인 문제가 아니다. 발달지연 아동과 가족이 겪는 고통은 치료비 부담, 공공 인프라 미비, 보험제도 한계, 민간시장 난립 등 복합적 구조 문제에 기인한다.
공공 복지관은 인력 부족과 낮은 임금으로 붕괴 위기, 대기 기간은 1년 이상 기본이며 민간 치료센터는 치료사 부족과 비싼 치료비, 자격 검증 어려움으로 신뢰성 문제가 있다. 실손보험은 최근 민간 자격 치료사 치료비 보장 중단, 보험금 분쟁 급증과 함께 불법 치료센터와 사무장 병원 증가, 불법 브로커 문제도 심각하다.
이 모든 문제들은 ‘진단서 이후 받는 청구서’로 상징되는 기형적인 현실을 만든다. 다음 편에서는 실손보험 지급 거절과 민간 치료비 폭등, 복지관 붕괴, 불법센터 유입 등 구조적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