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청년이 왔다⑨] “청년의 삶 고민하는 사회대개혁 만들어야”
[인터뷰]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비상계엄 이후, ‘알 수 없는 세대’ 출현해 2030세대의 젠더갈등, 전 세계적 추세 ‘극우화’ 넘어 어떤 가치 중시하나 짚어야 개혁신당 합류…반성·성찰의 시간 필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청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응원봉과 남태령은 변화의 상징이 됐다. 반대편에서도 청년 보수가 부상하고 있다. 청년은 미래의 주역이 아닌 현재를 이끄는 중심이다. 이 흐름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일시적인 반짝 이벤트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386세대 이후 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오고 있는 미래가 아닌 시작점에 도착한 미래라는 뜻으로 이 기획의 제목을 ‘청년이 왔다’로 삼은 이유다. 수면에 던진 돌이 넓은 원 모양의 파동을 일으키듯 지금의 기록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빛날 것이라 기대한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양당정치에 갇힌 한국 민주주의가 외면한 이들은 바로 공과금과 집세를 책상에 고이 놓아두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세 모녀이고, 쌀과 김치가 있으면 부탁한다는 쪽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젊은 작가이며, 수십 번의 취업 실패에 절망하며 외롭게 고시원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청년이다. 닫혀버린 한국 민주주의는 이들을 조용히 추방했다. 그들은 우리가 대변하고 함께 지켜야 했던 동료시민이었다. 2세대 진보정치가 이들을 대변하지 않는다면 이 비극적인 현실은 다음 세대의 거의 전부가 맞이할 미래다.”
2015년 6월, 37세의 정치신인이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도전장을 던졌다. 비록 국회의원 5석의 원내 미니정당에서 열린 당직선거였지만 진보정치의 스타 정치인인 심상정, 노회찬이 동시에 출격한 선거였다. 그러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두려움 없이 광장 밖으로 과감히 나아가자”고 외친 조성주 후보에게 돌아갔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기대를 모았던 ‘2세대 진보정치’는 수많은 정치 구호 중 하나로 사라졌고 이를 주창하던 정치 신인은 쓰디쓴 실패를 맛봐야 했다.
하지만 그가 던진 메시지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생생히 와닿는다. 최근 잇따라 어린 자매들이 아파트 화재로 숨지는 비극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도 결국 ‘닫혀버린 한국 민주주의’에 있는 것 아닌가. 1990년에 나온 정태춘·박은옥의 ‘우리들의 죽음’에 나오는 가사가 2025년에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우리는 35년 동안 어떤 사회를 만들어 온 것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청년이 왔다’ 시리즈의 마지막 인터뷰로 굳이 현재 청년이 아닌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 또한, 지금의 청년세대가 가진 에너지로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 정해진 답이 없지만 모두가 고민해 볼 질문이다.
Q. 비상계엄 선포부터 이번 대통령선거까지 6개월이 걸렸다. 그 6개월 동안 청년에 관한 관심이 매우 높았는데 어떤 점에 주목했는가.
‘알 수 없는 세대’가 출현했다. 10여년 전의 청년 운동이나 청년 정치를 떠올려 보면 한 세대를 묶어 어떤 특정한 경향이 있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다양성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한 세대를 묶어서 해석할 수 있는 공통성이 있었다.
그런데 비상계엄 사태 이후 드러난 청년세대의 모습은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성이 있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해석을 하기 어려운 세대가 등장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더 관심 있게 이 세대를 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비상계엄 사태로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깃발을 들고나오는데 기존 집회에서 깃발은 집단성의 상징이다. 그런데 2030세대가 손에 쥔 깃발은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 내지는 관심사들이 깃발을 상징하고 있다. 지금의 청년들은 같은 공간에 모이더라도 그 안에서 개인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각자 다르며, 집단성보다 개인의 우선순위를 앞세우는 특징이 나타난다.
Q. 이러한 2030세대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하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수용도의 차이라고 본다. 지금 청년남성들은 극우화됐다고 보고 청년여성들은 진보적이다라고 분석하지만 그렇게 볼 사안이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어떤 후보에게 투표를 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기성세대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수용도가 매우 높다. 다만 성별로, 그리고 계층별로 민주주의 안에도 여러 가치가 있는데 그 가치 중에서 어떤 가치를 중시하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2030세대에게 민주주의는 쟁취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던 개념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를 공격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서는 수용하지 못한다. 계엄사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4일에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나간 적이 있다. 그런데 고등학생들은 계엄에 겁을 먹거나 국가에 위기가 닥쳤다고 느끼기보다는, 황당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불가능하고 안될 일을 했다고 보는 것 같았다. 기성세대가 느끼는 감각과 달랐다.
