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생명 위협받는 노동자들…노동부, ‘20분 의무 휴식’ 재추진
올해 역대급 폭염에 노동자 온열질환 증가세 사망 사례도…노동부, 산안규칙 재심사 요청 규개위서 심사할지는 미지수…노동계는 ‘촉구’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고용노동부가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 권고로 중단됐던 ‘33도 이상 폭염 시 2시간 이내 20분 휴식 의무화’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으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상황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9일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지난 7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에 포함된 ‘33도 이상 폭염 시 2시간 이내 20분 휴식 의무화’에 대해 규개위의 재검토 권고를 수용하지 않고 재심사를 요청하는 입장을 제출했다.
당초 지난해 9월 개정된 산업안전법에 발맞춰 ‘20분 이상 휴식 의무화’는 지난 6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규개위가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 심의에서 해당 내용이 근로자 건강장해 예방에 실질적인 효과가 불확실한 것은 물론 획일적인 규제가 중소·영세 사업장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철회를 권고했다.
해당 법령은 33도 이상 폭염에서 해당 규정을 위반할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처벌 받을 수 있는 ‘형사처벌형 규제’이기 때문에 모든 사업장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규개위의 설명이다. 이처럼 해당 법령은 규개위의 규제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탓에 해당 법령은 시행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규칙 개정은 무산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역대급 폭염이 찾아오면서 온열질환자가 늘자 노동부가 규개위에 재심사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청이 전날 발표한 온열질환 감시체계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7일 하루 동안 전국 약 500개 응급실에서 접수된 온열질환자는 총 98명이었다. 지난 5월 15일부터 누적된 온열질환자는 총 977명에 달했다. 지난해 감시 시작일인 5월 20일부터의 수치 기준으로는 96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78명)에 비해 2배 증가했다.
특히 올해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총 7명으로, 이 또한 지난해 같은 기간(3명)과 비교해 2배 이상 많다. 직업은 단순 노무 종사자가 21.2%로 가장 많으며 발생 장소로는 작업장(25.9%), 논밭(16.3%), 길가(13.4%) 등이었다.
아직 통계에 잡히진 않았지만 지난 7일 경북 구미 소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베트남 국적 20대 하청 노동자가 숨지는 등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사건 당일 구미의 낮 최고기온은 37.2도로 폭염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당시 그의 체온은 40.2도였다.
이를 두고 노동계는 “정부와 사측이 더위에 노동자를 방치했다”며 분노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베트남 출신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전날 성명을 내고 “더위도 재해이며 예방할 수 있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현장은 여전히 방치돼 있다”며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정부와 사업주의 안일한 태도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만약 법적인 강제 조항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해당 노동자들은 2시간 20분마다 휴식을 취하고 작업 시간대가 조정되며 이동식 냉방기 설치와 같은 최소한의 안전 조치를 보장받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규개위와 노동부의 무책임한 행정은 결국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들은 노동부를 향해 ‘2시간 작업 후 20분 휴식’을 포함한 폭염 대응 규칙 개정을 즉각 추진할 것에 이어 △사업주의 책임 명확화 △혹서기 작업중지 의무화 △이동식 냉방기 설치 △충분한 휴식시간 보장 등의 법제화를 요구했다. 규개위를 향해서는 산업안전보건 규제 완화 권고를 즉시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다만 노동부가 재심사를 요청했더라도 규개위가 이를 다시 심의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동일한 안건이 규제심사에서 세 차례 다뤄진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위협하는 폭염은 계속될 전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당분간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 체감온도가 35도 내외로 무더운 날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8일 서울 낮기온은 37.1도까지 올랐는데, 이는 1907년 10월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7월 상순 기준 가장 높은 온도로 기록됐다.
이 같은 예보에 정부는 폭염 관련한 대책을 내놨다. 먼저 노동부는 혹서기에 대비해 산업현장에 기존 200억원 예산을 모두 지출해 온열질환 예방장비와 물품을 지원하고 추가로 제2차 추경예산 150억원을 편성해 장비·시설개선이 필요한 50인 미만 사업장에 이동식 에어컨, 제빙기, 산업용 선풍기 등을 이달 말까지 신속하게 추가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행정안전부는 앞으로 매주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분야별 폭염 대처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