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이정표③] 치료는 민간, 비용은 보험에 전가된 발달지연 현실

실손보험 끊기면 치료도 멈추는 뒤틀린 구조 공공센터는 부족하고 대기 길며 민간은 비싸 치료비는 급등하는데 정부 지원은 ‘비현실적’ F코드·민간자격 문제로 보험 지급도 ‘불안정’ 민간보험 한계…공공 시스템 구축 목소리↑

2025-07-10     김효인 기자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질병분류(ICD-10)는 ‘발달지연’을 R620 코드, 즉 ‘Delayed milestones in childhood’로 분류한다. 말 그대로 아이의 발달 이정표가 또래보다 늦게 나타난다는 의미다. 발달지연은 더 이상 소수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지만, 사회는 그 ‘느린 속도’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단과 치료 개입은 빠를수록 좋지만, 이를 뒷받침할 공적 시스템은 느리고 복잡하며,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마지막 희망이던 민간 보험 역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절박함을 악용하는 구조다. 난립하는 발달센터부터 보험사기에 이르기까지, 제도의 빈틈을 노린 시장은 활발히 움직이지만, 정작 부모들은 믿고 의지할 곳을 찾기 어렵다. 일부는 ‘사적 해결’을 선택하고, 어떤 이는 포기한다. 그 사이 아이 치료의 ‘골든타임’은 사라진다.

본보는 발달지연을 겪는 다섯 가족의 사례를 중심으로, 진단과 치료 접근의 어려움부터 비용 부담, 정보 비대칭, 공적 지원의 한계, 민간 치료 시장의 그늘, 그리고 제도 밖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가족들의 현실을 추적했다. 이들의 여정은 단순한 개인의 고통을 넘어, 우리 사회가 발달 문제를 어떻게 방관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발달지연 치료를 받는 아이의 모습ⓒ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그날 이후 아이의 시간이 멈췄어요. 아니, 되려 뒤로 갔죠”

9살 윤수는 4살 무렵 발달지연 진단을 받고 언어재활과 감각통합치료, 놀이치료를 병행해왔다. 치료는 어려웠지만 효과는 있었다. 아이는 느리지만 분명히 걷고 있었다. 

그러나 7살이 되던 해, 보험사로부터 의료자문 통보를 받았다. 이를 거절하자 보험금이 끊겼고, 치료는 중단됐다. 한 달 수백만 원의 치료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가정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치료 중단의 결과는 참담했다. 

1년 후 재검사 결과, 당초 1년 정도의 발달지연이었던 윤수는 2년 이상의 지연으로 더 후퇴해 있었다. 윤수 엄마는 “치료를 멈춘 사이 아이가 말을 거의 하지 않고, 또래와의 상호작용도 줄었다”며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전문가의 개입 없이는 한계가 명확했다”고 절망감을 드러냈다.

이 사례는 윤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발달지연 치료 시스템이 공공책임 없이 민간시장에 전가된 구조 속에서, 경제력과 보험 가입 여부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고 있다.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국가적 개입 부재는 아동의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력과 보험에 달린 치료 ‘생명줄’

한국에서 발달지연 아동의 치료는 대부분 민간 치료기관에서 이뤄진다. 공공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다. 문제는 민간 치료의 비용이 지나치게 높고, 이를 보조할 마땅한 공공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놀이·심리치료 등의 1회 치료비는 최소 8만원에서 20만원에 이르며, 주 2~3회 다중 치료를 받으면 한 달 치료비가 20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치솟는다. 이는 평균 가계소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는 월 17만원에서 25만원에 불과해 전체 치료비의 10%도 채우지 못한다. 건강보험은 진단과 상담 일부만 지원하며, 실제 치료비는 대부분 가정이 전액 부담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실손보험은 치료 접근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이로 인해 많은 가정이 실손의료보험을 치료비 보조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보험금은 예측 가능성이 낮고, 갱신 탈락이나 면책 사유로 인해 언제든지 끊길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실손보험 없이는 치료를 시작할 수도 없고, 지속하기도 어렵다는 말이 반복된다.