Q. 이번 대선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청년들 사이에서 적잖은 표를 받았는데 어떻게 해석하는가.
20여년 전에는 청년들이 기성세대보다 상대적으로 개혁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기성세대와 비교해 더 진보적이지도 않고 덜 극단적이지도 않다. 반대로 얘기하면 무조건 보수적이고 또는 극우적이다라고 보기도 어렵고 혼재돼 있다.
세계적 추세를 보더라도 청년세대가 극단주의에 친화적이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SNS와 온라인이 일상일수록 극단주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노년 세대들이 퇴직을 하며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면서 유튜브와 SNS가 확산됐다. 그런데 청년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쥔 세대이며 이들에게 이 공간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그래서 더 극단주의에 취약하다.
한국에서는 일부 남성 청년층에서 극단화된 그룹이 만들어져 서부지법 폭력사태 같은 사건도 발생했다. 여기에는 SNS와 온라인의 문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소통 수단이 가치관을 잡아먹은 것이다. 청년세대에게는 SNS란 대화하는 언어와 비슷한 것이다. 온라인 안에서 돌아다니는 생각들이 도서관에 쌓여있는 지식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Q. 2030세대의 성별간 정치성향 차이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치권의 갈라치기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겠나.
예전에는 간과했던 측면인데 기술 변화와 경제 조건의 변화가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젠더별로 정치 성향의 차이를 보이고 충돌이 격화되는 현상은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미국의 한 친구는 ‘한국은 아직 멀었다. 양호한 수준’이라고 말하더라.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같은 세대 안에서 남녀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한다.
지금 청년세대는 한정된 고소득의 안정된 일자리를 놓고 젠더 간 경쟁이 강력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활동적인 성향일수록 이런 일자리를 차지했다면 지금은 누가 의자에 오래 앉아서 집중할 수 있는가를 본다. 그 부분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남성의 신체 능력이 우대받는 조건이 많았지만 디지털화가 이뤄진 영역의 일자리에서는 여성의 능력이 더 우위에 서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이 과거와 달리 치고 올라오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여기서 20대 남성 청년들이 가지는 열패감이 있고 여성차별에 대해 자신이 일자리 경쟁에서 우위에 있지 않다 보니 차별이 없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회가 여전히 여성에 불리한 사회라는 점을 체감하게 된다. 그래서 30대가 되면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20대에는 체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30대에도 이런 성향이 나타나는 이유는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연령대가 점차 늦어졌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에는 한국 사회 내에 성별에 관한 낡은 고정관념이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성 청년들의 생각이 달라졌는데 사회구조는 따라오지 못한 채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회 곳곳에 잔존하다 보니 더 강력하게 젠더 이슈에 반응하고 있다. 그러니 격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이 젠더 갈등에 편승했다. 정치인의 본질은 갈등을 조율하는 것이지만, 세계적으로는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오히려 키우는 정치인들이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이 젠더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는 셈이다.
또, 위험한 분석은 이번 대선 투표 성향을 보면서 2030 남성들이 보수화됐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수여서 투표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의제에서는 2030 남성들이 여성보다 더 진보적일 수도 있다. 다만 지금 지향하는 자신의 가치가 동 세대의 여성과 다른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2030 남성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경쟁의 공정성일 수 있다. 어떤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우회하는 현상이라 여겨지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무조건 극우라고 규정할 게 아니라 그들이 어떤 지점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이와 같은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Q. 진보와 보수 모두 청년이 가진 힘에 주목했지만 정작 이번 대선에서는 청년 의제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는데.
이번 대선에서 청년 의제가 주목받지 못하고 실종된 점에 대해서는 이른바 청년 정치인을 자임하거나 청년 어젠다를 실천해왔다라고 자임하는 청년 단체들이 반성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본다. 청년 의제를 부각하지 못한 점은 청년을 대표해 왔다고 자임하는 사람들이 반성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정치인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다. 청년 의제를 제기하기는커녕 가장 나쁜 방식의 정치를 보여줬다. 만약 이 후보가 한국 사회의 미래인 젊은 세대를 향한 어젠다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했다면 결과가 조금은 달랐을 수도 있다.
결국,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의 정치는 사실 청년과 관계가 없었던 게 아닌가 한다. 자신에게 표를 주는 사람들은 청년이지만 청년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 속한 젊은 정치인들도 청년 의제를 부각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Q. 20대와 30대를 청년활동가 및 정치인으로 활약한 장본인으로서 ‘세대론이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
청년이었던 당시에도 똑같이 말했다. 세대가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세대가 구조적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조적 원인은 노동의 문제, 경제의 문제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세대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가 왜 세대를 경계로 나타나는지 해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와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전 세계적으로 세대를 경계로 똑같은 현장이 나타나는데 왜 그런가를 고민해야 한다.
