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에서 시작된 사랑과 성찰의 경계에서
옻에서 시작된 사랑과 성찰의 경계에서
ERROR: LOVE NOT FOUND
“나와 현대인을 대변한 로봇 캐릭터 도라Dora.
그것은 사람들을 모방하며 사랑을 탐구하는 여정을 떠난다.”
“로봇 ‘도라’ 아시나요?” 스윙재즈가 흐른다. 도라 작가의 공간에는 은은한 향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전통과 현대, 감정과 기계, 반복과 차이라는 이질적인 개념들 간의 경계에서 하나의 서사가 도라 작가의 작업으로 피어난다. 도라 작가는 옻칠의 깊이와 실크스크린의 반복성을 매개로, 사랑의 다층적인 의미와 내면적 성숙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옻칠의 깊고 느린 공정부터, 자개, 토분, 그리고 실크스크린이라는 반복 가능한 인쇄 방식과 충돌시켜, 재료 간의 긴장을 유희처럼 풀어낸다.
옻 부터 자개, 토분 그리고 실크스크린까지 전통과 복제의 공존
도라 작가는 ‘사랑’이라는 불안정한 감정으로 시각화 된다. 이질적인 층위를 덧입히고, 미세한 어긋남은 차이로 응축돼 가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옻칠의 수공예적 깊이와 실크스크린의 복제성은 도라 작가의 손에서 충돌하는 대신 공존한다. 전통 공예가 지닌 유일성과 고유함을 디지털 시대의 복제 가능성과 병치시키며, 작가는 그 사이에서 새로운 시각 언어를 실험한다. 반복된 인쇄와 칠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미묘한 차이들 안에서 그것이 지는 특유의 기술적 흔적이 아니라, 작가가 경험한 삶과 감정의 층위를 은유한다.
(우) <ERROR>, 2024, 목재 위에 옻칠 실크스크린, 자개, 636x636mm
“반복 속 차이에 주목해요. 미세한 흔들림, 우연한 엇나감, 의도하지 않은 겹침 같은 것들이 안에서 맴돌며 성장과 변화가 생기죠. 사랑도 그래요.”
도라의 여정, 헤매는 사랑의 윤리학
“사랑은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들은 비록 서툴고 미숙할지라도, 모두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은 단순히 아름답고 고귀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추하거나, 비굴하거나, 부끄러운 모습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
도라 작가의 작업은 ‘사랑’을 중심에 두고, 감정과 관계의 다층적인 풍경을 펼쳐낸다. 로봇처럼 감정을 억제하고 조율하며 살아온 삶, 타인에게 스며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 그리고 때로는 가식처럼 느껴지는 자기 연출까지, 이러한 경험들은 결국 ‘사랑받고자 하는 갈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의식하며 그 깨달음 속에서 로봇 도라의 자전적 캐릭터를 통해 서사화한다.
도라 작가는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길 위에 선 존재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속의 도라는 이정표 앞에 멈춰 서서 방향을 고민한다. 주어진 방향을 따라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할까. 결국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믿고 새로운 길을 택한다. 도라의 여정은 곧 작가의 내면 여정이기도 하다. 사랑이란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헤매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는 믿음이 이 여정을 움직인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인식의 훈련이며,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는 감각의 회복이라는 철학적 사유속에서 이를 풀어가는 도라 작가의 여정기는 인간 관계의 윤리에 대한 탐구이며, 감정의 형태에 대한 감각적 해석이다. 작가는 반복과 차이, 복제와 개별성, 전통과 현재가 서로 교차하는 그 경계에서, 사랑의 ‘실체’가 아니라 ‘형태’를 조형한다.
도라 작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대상화하거나 이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불완전하고 서툴며, 때로는 비굴하거나 부끄러운 감정으로 인식하고, 그 모습 그대로 정면으로 응시한다. 어쩌면 그런 사랑이야말로 가장 진실에 가까운 형태일지 모른다. 감정의 외피를 벗겨내고, 감정의 층위를 한 겹 한 겹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도라 작가의 작업이 옻칠의 투명한 층과 그 위에 겹쳐지는 실크스크린의 이미지처럼, 사랑의 본질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미학적 사유로 존재론적 질문을 이어가며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