“보험이 끊기면 끝이에요. 치료를 포기해야 하죠. 공공센터는 대기만 수개월이고, 민간 치료는 너무 비싸요. 실손보험이 사실상 생명줄입니다”

[자료=보건복지부 통계]

‘실손보험’이 만든 역설…치료비 오르고, 아이는 밀려났다

실손보험이 없던 시절, 발달지연 치료는 일부 공공기관과 제한된 민간센터에서만 가능했다. 치료에 어려움이 없던 때였다. 그러나 보험금 청구가 가능해지면서 민간센터 수가 급증했고, 치료 단가 역시 가파르게 상승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민간센터는 보험 적용을 전제로 고비용 구조를 정착했으며 병·의원 부설 센터에서 단가 인상 및 마케팅을 강화했다”며 “이로 인한 치료사 인건비 상승은 치료비 연쇄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이 애초에 없거나 끊기는 경우 자부담이 아니라면 사실상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2년간 민간 발달재활서비스 단가는 18.5%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치료비 상승은 다시 보험금 지급 확대를 불러왔고, 보험사는 손해율 증가를 이유로 심사 기준을 강화하게 됐다.

공공센터는 치료사 확보가 어려워졌고, 대기 기간은 더욱 길어졌다. 치료사들이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병의원 부설 센터로 이동한 탓이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치료기관 10곳 중 9곳 민간…“공공 역할 ‘미흡’”

2025년 6월 기준, 전국 발달재활서비스 제공기관은 2304개소다. 이 가운데 공공기관은 201곳(8.7%), 민간기관은  2103곳(91.3%)으로, 민간 의존도가 압도적이다.

공공센터는 전국에 201개에 불과하고, 대기 기간은 평균 200일, 길게는 900일(2년 5개월) 이상이다. 반면 민간센터는 2000개 이상으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지만, 치료비 부담이 커서 경제적 여력이 없는 가정은 접근조차 어렵다. 

지역 간 불균형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은 기관 수가 많고, 대기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지만, 지방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영유아 발달정밀검사 가능 병원 역시 서울·경기에는 100곳이 넘지만, 강원·경북·충남 등은 10곳도 되지 않는다.

이 같은 격차는 거주지에 따라 아이의 치료 기회가 좌우되는 구조적 차별을 만들어낸다. ‘같은 진단을 받은 아동’이라도 사는 지역, 경제력, 보험 여부에 따라 치료의 질과 양이 달라지는 것이다.

치료비가 급등하자 공공센터는 인력난에 시달리며 대기 기간이 더욱 길어졌다. 실손보험이 오히려 치료 시장을 왜곡하고 비용을 상승시키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공공센터 대기만 1년 넘게 걸려 포기했어요. 결국 비싼 민간센터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료=국민건강보험공단]

공공센터 역부족에 보험금 지급 거절도 ‘증가’

2025년 6월 기준, 전국 발달재활서비스 제공기관은 총 2304개(세종시 제외)이다. 이 중 공공기관은 201개(8.7%), 민간기관은 2103개(91.3%)에 달한다. 민간기관이 압도적으로 많아, 대부분 가정은 민간센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유아 발달정밀검사 의료기관 또한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만 100개가 넘지만 경북이나 강원도, 충남 등의 경우 10개도 되지 않는 등 지역 불균형이 심각하다.

2023년 기준, 발달지연 아동 대상 실손보험금 청구는 약 2만4000건이며, 지급률은 98%에 달한다. 높은 지급률에도 불구하고 지급 거절 사례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주요 거절 사유는 F코드 진단, 민간자격 치료사 이용, 과다·부당 청구 의심 등이다.

