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연쇄 사망…노조 “폭염 대응, 그림의 떡”

‘2시간 이내 20분 휴식’ 산안법 통과…특수고용자는 적용 안돼 대한통운‧한진 등 폭염 대책 분주 “배송 늦어도 양해 바란다”

2025-07-15     강현민 기자
서울에 있는 한 물류센터에서 배송기사들이 택배를 정리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기록적인 폭염에 택배 현장이 비상이다. 주요 택배사들이 온열질환 예방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현장 기사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대책이 있어도 우리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15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실질적 폭염 대책이 시급하다”며 정부와 기업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대책이 있어도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에게는 법 적용이 되지 않는다”며 폭염 속 야외 노동자들이 제도 밖에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최근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2시간 이내 20분 이상 휴식’을 의무화하는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는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노조 관계자는 “택배의 경우 폭염에 그대로 노출되는 취약한 노동 중 하나다” “개정안 통과는 그 자체로 반길 일이지만, 택배 노동자에게 적응이 안되면 이들에겐 그저 그림의 떡일 뿐,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온열질환 발생 속도는 이례적으로 빠르다. 5월 15일부터 7월 8일까지 1228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그중 8명이 사망했다. 하루 200명 이상 발생한 날도 있었으며, 응급실을 찾은 누적 환자 수는 역대 가장 빠르게 1000명을 돌파했다.

택배 현장에서는 실제로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노총과 전국택배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7월 초부터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3명이 연이어 숨졌다.

지난 4일에는 인천남구 도화집배점의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을 마친 뒤 자신의 차량 안에서 휴식하던 중 숨졌고, 7일에는 서울 강남 지역 집배점 택배기사가 작업 후 휴식 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이어 8일에는 경기도 연천 지역에서 근무한 택배기사가 하루 일과를 마친 뒤 귀가 도중 숨졌다.

세 사람 모두 당뇨, 고지혈증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정확한 사망 원인은 조사 중이다. 노조 “기저질환자와 고령자처럼 취약한 노동자들이 폭염에 가장 먼저 희생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록적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기업들은 기존보다 강한 보호 조치에 나서고 있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에게 자율적인 작업중지권을 부여하고, 지연 배송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기로 했다. 체감온도와 관계없이 ‘50분 근무, 10분 휴식’ 원칙을 전면 적용하고, 모든 작업장에 대형 냉방설비와 폭염 응급키트를 배치했다. 8월 14~15일은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해 전원 휴식을 보장할 계획이다.

한진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달 초 조현민 사장과 노삼석 대표가 대전메가허브를 직접 방문해 냉방설비를 점검했다. 약 100억원을 들여 냉방기와 공조 시스템을 확충했으며, 기온이 33도를 넘으면 작업시간을 단축하고 얼음 생수를 지급하고 있다.

한진 관계자는 “전국적 폭염으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 배송이 일시 지연될 수 있는 점 너른 양해를 부탁드린다”면서 “택배기사 및 관련 종사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고객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