즉, 세대론이 틀렸다거나 없다고 얘기할 것이 아니라 왜 노동시장의 불평등 문제가 세대를 경계로 나타나는가 또는 젠더를 경계로 나타나는가를 봐야 한다.
그런데 특정 세대에게 정의로움이나 정당성을 부여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젊은 세대가 더 정의롭거나 정당하거나 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젊은 세대에서 극단적 흐름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결국, 이 역시 구조적 불평등 문제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제 세대론은 낡았다. 세대의 문제를 넘어서고 있다. 기술의 변화, 경제의 변화, 노동시장의 변화가 어떤 인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더 차이가 벌어져 ‘종’이 달라진 것 아닌가 싶고 그래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려운 것 같다.
Q. 새 정부에게 ‘사회대개혁 실현’이 과제로 남았는데 청년세대에게 의미 있는 사회대개혁이 되려면 어떤 과제가 실현돼야 한다고 보는가.
시민사회에서 얘기하는 사회대개혁이 어떤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개혁과제와 세부과제가 만들어졌지만 이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가 어떤 사회를 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회란 ‘무형의 무엇’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 레고 블록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하지 않은가. 사람이 살아간다는 의미는 어떤 가치를 갖고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마치 무형의 레고 블록에서 무엇을 빼고 무엇을 집어넣는 식으로 조립하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철학의 문제라고 본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사회가 경쟁하는 이기적인 인간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합리적인 사고와 능력을 갖춰 다른 사람들의 위에 올라서는 삶을 지향한다.
우리가 사회를 개혁하면 어떤 사람을 만들어내야 하는가. 지금의 사회대개혁 논의에서는 보다 관용적이고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정한 사람을 만들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면이 보이지 않는다.
청년세대로 얘기를 돌아와서 우리는 청년세대가 어떤 사람이 되어서 사회를 살아가게 만들고 싶은가. 혹은 청년들 스스로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며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면 이룰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청년들이 주변에 관심 없고 능력주의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사회에서 배제돼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사회가 복지국가로 갈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정치가 어떤 사회의 개혁을 고민한다면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어떤 삶이 좋은 삶이라고 얘기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만약 우리가 관용적이고 주위에 다정한 삶이 좋은 삶이라고 인식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면 그런 삶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동시간도 줄이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공간도 더 많아져야 하고 일과 돈에 쫓기지 않도록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구성하는 것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진짜 사회대개혁이 아닐까 싶다.
Q. 지난해 총선에서 개혁신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게 마지막 정치 활동으로 알고 있다. 개혁신당 합류와 그 이후의 과정을 복기한다면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반성이 먼저다. 총선 이후 1년 넘게 특별한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도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내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넘어 나와 나를 비롯해 함께했던 사람들이 어떤 잘못된 생각을 했길래 그런 길을 선택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관이 잘못됐거나 너무 자만해서 결국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된 것 아닌지 이 지점에 대한 성찰의 고민을 하고 있다.
당시에는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진영정치를 넘어서 책임 정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결국 정치는 선거를 거쳐 진행하다 보니 이준석의 개혁신당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 버렸다. 진영정치를 넘어서고자 했던 고민은 실종되고 선거에 다 흡수돼 버리면서 진영정치를 넘어서려 했던 정책이나 어젠다가 다 실종돼 버렸다.
나중에 판단해보니 진영정치를 넘기 위해서는 어떤 정치관을 갖고 있는지를 서로 합의해야 하는데 그 점을 합의한 적이 없다. 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다. 미래의 어젠다를 중심으로 결합해야 했는데 결국 인물론에 매몰돼 버렸다.
또, 이준석 의원이 한국 사회의 극단주의적 흐름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간과했다. 이 의원에게 합리성이 있다고 봤는데 극단주의를 강화하는 위험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Q. 근황과 향후 준비하는 계획이 있다면 알려달라.
세미나도 하고 노동발전소를 통해 기존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던 노동 정책들이 여전히 진보적인지도 살펴보면서 새로운 노동 정책이나 담론은 없을까 문제의식을 정리하고 있다. 또, 정치발전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책 소개 함께 정치를 콘텐츠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소개하고 있다.
우선 더 공부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고민하는데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시대’인 것 같다. 민주주의의 원리가 민주주의를 거꾸로 공격하는 시대라고 본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생각을 중요시하는데 또 한편으로 다양성과 관용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다양성과 관용이 공격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서로 자신의 목소리가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갈등의 시대가 됐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여전히 중요한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