보험금 지급액의 급증은 놀라운 수준이다. 2018년 277억 원에서 2023년 1599억원으로 5.8배 증가했다. 5대 손보사 지급액도 2018년 191억 원에서 2022년 1185억 원으로 6배 이상 늘었다. 이는 발달지연 아동의 증가와 치료비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손해율 급증으로 보험사는 심사를 강화하고 지급 기준을 엄격히 하고 있다. 법적으로 보험 약관은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보험사가 영리를 추구하며 지급 거절을 단호히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약관상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들었지만, 보험사에서 돌아오는 답변은 늘 ‘약관상 면책‘이라는 말뿐이었어요”

F코드 진단과 민간자격 치료사 문제의 모순도 심각하다. F코드는 WHO ICD-10 질병분류상 정신건강 관련 코드다. 자폐, ADHD, 지적장애, 발달지연 등 모두 이 코드 아래 분류된다. 그런데 한국의 실손보험 시스템에서는 이 F코드가 붙은 순간 ‘면책 대상’이 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발달지연특별위원회는 이 점을 강하게 비판한다. 정신건강 관련 진단을 받은 아동이 오히려 치료 접근성에서 차별받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위원회 관계자는 “모든 느린 아이들은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사회구성원으로 자립하게 하는 것”이라며 “결국 아이들을 지연과 장애로 구분하는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립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민간자격 치료사 문제도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놀이치료사, 미술치료사, 음악치료사 등은 국가자격이 미비하거나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부 바우처 사업에서 민간자격 치료사를 인정하지만, 보험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아 지급 거절 사유가 된다. 이에 같은 치료사가 정부 바우처로는 인정되지만, 보험금 지급에서는 제외되는 이중 기준이 존재하게 된다. 치료사 자격 체계의 정비와 함께 보험 인정 기준의 일원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보험금 부지급 철회를 요구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발달지연특별위원회 ⓒ투데이신문

국가 책임은 어디에…불평등 조장하는 구조

공공 치료 인프라 부족과 치료사 인력난, 낮은 처우, 열악한 근무환경은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민간시장에 맡겨졌고, 치료비는 폭등했다.

이에 보조적 수단에 머물러야 할 민간보험이 현실에서는 치료 접근권을 좌우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됐다. 경제력과 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치료받을 권리가 달라지는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발달지연특별위원회는 보험사와 소송을 진행하며 “민간자격 치료사 치료비 지급 거절은 자의적 해석”이라며 정부의 책임 있는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위원회는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지 못하면 장애가 심화될 위험이 크다”며 보험금 지급 거절로 인한 치료 중단 현실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다. 보험사는 손해율 관리를 위해 심사를 더욱 촘촘하게 하고 있고,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바우처 지원 확대나 공공센터 증설 등의 대책도 속도가 느려 현장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실제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한계가 명확하다. 보험사의 영리 추구와 아동의 치료 접근권은 양립하기 어려운 만큼, 구조적 모순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공공 책임 강화와 시스템 재설계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양동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이사장은 “발달지연 치료와 관련해서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는 제한적이고, 발달재활서비스는 소득기준과 연령제한이 있는 데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공적 제도를 활용해 보장을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검토해 아동의 연령이나 장애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치료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 또한 “민간보험에 크게 의존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이라며 “국가가 직접 나서서 공공 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모든 아동이 경제적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수는 여전히 치료가 필요하지만, 보험금 지급 중단과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를 포기한 상태다. 공공센터 대기기간은 1년 이상이고, 정부 지원금은 치료비의 10%도 안 된다. 민우 엄마는 “이제 어디에 기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민우의 현실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발달지연 아동과 가족들이 경제적 부담과 제도적 한계로 인해 절망에 빠져 있다. 

박 이사장은 “조기개입이 중요한 발달지연 아동들이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장애가 심화되어 평생에 걸쳐 개인과 가족, 사회가 더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단기적 비용 절약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한다.

모든 느린 아이는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부모의 인내가 아니라 공공 시스템의 책임감이다. 윤수의 오늘이 또 다른 아이의 내일이 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는 이제 기다리는 아이들의 시간에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