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영의 청년구조 보고서] 괴롭힘으로 떠나는 청년, 조직은 인재를 잃는다

2025-08-09     정수영 기획재정부 청년보좌역

‘정수영의 청년구조보고서’는 현장에서 듣고, 데이터로 진단해, 구조적 해법으로 청년을 구조합니다.

△ 정수영 기획재정부 청년보좌역

직장 내 괴롭힘이 물감처럼 번지고 있다. 말하지 못해 떠나는 청년도 있고, 떠나지 못해 침묵하는 청년도 있다. 인구감소로 소비경제는 줄고, 인재는 점점 귀해지는 시대. 괴롭힘은 인재와 조직을 갉아먹으며 새로운 환경에 대비할 생존 가능성마저 잠식한다. 우리 사회의 청년과 사용자, 관리자에게 괴롭힘의 구조를 전한다.

직장 내 괴롭힘이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2019년,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조항이 마련됐다.

괴롭힘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공공데이터포털의 공개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의 신고접수 건수는 2020년 5800건, 2021년 7700건, 2022년 8900건, 2023년 1만1000건, 2024년 1만2300건으로 해마다 증가해왔다. 연평균 20.4%씩 증가한 셈이다. 법률 조항의 시행 초기과정을 거치며, 괴롭힘에 대한 생존적 저항이 점차 표면화돼 온 것으로 해석된다.

직장 내 괴롭힘의 주요 원인은 개인보다 조직에 있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직장 내 괴롭힘이 개인적 문제이기 이전에 조직의 문제라는 연구결과를 제시하며 괴롭힘을 유발하는 조직문화의 특성으로,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는 문화, 비효율적 사내소통과 근로환경, 괴롭힘에 대한 낮은 인식 등을 설명했다.

또한, 괴롭힘의 영향으로는 개인의 건강 악화와 우울감으로 근로시간의 손실과 업무 집중도 감소가 일어났으며, 이러한 근로자 생산성 손실이 기업과 국가의 손실이 됨을 전했고 주요 가해자의 직급은 간부나 임원, 직속상사임을 알렸다.

이러한 조직적 한계는 극단적인 모습들을 만들어왔다. 2023년 5월, 자동차 부품 대리점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은 상사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2019년 1월엔 병원에서 태움을 겪던 20대 청년 간호사가 그러했다.

사건들을 보자면 하인리히의 법칙을 연상시킨다. 1건의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 29번의 문턱과 300번의 괴롭힘이라 할 만큼 수차례의 고비와 괴롭힘들이 보였다. 이런 흐름을 보자면, 최근에 있었던 외국인 노동자의 지게차 괴롭힘이 외부로 드러나 멈춰진 것이 다행일 정도이다.

한편으로, 조직적 한계는 ‘침묵’의 정서로 나타났다. 지난 2022년 직장갑질 119의 설문조사는 76.2%의 응답자들이 괴롭힘의 대응으로 참거나 모르는 척을 택하였음을 알렸다. 2024년의 괴롭힘 신고가 2022년보다 늘어난 것을 감안하더라도 ‘침묵’이라는 응답값은 여전히 유효하게 높을 것으로 유추된다. 괴롭힘의 해결을 수장과 가해자의 상급자에게 기대하는 이유다.

주요 가해자로 본 괴롭힘의 근본적 구조는 주인-대리인의 문제가 관찰된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사용자인 주인은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대리인인 관리자는 사용자로부터 부여받은 재량권을 오남용해서 괴롭힘과 차별을 한다. 문제가 드러난다면, 사용자는 ‘몰랐다’의 상황이 벌어지고, 관리자는 ‘원래 이 정도 한다’라며 정도에 따라 추임새를 달리한다. 이러한 함의는, 직장 내 괴롭힘의 감시·감독에 대한 구조 설계와 비용 지출이 수반되지 않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로 봄이 타당하다.

법률과 정책만으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 특히 사용자와 관리자의 관심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괴롭힘의 해결이 저성장 국면에서 조직의 성장과 탄탄한 체력을 유지하는 기초가 될 수 있음을 알리며 인재에 관한 세가지 관점을 전한다.

첫째, 인력난은 현재진행형이고 심화한다. 우리나라의 생산인구는 2017년을 정점으로 지속감소하고 있다. KDI는 인구감소 시대 인적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종합 연구를 통해 노동력의 빠른 감소로 경제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이미 내어놓았고, 인적자원의 저활용을 지목했다. 달리 말하면, 인재의 가치와 중요성이 올라가고 있다.

둘째, 괴롭힘은 인재의 조직적응과 업무숙달을 저해한다. 신규 또는 저년차들의 조직사회화에 관한 연구들은 한결같은 말을 한다. 괴롭힘이 인재로 하여금 조직의 가치와 문화를 배우고, 업무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괴롭힘이 노동자 개인의 삶 뿐만이 아니라, 조직의 생산성에도 직결된다는 뜻이다.

셋째, 괴롭힘은 인재의 이직을 촉발한다. 괴롭힘과 이직 의도에 관한 연구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이직 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린다. 달리 말하면, 괴롭힘이 신고로 공식화 되기 전에 이직이라는 형태로 조직을 이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직의 성장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인재가 조직의 다른 이에 의해 이탈할 수 있다는 점은 그 요인이 해결되기 전까지 인재의 유출이 지속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구감소의 국면은 우리 사회의 소비경제를 축소시키며 우리사회의 기업과 조직을 저성장이라는 도전적 환경으로 이끌고 있다. 생산인구의 감소는 인재의 절대 규모를 줄이며, 향후 기업간 인재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괴롭힘을 없애는 것은 조직의 도덕성을 높이는 일이 아니다. 조직의 생존을 위한 조건이자, 인재를 지키는 전략이다. 이제는 침묵이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할 때다. 직장 내 괴롭힘을 마주하고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기업과 조직이 인재를 흡수하고 다가오는 미래의 주도권을 쥐는 것은 아닌지 떠올려본다.